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30 (토)

[ESC] 거대한 주름 위를 걸으며 지구의 속살을 느끼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노동효의 지구 둘레길

페루 콜카협곡 도보 여행

가장 깊은 협곡 기네스 등재

아찔한 비탈 사이 숨은 비경


한겨레

세상에서 가장 깊은 협곡으로 알려진 페루의 콜카협곡. 노동효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구의 겉넓이를 아는가? 위키피디아를 검색하면 ‘510,067,420㎢’라고 나온다. 이것은 구의 표면적을 구하는 공식(4πr²)을 통해 나온 값이다. 그러나 과학자가 알려주는 겉넓이가 실제 지구와 일치할까? 내가 경험한 바론, 지구 겉넓이는 훨씬 더 넓다. 지구는 지구본처럼 반질반질한 원구가 아니라 수많은 ‘주름’을 가진 행성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소장은 농구공보다 작지만, 주름과 융털로 인해 표면적이 테니스코트를 다 덮을 정도다. 지구엔 초원, 사막뿐 아니라 깎아지른 산맥, 계곡, 협곡 같은 주름으로 가득하다. 산 높고 계곡 깊을수록 표면적은 몇배로 늘어난다. 콜카협곡은 깊은 주름들로 지구의 겉넓이를 넓히는 거대 협곡이다.

잉카의 옛 수도였던 ‘쿠스코’와 페루 제2의 도시 ‘아레키파’ 사이에 콜카협곡이 있다. 지구 생성 이래 물은 산을 깎고 해발 5000~6000m를 넘나드는 산 사이로 해발 1000m까지 내려앉은 협곡을 만들어냈다. 7000년 전 동굴 벽에 라마·여우·별을 그렸던 이의 후손은 암석을 비집고 쏟아지는 지하수와 빗물을 계단식 경작지로 끌어와 농사를 짓기에 이르렀다. 콜카협곡이 서구인에게 알려진 건 16세기 이후고, 1981년 폴란드 탐험대가 깊이를 측정한 결과 ‘세상에서 가장 깊은 협곡’으로 기네스에 등재되었다. 그랜드캐니언(1737m)보다 깊은 4160m(2005년 측정).

인간이 더 깊은 협곡을 탐험하면서 순위가 밀려나긴 했지만 콜카협곡은 쿠스코, 리마와 더불어 페루에서 세번째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 명소다. 가장 깊은 협곡으로 알려졌던 명성도 명성이지만, 무엇보다 콘도르가 관광객의 시선을 끌어모은다. 콘도르는 퓨마와 더불어 잉카인이 가장 숭배했던 동물로 가장 큰 맹금류. 양 날개를 펼치면 3m가 넘고 몸무게는 15㎏에 이른다. 해발 3000~5000m 절벽에 둥지를 트는데 콜카협곡은 야생 콘도르를 가장 쉽게 목격할 수 있는 장소다.

“콜카협곡에 같이 가지 않겠소?”

아레키파 초등학교 교사로 봉사활동 중이던 주 선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방학을 맞아 지금껏 가보지 않은 코스까지 나흘간 걸을 셈이라고 했다. 여행사에선 콘도르 전망대와 콜카협곡을 보고 돌아오는 ‘당일치기’나 상가예 마을에서 묵는 ‘1박 코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하루, 이틀에 둘러볼 수 있는 콜카협곡이 아니다. 트레킹코스만 도는 데 최소 4일이 소요된다. 다행인 건, 마을과 숙소가 있기에 야영 장비를 지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나흘이면 트레킹코스를 모두 지날 수 있는 일정이었다.

“좋아요, 같이 갑시다!”

아레키파에서 콜카협곡까지 160㎞, 구불구불 안데스 고원을 차로 5~6시간 달려야 닿는다. 새벽 버스를 타고 아레키파를 빠져나왔다. 달빛 아래를 달리던 버스가 동틀 무렵 해발 4800m 고개를 넘었다. 금빛 어스름 사이로 라마·알파카 같은 초식동물이 풀을 뜯는 모습이 지나갔다. 치바이 마을을 지나자 ‘잉카 테라스’라고 불리는 계단식 경작지가 펼쳐졌다. 일찍이 원주민들은 진흙과 밀짚을 섞어 만든 용기에 곡식을 저장했는데, 그 용기나 저장고를 ‘콜카’라고 불렀다.

한겨레

‘잉카 테라스’라고 불리는 계단식 경작지. 노동효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오전 9시 무렵 ‘콘도르 전망대’에 정차했다. 휴게소를 겸하는 곳이었다. 콘도르를 볼 수 있는 시간대는 아침과 황혼, 차량과 관광객들로 인산인해였다. 나는 카메라를 꺼둔 채 콘도르의 비상을 맨눈으로 바라보았다. 콘도르가 상승기류를 타고 솟구쳤다. 1시간 비행에 날개를 펄럭이는 시간이 1분도 되지 않는다던가. 콘도르는 날아가고, 문득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숀의 대사가 떠올랐다. “어떤 때는 안 찍어.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바로 저기, 그리고 여기.”

산미겔 전망대(해발 3400m) 앞에서 내렸다. 협곡 트레킹의 출발점이었다. 수직 절벽과 다를 바 없는 내리막으로 이어졌다. 1100m 고도차의 경사를 내려가기 위해 끊임없이 지그재그를 그렸다. 짐 실은 당나귀가 좁고 가파른 길을 내려갔다. 심장 약한 사람은 바닥만 보느라 경치를 보지 못할 구간도 나타났다. 하염없는 비탈이지만 멈춰서 바라보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비경이 앞에 있었다. 3시간 후 강변에 닿았다. 다리 앞에 공원검문소가 있었다. 입장료는 70솔(약 2만5천원). 강을 건너자, 이젠 오르막이었다. 헉.

