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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광주 건물붕괴 감정 결과… “해체계획서 무시, 후면부터 철거 탓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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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벽강도 고려 ‘좌→ 후→ 전→ 우’

업체선 뒤부터 ‘ㄷ’자로 파고들어

돈 아끼려 특수장비 대신 굴착기

폐자재로 흙더미 쌓은 것도 원인

세계일보

광주경찰청이 28일 공개한 광주 학동 건물 붕괴 참사 당일(지난달 9일) 철거 현장 모습. 광주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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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철거건물 붕괴 참사 원인은 안전구조 검토를 무시한 무리한 철거 방법에서 비롯됐다는 감정 결과가 나왔다.

광주경찰청 수사본부는 28일 학동 4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지 내 철거건물 붕괴와 관련한 원인과 책임자 규명 등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수사본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결과를 토대로 붕괴 원인을 분석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하 1층, 지상 5층 건물의 철거는 지난 5월 27일 시작됐는데, 철거업체는 건물 사면을 기준으로 외벽강도를 고려한 좌→후→전→우의 순서대로 철거하라는 해체계획서를 처음부터 지키지 않았다. 최상층부터 아래쪽으로 철거하는 과정을 무시하고 후면부터 ‘ㄷ’ 형태로 파고 들어가는 공사를 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건물 저층을 부수면서 나온 폐자재로 흙더미(성토제)를 쌓아올린 것이 붕괴의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철거업체는 붕괴 일주일 전인 지난달 2일에는 하층부 일부와 후면부 주요 기둥을 제거하고 3층 내부에 성토제를 채워넣었다. 4층 바닥 높이까지 쌓은 흙더미 위에 굴착기가 올라가 4,5층 바닥 보와 기둥을 한꺼번에 철거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붕괴 당일, 굴착기가 건물 내부로 파고 들어가면서 작업을 해 위에서 봤을 때 ‘ㄷ’ 자 형태의 구조물만 남았다. 주요 기둥이 철거돼 건물 뒤편에서 도로 방향으로 미는 힘이 작용할 경우 이를 버티지 못하는 불안정한 상태가 됐다. 결국 30t이 넘는 굴착기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건물은 철거작업을 시작한 지 13일 만에 붕괴됐다.

철거업체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제대로 된 장비를 투입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철거건물 5층 높이의 거리를 감안하면 특수장비 ‘롬 붕 암’이 필요하다. 성토체를 쌓았어도 옥탑층까지 높이는 11m에 이르지만 철거 당시 활용한 장비는 일반 굴착기다. 일반 굴착기의 작업반경은 10.82m에 불과하지만 특수장비보다 2∼3배 저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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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일 광주경찰청 형사과장이 28일 본관 9층 어등홀에서 '동구 학동 재개발사업 정비 4구역 철거 건물 붕괴 참사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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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현장에서 비산 먼지 날림을 방지하기 위해 뿌린 물이 성토제를 불안정하게 만든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해체 계획서를 지키지 않고 구조 검토조차 없이 막무가내식으로 철거하다 건물 붕괴라는 참사를 빚었다”고 말했다.

수사본부는 붕괴 참사와 관련해 23명을 입건해 이중 6명을 구속했다. 붕괴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현장소장과 감리자 등 5명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구속됐다. 재개발조합 공사 입찰 과정에서 브로커 역할을 한 1명도 구속됐다.

수사본부는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이 불법 재하도급의 사실을 알고도 묵인·방조한 것으로 보고 관할 지자체에 과태료나 행정처분을 받도록 했다. 현대산업개발은 모바일 채팅방에 불법 하도급 업체를 초청하고 현장 장비 등록 과정에서 불법 하청업체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게 수사본부의 판단이다.

이번 불법 재하도급은 부실 공사의 원인이 됐다. 일반 철거와 관련해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은 조합과 50억원의 계약을 맺었다. 불법 재하도급을 거쳐 실제 공사를 한 업체의 공사 단가는 12억원으로 38억원이 줄었다.

이번 수사에서 철거공사의 공동 수급자로 계약을 맺었지만 실제 공사에는 참여하지 않고 수익 지분만 챙기는 이른바 ‘지분 따먹기’가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점이 확인됐다. 공사 단가를 낮춰 불법 철거의 원인으로 작용했지만 마땅한 처벌규정이 없다.

이날 경찰 발표에 대해 한 유족은 “붕괴 사고의 책임자 규명과 처벌이 필요하다”며 “다소 아쉬움이 남는 수사결과”라고 말했다.

광주=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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