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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알단·국정원·드루킹... 대선 앞 '댓글 전쟁' 변이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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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조작' 사건 판결문 분석해보니>
2007년 알바생 동원 수법 단순했지만
2012년 국가기관 개입 민주주의 흔들
2017년 '킹크랩' 컴퓨터 기술 동원 공작
개인→국가기관→IT기술 동원하며 진화
진영 논리 강화되며 조직적·자발적으로
온라인 여론 영향력 커져 쉽게 근절 안돼
"IT기술 전문가 포함 단속기관 신설 필요"
한국일보

국가정보원 직원이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올렸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2012년 12월 1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오피스텔에서 민주당과 경찰 관계자 등이 오피스텔 거주자에게 문을 열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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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지난 21일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댓글을 조작한 혐의로 징역 2년이 확정되면서, 대선 때마다 불거진 '댓글 조작' 흑역사에 또 하나의 불명예스런 기록이 추가됐다. 특히 이번엔 수작업이 아니라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진화하는 댓글 조작의 단면을 드러냈다.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댓글 조작의 역사는 짧지 않다. 초기엔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댓글을 달더니, 점차 무리를 지어 조직적으로 댓글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민간 영역을 벗어나 국가정보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 같은 국가기관까지 동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2017년 대선 때는 컴퓨터 기술을 이용한 공작이 이뤄질 정도로 수법이 교묘해졌다.

정치권에선 대선 때마다 댓글 조작이 횡행하다 보니, 8개월 앞으로 다가온 내년 대선을 앞두고 신종 수법이 등장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댓글 조작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 범죄임에도, 진영 논리가 판치는 정치권에선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어 그 심각성이 더하다.

1300만원으로 알바생 모아 '댓글 지원'


28일 한국일보가 대선과 관련된 댓글 조작 사건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2007년 대선 무렵 댓글 조작 행위가 처음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나라당 당원 A씨는 2007년 7월 아르바이트생 12명을 고용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와 맞붙은 이명박 후보를 지원하는 댓글을 달았다. 검찰은 A씨를 기소하면서 "선거 관련 무더기 댓글을 올린 것에 대한 처벌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댓글 조작은 개인적 일탈에 머물렀고, 조작 방법도 단순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여론조사 업체 등에서 일했던 A씨는 아르바이트생을 모아 각자 지인 정보를 이용해 20개씩 아이디(ID)를 만들도록 했다. 이들은 위치가 노출되지 않도록 PC방 여러 곳에서 수작업을 했다.

A씨 지시를 받아 한 달 동안 아르바이트생들이 올린 온라인 기사 댓글은 9,717개로 1,349만 원의 대가가 지급됐다. 재판부는 "대통령 선거에서 공을 세운 뒤 다가올 지방선거에서 공천을 받을 욕심으로 범행을 용의주도하게 진행했다"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댓글 조작은 점점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2012년 9월쯤 윤모씨 주도로 결성된 '십알단'(십자가 알바단)이 대표적이다. 윤씨는 국회 근처에 사무실을 꾸리고 7명을 끌어 모아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고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단 혐의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받았다.

윤씨는 당시 트위터 팔로워가 20만 명에 달하는 유명 보수 논객이었으며, 윤씨가 모은 7명은 단순 아르바이트생을 넘어 정식 조직원으로 활동했다. '실장' 내지 '팀장' 직함을 부여받았고, 두 달 동안 매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사무실에 출근해 직장인처럼 조작 업무를 했다. 재판부는 △사무실 안에 'President War Room(SNS 선대본부)'라는 문구를 게시해놓고 △매일 'D-6' 등 대선일까지 남은 일자를 표시해 놓은 점을 들어 윤씨의 활동을 불법 선거운동으로 결론내렸다.

2012년 국정원 사이버사령부 '댓글 부대'

한국일보

대통령선거 개입 및 정치관여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2014년 9월 1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이 끝난 뒤 취재진에 둘러싸여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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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2개 적립됐습니다.'

국군사이버사령부 530단 부대원 일부는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1년 정도 앞둔 2011년 11월부터 이 같은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카페나 음식점의 마일리지 적립 정보로 보이지만, 이는 '위장 문자'로 판명됐다. 부대원들이 '대응할 기사가 2개'라는 의미다.