산후안 마을엔 트레커가 묵는 숙소가 몇채 있었다. 글로리아 민박에 여장을 풀었다. 1박을 위해 상가예 마을로 가는 트레커들이 음료를 마시며 한숨을 돌렸다. 잔디밭에 누워 지나온 협곡을 올려다보았다. 1000m 산 아래서 정상을 올려다보는 듯 아득했다. 오후 4시인데 그늘이 지고 숙박객들은 외투를 겹쳐 입었다. 달빛이 마을로 내려앉은 건 한참이 지난 뒤였다.

주 선생이 챙겨 온 김밥으로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길을 나섰다. 어제는 가이드를 앞세운 트레커들을 뒤따랐지만 이젠 다른 여행자도, 이정표도 없었다. 백년초·무화과·레몬이 자라는 마을을 지나 흔들다리를 건넜다. 가파른 비탈을 오르는데 뜻밖의 가게가 있었다. 2014년 카바나콘데와 타파이를 오가는 마을버스가 개통되면서 대로변에서 당나귀 등에 물품을 싣고 내려와 트레커들에게 판다고 했다. 트레커들이 지쳐 쓰러질 지점에 자리한 최적의 가게였다.

큰길에 서자 동서로 길게 뻗은 협곡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만년설을 얹은 설산, 깊이 파인 협곡, 강바닥의 상가예 마을. ‘오아시스’로도 불리는 마을은 나무가 자라지 않는 협곡 경사면과 달리 초록으로 가득했다. 우리는 15㎞ 떨어진 야우아르 마을로 향했다. 비포장이라도 차가 오가는 길이라 넓고 완만했다. ‘이젠 발아래를 내려다볼 필요도 없이 그저 걸으며 환상적인 풍경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주마간산, 마냥 한가로운 길이었다.

한겨레

콜카협곡의 오아시스로 불리는 상가예 마을에는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노동효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콜카협곡을 걷는 여행자. 노동효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야우아르 마을로 가는 길의 풍경. 노동효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야우아르에 닿았다. 언덕 위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여장을 푼 호스텔에서 콜카강이 내려다보였고, 깔끔했으며, 강가엔 온천이 있다고 했다. 강으로 내려갔다. 수영복 차림의 여행자들이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천연온천을 파이프로 연결해 콘크리트 수조로 들이고 강으로 나가게 했는데 수온은 40도가량. 발을 담그자 여독이 스르르 녹았다. 콜카의 비경이 둘러싼 풍경 아래 계곡 물소리 들으며 맨몸을 따뜻한 물속에 담그고 있으려니, 천국이었다. 저녁 식사 후 맥주를 사 들고 다시 온천으로 내려갔다. 몸을 담근 채 보름달이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풍경을 안주 삼아 들이켜는 술은 내 생에 가장 맛있는 맥주 맛이었다.

다음날 우리는 다리를 건너 우아루로강 곁의 협곡을 하염없이 오른 끝에 푸레 마을에 닿았다. 산장이 있었다. 배낭을 맡기고 우아루로 폭포(3400m)로 향했다. 마을 옆에도 높이 500m에 이르는 폭포가 있었는데 이렇다 할 이름도 없는 폭포란다. 목적지였던 우아루로 폭포까지는 1시간이 더 걸렸다. 웅장한 물소리가 우리를 맞이했다. 거대한 암벽 사이로 물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접근 금지. 장대한 폭포를 멀찍이 떨어져 감상해야 하는 게 너무 아쉬웠다.

한겨레

콜카강변의 노천탕. 노동효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치바이를 지나며 바라본 콜카협곡. 노동효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산장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다시 길 위에 섰다. 우리 앞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 길을 되짚어 야우아르 숙소로 돌아가는 방법과 우아루로 강가의 야티카 마을로 가는 방법. 주 선생은 되돌아가는 게 편하겠다고 했다. 나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싶었다. 주 선생이 양보해준 덕분에 야티카로 방향을 잡았다. 곧 그늘이 졌다. 야티카는 유령마을처럼 조용했다. 다행히 숙소가 있었는데, 헛간 같은 공간에 쓰러져가는 침대, 덮어둔 비닐에 먼지가 수북했다. 그러나 다른 방도가 없었다. 주인장에게서 달걀과 유통기한 지난 비스킷을 샀다. 재래식 아궁이, 진흙으로 만든 화덕, 곡물을 갈기 위한 납작돌과 둥근돌이 있는 부엌을 빌려 달걀을 삶고 커피를 끓였다. 인적이 드물어 주인장에게 물으니 교통은 불편하고, 돈벌이는 없고, 아프면 죽고, 결혼할 이성도 없고…. 늙은이들과 글 모르는 젊은이 몇명이 남았단다. 그 얘기가 결코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우아루로강을 따라 오르내리락, 점심 무렵에야 야우아르 마을에 닿았다. 우리는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버스가 섰다. 이제 협곡을 떠날 시간, 버스가 지구의 깊은 주름을 갈지자로 그으며 오르기 시작했다. 과학자는 공식으로 구한 지구 겉넓이를 알려주지만, 이 행성의 겉넓이를 아는 건 불가능하다. 산·언덕·계곡·협곡 등 지구의 주름을 걷는 자가 경험할 수 있는 영역일 뿐.

가장 거대한 지구를 경험하는 자는 도보여행자다.

노동효(<남미 히피 로드> 저자·여행작가)

한겨레

벗 덕분에 쓴 기사입니다. 후원회원 ‘벗’ 되기
한겨레 서포터즈 벗이 궁금하시다면? ‘클릭’‘주식 후원’으로 벗이 되어주세요!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