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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펜싱 남자 사브르 2연패의 힘, '발 펜싱'과 팀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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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펜싱'을 승부수라고 생각하고 준비한 게 또 한 번 통해"

체력 부담·부상 위험 잊은 맏형 중심으로 똘똘 뭉쳐

아시아경제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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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싱 남자 사브르 대표팀의 올림픽 단체전 2연패는 '발 펜싱'과 팀워크로 이뤄낸 값진 결실이다. 한 박자 빠른 발놀림을 서로 응원하며 하나가 됐다.

오상욱(25·성남시청), 구본길(32), 김정환(38·이상 국민체육진흥공단), 김준호(27·화성시청)은 28일 일본 지바의 마쿠하리 메세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 결승에서 이탈리아를 45-26으로 제압했다. 2012년 런던대회 뒤 9년 만에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대회에서 남자 사브르 단체전은 종목 로테이션으로 열리지 않았다.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세계 최강의 실력을 자랑한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세계선수권대회 단체전 3연패를 이뤘다. 2019년에는 국제대회 열 개에 참가해 아홉 번 우승했다. 현재 세계랭킹도 1위다. 대표팀은 이를 증명하겠다는 듯 초반부터 이탈리아(세계랭킹 3위)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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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두 번째 주자로 나선 오상욱은 5-4의 근소한 리드에서 특유 긴 런지 동작으로 알도 몬타노를 무력화시켰다. 한 점도 내주지 않고 5점을 추가하며 기선을 제압했다. 바통을 넘겨받은 구본길과 김정환은 부담을 덜고 수월하게 경기를 풀어갔다. 각각 엔리코 베레와 몬타노의 허를 찌르며 점수 차를 벌렸다.

대표팀은 김정환 대신 여덟 번째 주자로 나선 후보 김준호까지 상승세에 편승해 일찌감치 우승을 예약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 때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기량이다. 당시 한국 펜싱을 향한 관심은 플뢰레와 에페에 쏠려 있었다. 사브르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빠르고 섬세한 종목이라 우리와 맞는 면은 있으나 심판의 영향력이 많이 개입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선수들의 기량은 날로 향상됐고, SK그룹이 회상사를 맡으면서 국제대회 출전 기회도 늘었다. 심판의 부당한 개입을 최소화할 비디오 판독까지 도입돼 해 볼 만하다는 인식이 싹텄다. 대표팀은 유럽 선수들을 공략할 해법으로 '발 펜싱'을 구체화했다. 하체가 약해 손동작 위주로 경기하는 유럽 선수들을 빠른 스텝으로 파고들겠다는 계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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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형 김정환은 "펜싱은 팔 운동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하체가 중요하다"라며 "발로 하는 땅따먹기나 다름없다"라고 밝혔다. 원우영 SBS 해설위원도 "'발 펜싱'을 승부수라고 생각하고 준비한 게 또 한 번 통했다"라며 "상대가 알고도 당하는 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발 펜싱'의 핵심은 민첩함. 나이를 먹을수록 신체적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 대회 개인전에서 유일하게 (동)메달을 획득한 선수는 한 차례 은퇴를 선언했다 돌아온 김정환이다. 수만 번을 찌르고 베고 막으면서 다양한 패턴을 꿰뚫어 보는 안광이 생겼다.

체력 부담과 부상 위험을 잊은 선배를 보며 후배들은 힘을 냈다. 김준호는 201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왼발 힘줄이 찢어졌지만 힘겨운 재활훈련을 통과해 영광의 순간을 함께 했다. 그는 "하나라도 선배들에게 더 배우자는 생각으로 임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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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랭킹 1위인 오상욱은 김정환의 조언을 들으며 마음을 추슬렀다. 그는 지난 3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국제펜싱연맹(FIE) 사브르 월드컵을 다녀온 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체중이 7㎏이나 빠질 만큼 고생해 훈련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때마다 김정환은 우렁찬 목소리로 "파이팅"을 외쳐줬다. 경기가 잘 풀려도 그랬다. 이날 이탈리아와의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지자 "들뜨지 말라"라며 분위기를 다잡았다. 오상욱은 "44-26으로 앞설 때도 여유를 부리지 않았다"라며 "정말 끝까지 (상대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경기에 임했다"라고 말했다.

구본길은 김정환과 함께 10년 넘게 남자 사브르 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이제는 눈빛만 봐도 경기를 어떻게 풀어갈지 알 수 있다. 그는 올림픽 2연패의 비결을 묻자 주저 없이 "팀워크"라고 답했다. "개인전에서 경기력이 떨어져서 불안했다. 조금만 더 버티자고 계속 되뇌었다. 내가 나를 못 믿는데 후배와 선배가 내 몸을 믿어줬다. 그렇게 자신을 이겨내고 버텨낸 것에 점수를 주고 싶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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