문자를 받은 부대원들은 포털 비밀카페 등에 접속해 작업해야 할 기사 목록을 확인한 후, 인터넷 사이트 및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여당인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거나 야당을 비판하는 댓글을 작성했다. 부대원들은 작업 후 카페에 '트위터 2건, 블로그 1건(본인이 단 댓글 수)' 등으로 성과를 보고했고, 이는 매일 오전 6시 열리는 530단 상황회의에서 검토됐다. 부대원들 손엔 25만 원씩 업무수당이 쥐어졌다.

이태하 전 국군사이버사령부 심리전 단장 주도로 부대원 120여 명이 2011년 11월에서 2013년 10월까지 댓글을 달거나 리트윗(타인 글을 공유하는 것)한 횟수는 1만1,221번에 달한다. 이 전 단장은 댓글 조작이 발각되자 부대원들에게 증거를 인멸하게 한 혐의로 올해 5월 징역 1년 6개월이 확정됐다.

이처럼 2012년 대선을 앞두고는 국가기관이 댓글 작업에 조직적으로 동원됐다. 사이버사령부보다 더한 곳은 국정원이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소속 직원들을 활용해 이명박 전 대통령 등 당시 여권 후보에게 유리하게 댓글을 조작한 혐의로 징역 4년을 확정받았다.

이전까지 개인이나 민간 주도로 이뤄지던 댓글 조작에 국가기관이 개입해 조직적이고 장기적으로 자행됐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했다. 원세훈 전 원장 판결문을 살펴보면, 그의 지휘 아래 국정원 직원들이 수년간 댓글 조작에 사용했던 트위터 계정은 391개에 달한다. 대선에 개입했다고 간주된 댓글은 10만 건, 정치에 개입한 댓글은 29만 건에 달했다. 국정원은 댓글 작업을 통해 고인인 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진보 교육감까지 야권 인사에 대한 전방위적인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한국일보

2012년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가 인터넷 댓글부대 '십알단'의 조직적인 선거운동 의혹을 제기하자, 운영자로 지목된 윤정훈 목사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를 반박하고 있다. 트위터 캡처


'드루킹' '킹크랩' 조작 기술 진화


2017년 대선을 앞두고는 수작업이 아닌 컴퓨터 기술이 댓글 조작에 활용됐다는 점에서 이전 범죄와는 차원을 달리했다. '드루킹' 김동원씨는 댓글 조작에 나서는 첫 단계로 반복 명령을 수행하는 매크로 프로그램인 '킹크랩'을 직접 개발했다.

'킹크랩'은 특정 기사의 댓글에 공감과 비공감을 반복적으로 입력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사람이 직접 사이트에 접속해 로그인하고 버튼을 누르는 수고 없이, 단시간에 반복 입력으로 댓글 여론을 조작할 수 있도록 했다. 법원은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드루킹'의 '킹크랩' 시연을 봤고, 7만 6,000건 기사의 118만 개 댓글 조작에 공모한 혐의를 적용해 징역 2년을 확정했다.

'드루킹' 일당이 자발적으로 모였다는 점도 특징이다. 일당 대부분은 김씨가 운영한 포털 카페 '경제적공진화모임' 회원들로, 김씨와 적극적으로 공모하지 않은 다수의 카페 회원들도 김씨에게 자발적으로 포털 ID와 비밀번호, 유심칩을 넘겼다.
한국일보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된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26일 오전 창원교도소로 들어가고 있다. 창원=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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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댓글 조작… 당국은 단속 골머리


수사와 처벌이 반복되고 있는데도, 정치권에서 댓글 조작이 쉽게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갈수록 온라인 여론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금품을 뿌리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전통적인' 불법 행위보다 수면 위로 드러날 가능성이 낮아 '리스크'가 적다고 인식되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대선을 앞두고 댓글 조작이 횡행하고 수법도 교묘해지면서 선거관리위원회와 수사기관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조작 대상이 댓글에서 뉴스로, 유통 경로가 포털 및 SNS에서 유튜브 등 영상매체로 확장되면서 대응이 쉽지 않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선관위는 사이버공정선거지원단을 꾸려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만, 하루에도 수백만 건씩 게재되는 댓글과 게시글을 모두 체크하기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반복되는 선거 전 '댓글 조작'은 선거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근절이 되지 않을 경우 더 큰 혼란을 야기할 것"라며 "선관위 산하 혹은 별도 기구로 정보기술 전문가를 포함한 댓글 조작 단속 기구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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