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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대구 귀천준비학교 졸업생들 "내 죽음 내가 대비해야…남은 삶도 더 소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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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뉴스

대구 수성구 귀천 준비학교 마지막 수업. 류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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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수성구 귀천 준비학교 마지막 수업. 류연정 기자
"예쁘게 좀 찍어 주이소. 주름살 안 보이게 수정 좀 해주고"

호호 웃으며 수줍게 웃는 할머니는 사진 촬영 직전까지 손거울을 놓지 못했다.

혹시나 비뚤게 나올까 저고리 매무새를 다시 만지고, 립스틱을 한 번 더 덧칠한 뒤에서야 사진사를 똑바로 응시했다.

뒷 순서를 기다리는 어르신들도 얼굴에 분을 바르며 소년, 소녀마냥 설레어 했다.

영정사진 촬영이라기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다소 들뜨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 촬영이 이뤄졌다.

한 70대 어르신은 "마지막 가는 길에 놓을 사진인 만큼 환하게 웃는 모습을 담고 싶다"며 이를 드러낸 채 환히 웃어보였다.

28일 수성구 고산노인복지관이 기획한 웰다잉(well-dying) 교육 '귀천 준비학교'가 영정사진 촬영을 끝으로 1기 과정을 마쳤다.

넋이 하늘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인간의 죽음을 의미하는 귀천.

30명의 지역 노인들이 1기 교육생으로 참여해 약 두 달간 귀천이란 무엇인지,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남은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등에 대해 고민하고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누구보다 열심히 교육에 참여했다는 이모(75·여)씨는 "이 교육을 받겠다고 하자 우리 아들이 왜 벌써부터 죽음을 준비하려 하냐며 펄쩍 뛰더라. 하지만 내 죽음인데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맞을 순 없다고 생각해 참여했고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수업이 참 유익했다고 평가한 박모(70·여)씨는 "처음엔 사실 가만히 있어도 언젠가는 죽음이 올 건데, 또 아직 나이가 그리 많진 않은데 이런 공부를 벌써부터 미리 해야 하는지 조금 의아했다. 하지만 막상 수업을 들어보니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다"고 전했다.

박씨는 "우리가 알아야 하는 일이고, 모르고 닥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오래 살지 않고 싶다는 게 아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되, 미리 내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노컷뉴스

대구 고산노인복지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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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웰다잉을 생소하게 느꼈던 어르신들도 교육 과정이 진행될수록 개념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다른 참여자들과 공감하며 누구에게나 죽음이 찾아온다는 자연스러운 이치를 배우는 시간, 죽음에 대한 인식을 '의미 있는 피날레'로 전환시키자는 강연 등이 큰 계기로 작용했다.

연명의료에 대해 배운 덕분에 만약 그런 상황이 닥칠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 인지, 자녀들과 미리 상의해봤다는 어르신도 있었다.

교육 과정 중에는 유언장이 왜 필요한 지에 대해 배우고 직접 작성을 시도해보는 시간도 포함됐다.

한 어르신(77·여)은 "재산은 없지만 자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담아 유언장을 미리 써놨다. 차분한 상태에서 전하고 싶은 내용을 적을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가장 인기가 좋았던 수업은 장묘 현장에 직접 가보는 체험 시간으로 꼽혔다.

평소 매장, 납골당 등 여러 장묘 방식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체험이 큰 도움이 됐다는 것.

특히 내가 원하는 장묘 방식을 미리 정하고 자녀에게 의사를 전할 수 있어 좋다는 의견이 많았다.

현장 체험에 따라나서길 잘했다고 밝힌 한 어르신(79·남)은 "막연하게 생각하는 거랑 현장에서 보고 듣는 거랑 많이 다르더라. 미리 '나는 어떤 것이 좋더라'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좋은 기회인 것 같다"고 말했다.

노인들은 또 이 수업 이후 남은 삶을 바라보는 시각도 조금 달라졌다고 했다.

교육 과정이 끝나는 게 아쉽게 느껴진다는 한 어르신(69·여)은 "나의 인생을 돌아봄으로써 남은 시간을 더 의미 있고 소중하게 쓰자는 생각이 생겼다. 웬만하면 이해하고 화해하고 마음을 넓게 가지고 싶어졌다"며 "참 필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반응이 워낙 좋은 만큼 수성구는 앞으로 이 사업을 확대할 방침이다.

고산노인복지관에서 올 하반기에 한 번 더 같은 교육 과정을 진행할 예정이고, 수성구는 내년에 총 4회에 걸쳐 웰다잉 교육을 진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김대권 수성구청장은 "아름다운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교육의 기회가 마련돼 다행"이라며 "더 많은 어르신들이 교육에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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