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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죽은 아내가 되돌아왔다, 가상현실로…VR은 선한 기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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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윤지혜 기자] [편집자주] [편집자주] AI(인공지능)는 인간의 따뜻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인류의 삶을 풍족하게 만들기 위해 고안된 AI는 그러나 최근 알고리즘의 편향성과 부작용 등 각종 논란에 휩싸여있다. AI 뿐 아니다.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 로봇, 생명과학 등 4차산업혁명 기술은 앞으로 어떻게 활용되느냐에 따라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올해 U클린 캠페인은 '사람 중심의 지능정보기술'(Tech For People)을 주제로 새로운 기술이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윤리적 문제와 해법을 제시한다.

[u클린 2021] ④-1 산자와 죽은자의 재회…VR 가능성과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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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김정수씨가 VR로 아내 고 성지혜씨를 만나는 장면/사진=MBC 동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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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혜야 잘 있었어? 이제 안 아파?" 남편이 울음 가득한 목소리로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가 "오빠 살 빠졌네, 잠은 잘 자?"라고 묻자 그는 흐느끼며 허공에 손을 휘휘 저었다. 커다란 VR(가상현실) 고글을 쓴 채, 4년 전 세상을 떠난 아내의 뺨을 어루만지기 위해.

지난 1월 방영된 MBC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시즌2의 한 장면이다. 이 프로그램은 세상을 등진 아내와 남편, 죽은자와 산자를 VR 기술로 만나게 했다. 가상현실로나마 만난 아내 앞에서 남편은 끝내 울음을 터트렸고, 이를 지켜본 시청자도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해 2월 첫 방영된 이 프로그램은 세상에 남겨진 이들이 VR로 고인에게 못다 한 말을 전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선한' 디지털 기술로 유족들에게 심정적 위안을 전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방송 첫해엔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 시상식에서 TV 다큐멘터리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VR로 고소공포증 극복하고 공감능력 키운다…향후엔 체온도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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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이 故 김용균 군의 작업현장을 VR로 체험하는 모습/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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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VR은 심리치료에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의료계에선 VR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치료 등에 활용한다. 예컨대 사고로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는 사람에게 HMD(안경 형태의 영상표시장치)로 에펠탑 엘리베이터를 타는 VR 영상을 보여주면서 가상현실 속에서라도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하는 것이다.

일부 효과도 나타났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6년 유럽·중동 7개국에서 VR 치료실험 '공포를 줄이자'(Be Fearless)를 진행했다. 참가자에게 고소공포증·대인공포증 등 사회공포증을 유발하는 영상을 VR로 시청하게 한 후, 스마트워치로 참가자의 심박수 등 건강상태를 측정한 것이다. 그 결과 2주 만에 참가자의 87.5%가 높은 곳에서 느끼는 불안감이 평균 23.6% 경감됐다.

VR은 사람들의 행동 변화를 끌어내는데도 활용된다. 제러미 베일린슨 미국 스탠포드대 가상인간상호작용연구소장은 성차별·인종차별 등 다양한 사회적 차별을 경험할 수 있는 VR 프로그램을 만들어 실험한 결과, 참가자들의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과 이해도가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런 이유로 영국 알츠하이머연구소는 간병인 교육에 VR을 활용하기도 한다.

이에 MBC는 시즌2에서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중 사고를 당한 김용균 군과 그의 작업 현장을 VR로 재현해 일반인이 체험하도록 했다. 한 참가자는 체험 후 "처음에 기사를 볼 땐 외면했는데, VR로 보면서 몸에 와닿으니 무감각이 무섭다고 느껴졌다"라고 말했다. 이번 방송은 이탈리아에서 열린 '프리 이탈리아' 시상식에서 특별언급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VR기기의 보급과 소프트웨어의 고도화, VR과 AR(증강현실)을 결합한 XR(확장현실) 기술로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사례는 더 늘 전망이다. 향후엔 남편이 아내의 얼굴을 만지고 체온까지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 미국 게임사 '밸브'가 지난해 선보인 VR 게임 '하프라이프 알릭스'는 이용자가 게임 속 사물의 무게감까지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고인 소환한 VR…상용화 앞서 윤리적 고민 선행돼야

VR 기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VR 콘텐츠의 대중화와 상용화에 앞서 윤리적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해당 다큐멘터리는 방송 직후 가족을 잃은 슬픔을 상업적 소재로 활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는 고인을 되살린 VR 기술이 상업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일각에선 '잊힐 권리'에 대한 성찰 없이 고인의 초상권을 복원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가족의 의사와 무관하게 고인이 사후 본인의 콘텐츠가 방송에 공개되길 바라지 않을 수도 있어서다. 2014년 사망한 미국 배우 로빈 윌리엄스는 유서에 자신의 생전 모습을 2039년까지 어떤 영역에서도 사용할 수 없다고 못 박기도 했다.

실제와 가상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현실의 비윤리적 행위가 가상에서 횡행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2016년 '퀴VQ'(QuiVr) 게임에서 발생한 성추행 사건이 대표적이다. 김상균 강원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책 '메타버스'에서 "가상세계가 정교해지고 실재감이 높아질수록 그 안에 어떤 세계관과 상호작용을 담을 것인지 깊게 고민해야 한다"라며 "자칫 즐기는 공간이라는 미명 아래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를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윤지혜 기자 yoonji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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