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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기자수첩] 정치권의 고민없는 탄소중립 공약, 기업은 목숨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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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들이 지난 27일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중립 공약을 공개했다. 탄소세 도입부터 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 국제수소거래소 설립, 휘발유 및 경유차 등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까지 각종 방안이 공약에 포함됐다. 이를 지켜보는 기업들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숨가쁘게 뛰고 있는 기업들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발목을 잡는 공약 투성이기 때문이다.

전국민 기본소득 지급을 위해 탄소세 도입을 주장한 이재명 경기지사가 대표적이다. 이 지사는 국제기구 권고에 따라 기업이 배출하는 탄소에 톤(t)당 8만원의 세금을 부과하면 64조원의 세수를 조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대로라면 포스코는 6조원, 삼성전자는 1조원이 넘는 탄소세를 부담해야 한다. 지금도 기업들은 정부에서 인정받은 탄소 배출량보다 실제 배출한 탄소가 더 많을 경우 탄소 배출권을 사야 한다. 여기에 기후 대응 목적도 아닌 선심성 현금 살포 정책을 위해 수조원의 돈을 추가로 내야 하는 셈이다.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40%로 높이겠다는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의 공약도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탄소중립에 필수적인 탈원전 정책 폐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 전 대표 목표치의 절반(20%)만 추구하는 문재인 정부도 올 여름 원전 없이 신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에 집중했다가 전력난 위기를 불러왔다. 그 부담은 국민과 기업들 몫이다. 신재생에너지의 낮은 경제성 때문에 전기요금은 오를 수밖에 없고, 불안정한 전력 공급 탓에 공장조차 제대로 가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그 어느 때보다 정부의 체계적인 에너지 정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최근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세 도입 등 세계 각국의 환경 규제는 점점 강화되고 있고, 기관 투자자들은 기업들의 친환경 성과에 따라 자금 투입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본업까지 바꿔가며 숨가쁘게 달리고 있지만, 정부의 지원 없이 완전한 탄소중립을 이루긴 어렵다. 저탄소 에너지원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 환경과 정책적 인센티브가 뒷받침돼야만 낙오하지 않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탄소중립 후발 주자인 한국은 정부의 탈원전 고집 덕에 더더욱 먼 길로 돌아가고 있다. 지금이라도 에너지 정책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지만, 지금 정부는 그럴 생각이 없어보인다. 결국 공은 차기 정부로 넘어갔다. 국민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철학과 과학적 근거를 갖춘 에너지 정책이어야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 기업들에겐 앞날이 달린 사안을 이처럼 고민 없이 가볍게 내뱉는 민주당 대선주자들의 안일함이 우려스러울 뿐이다.

이윤정 기자(fact@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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