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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여인숙 에어컨' 조롱받다 신분상승…삼성·LG도 '방방'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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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에 재택근무·원격수업 겹쳐 수요 폭증

2019년 첫선, 지난해 14만→올 30만대 전망

중견업체 파세코가 주도···삼성·LG도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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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사(LG전자의 전신)가 1960년대에 생산한 국내 최초의 에어컨 'GA-111' 모델. 요즘 유행하는 '창문형 에어컨'의 원조 격이다. [사진 LG전자]



경기도 광주에 사는 회사원 김모(39)씨는 최근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 공부방에 창문형 에어컨을 달아줬다. 코로나19로 원격수업을 하면서 아이 방에 당장 에어컨이 필요했다. 하지만 김씨네가 사는 아파트는 건물 외부에 실외기를 설치할 수 없어 실외기 일체형 에어컨을 선택했다.

김씨는 “코로나19로 온 가족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 꼭 필요한 아이템이었다”며 “가격이 70만원이 넘어 비싸기는 하지만 혼자 설치해도 30분 밖에 안 걸렸다. 작동하고 보니 만족도가 기대 이상이다”고 말했다.

에어컨 시장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폭염뿐 아니라 코로나19 여파로 재택근무, 원격 수업 등으로 수요가 늘면서 ‘방방컨(방마다 에어컨)’ ‘1방1냉(冷)’ 시대가 열렸다.

그 중에서도 집 구조상 실외기를 연결하기 어려운 경우 창문형ㆍ이동식 등 일체형 에어컨이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2006년 이후 지어진 아파트 등 공동주택은 건물 외부에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할 수 없어서다.



한때 ‘여인숙에어컨’서 ‘방방컨’으로 급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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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 이동식 에어컨. [사진 LG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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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국내에서 창문형 에어컨의 역사는 50년이 넘었다. 금성사(LG전자의 전신)가 1968년 3월 출시한 ‘GA-111’ 모델이 ‘원조’다. 금성사는 67년 에어컨 사업 진출을 선언하고 미국 제너럴일렉트릭과 기술계약을 맺었다. 이에 따라 로터리 컴프레서(회전 압축기)를 탑재한 국내 최초의 에어컨을 조립 생산했다.

이후 국내 에어컨 시장은 고속 성장해 스탠드ㆍ벽걸이 에어컨을 거쳐 시스템 에어컨으로 진화했다. 이 과정에서 창문형 에어컨은 저가형으로 인식되면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각각 2006년, 2012년에 국내 시장에서 철수했다. 소음이 심해 주로 여관·모텔 등에 설치되면서 ‘여인숙 에어컨’ 취급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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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형 에어컨 시장 규모.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하지만 2019년 중견기업인 파세코가 세로 형태의 창문형 에어컨을 선보이며 틈새시장을 개척했다. 이어 신일전자·위니아딤채·쿠쿠·한일·귀뚜라미 등이 시장에 뛰어들며 저변이 넓어졌다.

박찬솔 SK증권 연구원은 “국내 창문형 에어컨 판매량은 2019년 3만8000대에서 지난해 14만3000대 수준으로 늘었다”며 “이 중 파세코가 약 6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는 30만 대 이상 팔릴 것으로 예상된다.



파세코, 석 달 만에 10만 대 판매 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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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세코의 3세대 창문형 에어컨을 설치한 거실의 모습. [사진 파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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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형 에어컨의 돌풍은 숫자로도 증명된다. 지마켓에 따르면 지난달 26일부터 한 달간 창문형 에어컨의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197% 증가했다. 파세코는 올여름에만 10만 대 이상 판매고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풍기로 유명한 신일전자의 창문형 에어컨 판매량도 전년 동기 대비 20%가량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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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에어컨 시장 규모.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업계에 따르면 국내 에어컨 시장은 포화 상태다. 2016년까지 연 200만 대에서 이듬해 연간 250만 대 규모로 급성장했다. 하지만 지난해 역대 최장 기록을 세운 장마의 영향으로 에어컨 판매가 줄었다. 에어컨 판매 대수는 200만 대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업계는 올해 에어컨 판매량이 200만~250만 대 수준일 것으로 전망한다. 창문형 에어컨은 이런 틈새를 파고들어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LG전자, 뒤늦게 시장 재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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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올해 4월 출시한 창문형 에어컨인 '윈도우핏'. [사진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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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와 삼성전자도 뒤늦게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전략 상품은 다르다.

LG는 지난해 5월 이동식 에어컨을, 삼성은 올해 4월 창문형 에어컨 ‘윈도우 핏’을 출시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재진출 배경에 대해 “창문형 에어컨은 실내·외기 일체형이면서 창틀 손상 없이 간편 설치가 가능한 ‘방방 냉방’ 솔루션”이라며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 등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방마다 에어컨을 설치하고자 하는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비해 LG전자는 이동식 에어컨으로 시장 공략에 나섰다. 창문형과 이동식 모두 실외기를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제품이지만 창문형은 창문과 창틀 사이에 고정하는 방식인 데 비해, 이동식은 기기를 실내에 두고 배기관만 창문 사이로 빼는 형태다. 창문형은 공간 활용도가 높다는 점이, 이동식은 다양한 환경에서 설치 가능하다는 게 장점이다. LG전자의 이동식 에어컨은 올해 미국 유력 소비자 매체 컨슈머리포트가 발표한 ‘홈·오피스를 위한 최고의 이동식 에어컨’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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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전자의 2021년 2세대 창문형 에어컨을 설치한 모습. [사진 신일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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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점은 ‘소음’…올해 37dB 수준으로 개선



그동안 일체형 에어컨은 소음이 크다는 단점이 있었다. 실외기가 외부에 있는 에어컨과는 달리 컴프레서(냉매 압축기)가 기기 내부에 있다 보니 소음이 클 수밖에 없다.

업계는 최근 출시된 모델에선 소음 문제를 개선했다는 입장이다. 파세코 관계자는 “올해 출시된 3세대 제품의 경우 소음을 기존보다 38% 줄여 취침 모드 기준 37.1데시벨(㏈)을 유지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윈도우핏도 저소음 모드를 사용할 경우 37㏈ 수준이다. LG전자의 이동식 에어컨은 정음 모드에서 40㏈ 수준이다. 이는 도서관(40㏈) 수준의 소음으로 수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틈새시장 개척으로 출발했지만 ‘필수 가전’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커졌다. 이병화 KB증권 스몰캡팀장은 “최근 출시된 제품은 에너지효율 문제 등을 개선해 일반 에어컨의 성능을 많이 따라잡은 데다 집안의 냉방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는 수요와 맞물려 또 하나의 매스(대중) 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이 팀장은 “다만 김치냉장고나 제습기 시장처럼 시장 자체는 성장하더라도 기업 간 경쟁이 격화해 기업 입장에서는 고수익 내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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