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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손해배상액만 높이면 언론개혁?…‘언론 압박’에 혈안된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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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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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25일 언론개혁 촉구 시민사회 비상시국선언 기자회견이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박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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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2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단독으로 처리한 언론중재법(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 법은 허위·조작 보도를 한 언론사에 손해액의 5배에 달하는 징벌적 배상책임을 지울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언론의 책임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이지만, 공직자와 기업 등 권력을 가진 이들이 법을 악용해 언론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비판이 높다. 민주당은 8월 임시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개정안은 언론이 고의·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 보도로 재산상 손해를 입히거나 인격권 침해를 했을 때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했다. 또 취재과정에서 법률을 위반한 경우, 제목과 기사 내용을 다르게 하거나 제목을 왜곡한 경우, 사진·삽화로 기사 내용을 왜곡하는 경우 등에는 고의·중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사진·삽화 왜곡의 경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일러스트를 쓴 조선일보 왜곡 보도 사태 등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대통령·국무총리·국회의원·지방자치단체장 등 정무직 공무원과 고위공무원, 판·검사, 대기업 등에 대해서는 ‘악의를 가지고’ 허위·조작보도한 경우에 한해 적용하는 것으로 제한을 뒀다. 허위·조작보도로 인해 손해가 발생할 것을 인식한 경우, 허위·조작보도가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경우 등이다.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공인에 대한 언론의 감시 기능을 위축시킨다는 비판이 잇따르자 예외를 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높다. 우선 허위·조작 보도의 범위나, 악의를 가진 게 어떤 것인지 명확히 알 수 없을 정도로 법이 추상적·포괄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 공인과 기업도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겼기 때문에 언론 자유 위축은 불가피하다는 비판도 있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28일 “(기사 내용이) 허위인지 진실인지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데, 기사 중 특정 문장을 잡아 소송전을 벌이라고 하는 것은 공인과 기업들이 전략적 봉쇄소송을 남발하고 언론이 위축되는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협력실장은 “손해배상액과 무관하게 공인과 대기업은 (청구 주체에서) 제외돼야 한다”며 “공인과 대기업 등은 이미 현행 법에 따라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있는데 몇 가지 조건을 두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것은 남용할 여지를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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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원회가 지난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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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안 내용의 상당수는 기존 언론중재법에 따라 언론중재위원회나 법원 판결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개정안은 언론의 위법행위로 피해를 입었을 때 손해배상액의 하한선은 언론사 매출의 1만분의 1, 상한선은 1000분의 1 수준으로 명시했다. 단순계산하면 언론사 1년 매출이 3000억원이더라도 3000만원~3억원까지 손해배상액이 산정된다. 그런데 언론중재위원회 2019년 보고서를 보면, 손해배상 인용액이 2억원까지 인정된 사례가 있었다. 그 이전에도 손해배상 인용액이 3억원까지 인정되고, 정정·반론보도 뿐 아니라 기사 삭제 청구가 받아들여진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 구제를 위해 손해배상액을 높이자는 논의도 언론중재위원회와 법원 내에서 이뤄지고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을 통해 별도로 명시할 필요성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특히 한국은 명예훼손을 형사범죄로 처벌하는 법을 두고 있다. 허위사실을 적시한 때 뿐만 아니라 사실을 적시한 때에도 범죄로 처벌할 수 있다. 공공의 이익에 관하거나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는 법원이 언론 보도에 위법성이 없다고 판단하기는 하지만, 이를 악용해 언론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비판은 지속적으로 나온 상태다.

정작 보도의 공정성과 질을 높이기 위한 다른 언론개혁 정책들은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김동원 실장은 “오보가 났을 때 기자와 구성원들이 사측에 (대책을) 요구하고, 독자들에게 설명하는 기구로 편집위원회 설치 의무화를 요구했지만 논의되지 않고 있다”며 “처벌 위주의 언론개혁은 대중적으로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시적일 뿐”이라고 말했다. 또 시민참여 강화 등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 문제의 경우 언론단체들이 지속적으로 강조해왔음에도 별다른 진전이 없다.

한 언론법 학자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에 대해서는 언론중재위원회나 법원에서 이미 손해배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개정안이 실질적으로 언론에 적용될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며 “다만 언론의 기존 취재관행 중 일부는 혁신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국민들의 정서가 있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를 정치권과 언론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기자협회·한국신문협회 등 5개 언론단체는 이날 공동 성명을 내고 “개정안은 헌법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반민주적 악법”이라며 “민주당이 입법 권력을 이용해 언론을 길들이려는 언론중재법 개정을 강행할 경우 헌법소원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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