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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 나우] ④ 일본,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사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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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계약, 신고 시 '도장 찍기' 일상... 디지털전환 막는 걸림돌

전자정부 14위... 세계 3위 경제대국 명성 대비 디지털전환율 낮아

코로나19 확산 후 디지털화 필요성 느껴... 올림픽 후 '디지털청' 신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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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던 지난해 6월 일본 도쿄 소프트뱅크 본사 회장 집무실. 일본 민영방송 TBS가 손정의 회장을 인터뷰하는 장면이 유튜브에 소개됐다.

손 회장은 “(코로나19로) 해외 출장이 수개월 동안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라고 말했다. 취재 기자가 “재택근무는 하지 않나”라고 묻자, 손 회장은 “재택근무도 하긴 하지만 회사에 나와 도장(인감)을 찍어야 한다”며 “우리는 전자결재를 하고 싶지만, 관공서나 상대 기업과 계약할 때 직접 만나 도장을 찍어야 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일본 굴지의 IT기업을 이끌고, 100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혁신 기업에 투자하는 세계적인 기업가·투자자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1999년 방한해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도 “한국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초고속 인터넷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해 한국 전역에 통신 인프라가 확대되는 데 기여했고, 2019년엔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AI(인공지능)”라고 말했다.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을 갖춘 그가 서류에 도장을 찍기 위해 출근하는 모습은 아날로그 사회에 머물러 있는 일본 사회의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일본인들의 남다른 ‘도장 사랑’

일본 사회는 전통적으로 서명보다 도장을 사용하는 문화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도장을 찍는다는 건 의사결정의 결과이자, 그 내용에 책임을 진다는 증거다. 특히 중요한 계약, 신고 시에 날인이 없으면 해당 서류는 무효 처리된다. 지금도 행정상의 신고나 결재, 기업 간 거래 시 ‘도장 찍기’가 일반적이다. 상사에게 보고하는 서류의 경우 허리를 숙이듯 비스듬히 도장을 찍는 ‘도장 예절’이 있을 정도다.

일본인의 ‘도장 사랑’은 단순히 계약, 거래 목적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편지, 엽서 등에도 개성이 담긴 도장을 찍을 정도로 애착이 남다르다. 실제로 일본 우체국에선 일반 도장 대신 지역의 풍경을 담은 도장을 쉽게 볼 수 있다. 주요 역사(驛舍)나 관광지에도 방문 기념 도장이 존재한다. 지난해 도쿄 신주쿠의 한 사찰에선 버려진 도장을 위한 추도식이 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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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노 담당상 "도장문화는 좋아해" (서울=연합뉴스) 행정 절차와 관련한 날인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고노 다로 일본 행정개혁 담당상이 지난 24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도장 문화 자체는 좋아한다는 글과 함께 자신의 이름과 얼굴 모습이 담긴 도장 사진을 올렸다. 2020.9.25 [고노 다로 트위터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2020-09-25 11:24:35/ <저작권자 ⓒ 1980-202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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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독특한 도장 문화를 반영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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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에 익숙한 사회, 디지털 전환의 걸림돌로

일본 사회의 뿌리 깊은 도장 문화가 ‘종이 없는(페이퍼리스) 사회’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 일본인들은 여전히 실물 서류에 도장을 찍는 데 익숙해 변화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회 풍조는 궁극적으로 국가 전반의 디지털 전환을 막는 결과를 초래했다. 일본 정부는 ‘일하는 방식 개혁’을 추진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로 도장 문화를 꼽았다. 지난해 7월, 유엔경제사회국(UNDESA)이 가맹국인 193개 국가를 대상으로 전자정부 순위를 매긴 결과, 일본은 2018년보다 두 단계 내려간 14위에 머물렀다. 같은 기간 한국은 3위에서 2위로 뛰었다. GDP(국내총생산) 규모가 미국과 중국에 이어 셋째로 높은 국가치고는 디지털 전환이 다소 늦다는 평가다.

김희원 KOTRA 도쿄무역관은 “일본이 디지털 시대의 유용한 기술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지금까지 변화에 대한 위기감과 새로운 시도에 대한 적극적인 도전 정신이 희박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로 디지털 전환 논의 시작

일본이 디지털 전환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코로나19의 확산이다. 일본 정부는 행정 서비스, 집계 시스템 등의 전자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해 코로나19 확진자를 제대로 집계하지 못했고, 지원금 지급이 지연되는 사태를 겪었다.

기업들 또한 전자결재 등의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아 원격근무 체제를 제대로 가동하지 못했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올해 1월 코로나19에 대비하기 위해 긴급사태를 선언하고 기업 70%의 재택근무 시행을 목표로 협조를 구했으나 도장 결재, 팩스 전송, 대면 회의 등의 이유로 기업들의 재택근무 실행률은 22%에 그쳤다.

이에 정치, 산업계를 중심으로 디지털화의 필요성을 외치는 목소리가 커졌다. 실제로 손 회장은 지난 5월, 2021년 3분기 결산 설명회에서 일본 관청들이 코로나19 확진자 수, 검사 결과 등을 팩스로 전달해 논란이 된 것을 두고 “부끄럽다”며 “일본의 현 상황이 너무 슬프고 우려된다”고 말했다.
2020 도쿄올림픽, 아날로그→디지털 사회로 거듭나는 전환점

이번 2020 도쿄올림픽은 일본이 아날로그 사회에서 디지털 사회로 거듭나는 기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은 과거에도 올림픽 개막을 경제 성장의 ‘터닝포인트’로 삼았다. 일본은 1964년 도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세계 최초의 고속철도 ‘신칸센’을 개통시켰다. 시속 300㎞를 넘나들어 ‘탄환 열차’로 불린 이 열차는 2차 세계대전의 패전을 딛고 일본이 제조업 대국으로 일어섰다는 걸 대외적으로 보여준 상징이었다.

이번 도쿄올림픽 폐막 직후엔 ‘디지털청’이라는 새 정부기관이 출범한다. 일본 참의원은 지난 5월 디지털청 설치를 규정한 디지털청 설치법을 통과시켰다. 디지털청은 총리 직속 기관으로, 총 500명 규모다. 이 중 120명은 민간 기업, 대학 관계자 등으로 채워진다. 디지털 전문가를 모으기 위해 정부 부처 최초로 겸직, 원격근무, 비상근 등도 허용했다.

디지털청은 행정 절차의 디지털화, 디지털 행정 지연 요소 개선 등의 업무를 맡는다. 다른 부처의 업무 내용을 검토하고 개선을 권고할 수 있는 강한 권한도 부여됐다. 정부의 IT 관련 예산 가운데 시스템 정비에 관한 예산도 단계적으로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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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올림픽 선수들을 경기장으로 이동시키는 자율주행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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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청은 도장이 필요한 행정 수속을 모두 없애고 디지털로 전환한다. 호적법을 근거로 하는 혼인신고, 이혼신고 등은 앞으로 날인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일본 정부는 행정 서비스의 디지털화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편리한 디지털 사회상을 보여주면, 기업과 국민이 동참할 것으로 보고 있다.

히라이 다쿠야 일본 디지털개혁담당상(장관)은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는 우리에게 큰 타격을 줬고,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며 “디지털 전환을 단번에 가속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왔다”고 말했다. 이어 “디지털청은 규제 개혁의 상징이자 성장 전략의 핵심”이라며 “지금부터 고령화와 인구감소 속에서 새로운 성장모델을 목표로 하는 일본이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디지털화는 피할 수 없다. 민·관 모두 일본을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명섭 기자 jms9@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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