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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돼지로 中500대 기업 일궜지만…징역18년 때린 죄목 '소란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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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은 위험하고, 국영기업은 아닌가”

민영기업 억누르는 시진핑 경제에 일격

"평균 부유 아닌 차이 있는 부유 희망"

중앙일보

지난 2012년 5월 촬영한 쑨다우 다우그룹 회장. 중국 허베이성 바오딩시 다우촌 건설 현장을 시찰하고 있다. 28일 쑨 회장은 총 9개 죄목으로 18년 징역형을 판결 받았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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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기업이 커지면 위험한가? 국영기업은 커져도 위험하지 않은가? 이런 논리가 성립할 수 있나?”

28일 중국의 저명한 민영기업가 쑨다우(孫大午·67) 허베이(河北) 다우농목그룹(大午農牧集團) 회장이 18년 징역형을 언도받으며 이 같은 울분을 터뜨렸다. 비공개 재판에서 그가 쏟아낸 최후 진술문은 해외 트위터를 통해 빠르게 퍼지고 있다. 여기에 비친 울분이 최근 중국 민영기업의 수난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어서다.

중국에서는 지난해 알리바바에 대한 천문학적인 반(反) 독점 벌금 부과를 시작으로 이달 중국판 우버로 불리는 차량호출 기업 디디추싱(滴滴出行), 중국판 배달의 민족인 메이퇀(美團) 규제에 이어, 사교육 시장을 사실상 뿌리 뽑겠다는 정책까지 민영기업의 수난이 이어지고 있다.

쑨다우 회장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역점 사업인 슝안(雄安) 신도시와 인접한 허베이성 쉬수이(徐水)현 출신이다. 1988년 1000마리 닭과 50마리 돼지로 농업 사업을 시작해 1995년 중국 500대 민영 기업을 일군 입지전적 기업가다. 시사에 관심이 많아 ‘할 말은 하는 기업가’로 명성이 높았다.

그는 지난해 11월 쉬수이에 위치한 본사 농장 인근에서 국영농장 관계자와 토지 점유권을 둘러싼 집단 충돌 직후 경찰에 구류됐다. 홍콩 명보는 올 4월에야 정식 체포됐으며 쑨 회장과 피고인들은 여전히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토지 점유권 분쟁은 허울일 뿐 ‘괘씸죄’ 탓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쑨 회장에게 적용된 공중소란죄는 반체제 인사에게 흔히 적용되는 죄목이다. 29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12년 이후 공개 비판에 대한 공산당의 관용이 극적으로 줄었다고 지적했다. 그간 공산당 심기를 거스르는 언행을 불사했던게 이번 사태를 부른 원인이라는 얘기다.

최후 진술문은 시 주석의 기업관도 언급했다. 입당 50년이 넘은 공산당원이라고 밝힌 쑨 회장은 “시 주석의 7·1 연설(7월 1일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연설)을 TV로 봤다”며 “시 주석 연설은 민영기업을 긍정했다. 덩샤오핑의 남순도 긍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다우 그룹의 실천을 시 주석이 알아주기를 바란다”며 “사회주의 실천은 통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의 검증을 견딜 수 있으며, 공안국의 검증이 아닌, 고객이 검증할 수 있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사회주의에 따른 기업 경영을 해왔다는 주장이다.

중앙일보

다우 그룹 법무팀이 제공한 지난 2020년 10월 촬영한 쑨다우 다우그룹 회장. 중국 허베이성 바오딩시 다우촌의 병원에서 쑨 회장이 칠판에 판서하며 설명하고 있다. 28일 쑨 회장은 총 9개 죄목으로 18년 징역형을 판결 받았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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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우 그룹의 소유 구조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피력했다. 쑨 회장은 “다우 그룹은 자체 헌법제도가 있다”며 “우리의 권력은 아래부터의 선거에서 나온다. 정규 직원 6000명 가운데 선거권을 가진 직원은 1000여명에 불과하다. 입사 10년이 넘어야만 갖는다. 대신 능력이 있다면 입사 1년이 지나 피선거권은 갖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우 그룹의 권력은 제일선(기층)에서 기초를 다진다. 아래의 의견이 없다면 상부의 결정은 모두 잘못된다. 경영 관리 제도의 권한을 나누고, 확립하고, 제한했다”고 말했다. 마치 기층 선거가 없는 중국의 현 정치 제도를 비판하는 듯한 뉘앙스다.

그의 경영 철학도 담았다. “나는 평균 부유를 바라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것은 차이 있는 부유다. 단 간부의 공헌은 반드시 분명하게 실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가 말하는 ‘이상향(桃花源·도화원)’은 차이가 있되 크지는 않은 세상이다. 우리의 임금 제도는 최저임금을 높게 보장했다. 고위 간부의 연간 소득이 노동자의 10배를 넘지 못하게 했다. 간부들이 많이 벌고 싶으면 노동자의 대우를 높이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주식회사 제도에 대한 불신도 말했다. 그는 “다우 그룹은 38년간 발전해왔다. 주식회사 제도가 아니다. 지분을 나눠 가진 기업 중 30년을 넘긴 곳이 있나”라며 “그들은 돈 때문에 다툰다. 한정된 자금을 이용해 무한한 사회 이윤을 가져간다. 다우 그룹의 헌법은 나를 제한하고, 내 아들과 후손, 고위 간부를 견제한다”고 자부했다.

쑨 회장은 전날 베이징에서 남쪽으로 90여 ㎞ 떨어진 허베이 가오베이뎬(高碑店) 인민법원에서 열린 비공개 재판에서 사기죄 및 군중을 모아 국가 기관을 공격하고, 농경지를 불법 점거하고 소란을 조장한 등의 혐의로 18년 징역형을 받았다고 FT가 전했다. 이날 쑨 회장 개인에겐 311만 위안(5억5000만원)의 벌금이, 다우그룹도 벌금 300만 위안이 선고됐다. 쑨 회장의 가족과 사업 파트너 최소 8명에게도 각각 2년에서 12년의 징역형을 받았다.

쑨 회장 재판에 국제 인권 단체도 주목했다. 인권 변호사로 구성된 변호인단은 잠재우지 않기 등 강제 자백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FT는 법원이 판결에 이용한 증거를 피고인들이 ‘지정된 장소에서 감시 아래 거주하는’ 형태의 구금된 상태에서 확보했다며 변호인단이 이의를 제기했다고 전했다.

쑨 회장은 작은 시골 마을을 자체적인 학교·병원·온천을 가진 모범 마을로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당국이 관료주의를 비판하며 눈 밖에 났다. 쑨 회장은 2003년에도 ‘불법 대중 자금 모금’ 혐의로 체포됐다. 당시에는 인권 변호사들의 지원을 받아 실제 복역 없이 풀려날 수 있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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