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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숏컷은 페미" 안산 사이버불링…'좌표 찍고 집단 억지' 받아주니 '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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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은 기자(pi@pressian.com)]
도쿄올림픽 양궁 2관왕(혼석·여자 단체전) 안산 선수를 향한 도 넘은 사이버불링이 논란이 되고 있다. 몇몇 남성 중심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안산 선수는 페미니스트"라는 주장이 제기된 것. 이들은 안산 선수에게 "메달과 포상, 연금 등을 모두 반납해야 한다", "공개사과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안산 선수가 짧은 머리 '숏컷' 스타일에 '광주여대' 출신이라는 게 '페미니스트 의혹'의 주요 근거다. 안산 선수가 과거 소셜미디어에서 사용한 '웅앵웅', '얼레벌레', '오조오억' 등의 표현도 문제삼았다. 안산 선수의 소셜미디어와 대한양궁협회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해명과 사과를 요구하는 게시물이 쏟아졌다.

이어 "안산 선수를 보호하자"는 움직임도 맞섰다. 29일 양궁협회 게시판에는 "안산 선수를 사이버테러로부터 보호해달라"는 내용의 글들이 전날부터 1만 건 가까이 올라왔다. 이들은 "근거 없는 비방에 강경대응 하라", "선수가 사과하게 하지 말아 달라"고 촉구했다.

과거 GS편의점, 경찰청 홍보물 등 '손가락 논란'을 언급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그냥 일부의 헛소리라고 무시하면, 정부와 기업은 앞으로도 일부 남초의 억지를 '대세'라고 생각할 것"이라며 "억지인 거 알면서도 기업 같은 곳이 받아주니까 창피한 줄 모르고 계속 저런다", "손가락으로 억지부리다가 외신에서 망신당한 거 잊었나 보다"는 등의 날 선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면서 "이번엔 절대 선수가 사과하거나 해명하게 해선 안 된다"고 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안산 선수 응원 챌린지가 확산됐다. 여성 중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여성_숏컷_캠페인 해시태그와 함께 여성 네티즌의 숏컷 인증이 이어졌다.

한지영 신체 심리학자는 지난 25일 이 챌린지를 제안하며 "스포츠 선수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혹시 페미인가요' 라는 등의 몰상식한 질문이 이어진다", "올림픽 여성 국대 선수 헤어스타일로 사상검증이라"라고 했다. 챌린지에 유명인들도 가세했다. 배우 구혜선, 김경란 아나운서, 곽정은 작가 등이 자신의 숏컷을 공개하며 안산 선수를 응원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도 28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과거 숏컷 사진을 올렸다. 류 의원은 "여성 정치인의 복장, 스포츠 선수의 헤어스타일이 논쟁거리가 될 때마다 당사자는 물론, 지켜보는 여성들도 참 피곤할 것 같다. 저도 몇 년 동안 숏컷이었는데 요즘에는 기르고 있다. 그러고 싶어서다"면서 "페미니스트 같은 모습은 없다. 긴 머리, 짧은 머리, 염색한 머리, 안 한 머리. 각자가 원하는 대로 선택하는 여성이 페미니스트다. 우리는 허락받지 않는다"고 했다.

안산 선수 사이버불링에 '일부 악플러에 의한 해프닝'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 반면 '페미니스트를 향한 공격의 흐름'으로써 우려의 시각도 있다. 사이버불링이 단순히 '숏컷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페미니스트이거나 페미니스트로 보이면 공격할 것이다'라는 위협신호라는 것이다. '손가락 논란'으로 비슷한 집게손가락 모양의 이미지가 사라졌고, '오조오억' 등의 표현을 사용한 유명인들은 남성혐오 논란에 휘말려 실제 사과하기도 했다.

한지영 신체 심리학자는 전날(28일) 공개한 영상을 통해 이번 사이버불링을 두고 "여성을 통제하려는 가부장적 권력 욕구"라고 분석하며 "숏컷이면 '페미'라고 낙인찍고, 반대로 너무 꾸미면 '운동을 열심히 안 한다'고 언제든지 비난할 수 있다"고 했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국가대표 선수도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무차별 공격의 대상이 된다"고 짚으면서 이를 "상반기부터 있었던 페미니즘 백래시 흐름과 맞닿아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윤김 교수는 "양궁협회에 '안산 선수는 페미니스트니까 금메달 반환하라'고 집단억지 부리는 게 가능한 건 과거 승리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공격좌표를 찍고 집단억지를 부리면 이게 결국 받아들여졌다"고 했다.

윤김 교수는 "'페미니스트 세력의 음모'라며 집게손가락 이미지가 남성혐오라고 집단억지를 부렸다. 언론이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대기업·공공기관이 결국 사죄했다. 이런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성취감, 승리감, 자기효능감, 결속감 등을 쌓인 것"이라며 "이번엔 짧은 머리를 한 여성 선수가 그 공격좌표가 됐다"고 했다.

이어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가, 금메달을 안겼는데도 머리가 짧아서, 남성의 기분에 안 맞으면 공격받고 굴복시키고 그가 성취한 걸 빼앗아야 한다는 집단억지가 하나의 공적 의견으로 받아들여지는 흐름을 끊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면서 "양궁협회의 공직적인 대응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이런 횡포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입장표명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프레시안

▲25일 일본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여자 양궁 국가대표 안산, 장민희, 강채영이 2~3위를 차지한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 독일 선수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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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은 기자(p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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