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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경쟁업체 고사시키는 '검은 댓글'… 조직적 범죄엔 실형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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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영역에서도 판치는 댓글 조작>
알바생·대행사 외주 고전적 수법에
VPN에 매크로 프로그램까지 등장
'업무방해·명예훼손' 벌금 많았지만
수억대 위자료 물며 실형 선고 늘어
가짜뉴스·악플방지법 등 잇단 발의
"기준 모호" "표현 자유 침해" 우려도
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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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사 제품에서 암을 유발할 수 있는 성분이 검출됐다고 하더라고요. 전 그냥 다 B사 제품으로 바꾸려고요. 탄탄해서 소음 차단도 잘 되는 것 같고, 지금까지 잘 쓰고 있어요.
2017년 11월 중순, 한 포털 사이트 '맘 카페'에 달린 댓글

2017년 11월, 육아·지역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맘 카페'와 블로그에선 일대 소란이 벌어졌다. 영유아용 매트 제조사로 첫손에 꼽히는 A사 제품에서 유해화학물질이 나오는 바람에 친환경 인증이 취소됐다는 얘기가 퍼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반쪽의 진실'이었다. 세척용 유기용제인 '디메틸아세트아미드(DMAc)'가 미량 검출돼, 그해 7월 인증이 취소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제품이 인체에 해로운 것인가는 다른 문제였다. 인증 취소는 '친환경 마크'를 더 이상 쓰지 말라는 뜻일 뿐, 제품이 위험하단 의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A사 매출은 곤두박질쳤고, 2017년 165억 원을 찍었던 매출액은 이듬해 52억 원대로 주저앉았다.

이 같은 ‘의혹 확산’의 배후엔 경쟁사가 있었다. A사와 시장 점유율 선두 자리를 다투던 B사의 조직적인 댓글 조작이 있었다는 사실이 수사기관을 통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광고대행업체를 고용하고, 타인 명의로 개설된 ‘대포(거짓) 계정’ 수백 개를 구입해 2017년 10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300건이 넘는 비방·허위 댓글을 다는 등 공격 행태는 매우 집요하고 대담했다. 친환경 취소도 B사의 민원 제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정치권에서 시작된 댓글 조작…이젠 경제 영역까지

한국일보

남양유업은 지난달 29일 경쟁사인 매일유업에 대해 온라인 비방 댓글을 단 사실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 등 임직원 6명은 2019년 한 홍보대행사와 계약을 맺고, 매일유업에 대한 비방성 허위 댓글을 달게 한 혐의로 수사를 받아왔다. 한편, 매일유업은 사과를 받아들여 남양유업 측 아이디(ID) 4개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기로 했다. 남양유업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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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조작'을 이용한 여론 공세는 비단 정치 영역의 산물이 아니다. 최근 들어선 오히려 경제·산업 분야에서 증가하는 추세다. 과열된 경쟁 속에서 댓글을 이용한 음해 공작의 유혹은 경제산업 분야라 해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양유업과 계약한 홍보대행사가 매일유업을 상대로 "원유 납품 목장 인근에 원전이 있어 방사능 유출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등 비방 댓글을 올린 사건이나, 롯데주류가 하이트진로의 소주 ‘참이슬’에 경유가 검출됐다는 의혹 글을 퍼나르고 악성 댓글을 단 사건 등은 최근 몇 년간 벌어진 대표적 댓글 조작 사건으로 꼽힌다.

수법 또한 정치에서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르바이트생을 쓰거나 광고대행사, 바이럴 마케팅 업체에 외주를 주는 등의 ‘고전적’ 방법은 물론이고, △가상사설망(VPN)을 통한 IP 추적 회피 △매크로 프로그램 활용 등 전문화 또는 고도화된 기술을 통한 조작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보통은 벌금형… 하지만 장기간 조직적 범행엔 실형도

한국일보

지난 2017년 3월 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사교육 불법 홍보 고발 및 근절 촉구 기자회견'에서 우진우(왼쪽) 사교육정상화를촉구하는학부모모임 서울 대표가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우 대표, '삽자루'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우형철 수학강사, 강용석 변호사. 이들은 입시교육업체 이투스가 댓글 홍보업체 C사를 시켜 소속된 강사들을 홍보하고, 경쟁 학원의 강사들을 비난하는 댓글을 수만 개를 달게 했다고 주장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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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이들 ‘댓글 조작’엔 처벌이 뒤따른다. 단순한 허위·비방 댓글을 다는 경우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이나 업무방해 혐의가 적용되는데, 보통 300만~500만 원의 벌금형이 내려지게 된다. 숙박 예약 플랫폼 ‘야놀자’ 직원과 짜고 경쟁사인 ‘여기어때’ 기사에 악성 댓글을 달았다가 벌금 500만 원을 내게 된 한 온라인 광고대행사 대표가 이 같은 경우다. 직원을 시켜 실제 이용자인 척 “여기어때, 완전 불편함” 등 허위 댓글을 달게 하면서 경쟁사 업무를 방해한 것에 대한 처벌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댓글 알바를 쓰거나 전문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등 조직적 '댓글 공작'이 벌어진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벌금이 아니라 실형도 얼마든지 선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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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입시교육업체 이투스의 ‘댓글 알바’를 주도한 정모(50) 이투스 본부장은 최근 2심에서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투스 측과 바이럴 마케팅 업체 C사가 월 1,500만 원 상당의 계약을 맺고, 댓글 알바 20여 명을 동원해 메가스터디·스카이에듀·디지털대성 등 경쟁업체 강사들에 대한 비방 댓글을 달았다는 게 사건의 요지인데, 재판부가 범행의 수법과 댓글 공격에 따른 피해의 수준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이 같은 불법 행위는 형사 책임에서 끝나지 않는다. 경쟁사의 매출·이미지에 타격을 입힌 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투스만 해도 메가스터디에 9억 원, 메가스터디 소속 전 화학 강사 기상호씨에게 11억5,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을 받았다.

잇따른 '악플방지법' 발의... "표현자유 위축" 우려도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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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서는 보다 강력한 처벌을 요구한다. 댓글 조작 범죄가 점차 일상화·전문화하면서 기존의 처벌 수준으로는 제대로 된 예방이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정치권 역시 이에 따라 활발한 입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가짜뉴스·악플 방지법'의 일환으로 △고의적 허위·불법정보 작성자에게 최대 3배 징벌적 손해배상(윤영찬 의원) △악성 댓글 피해자 요청 시 포털이 게시판 운영 중단 조치(양기대 의원) 등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연이어 발의한 것이다. 다만 이들 법안을 두곤 여전히 “기준이 모호하다” “표현 자유를 과도하게 위축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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