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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허준호, '모가디슈' 촬영장에서 이 질문 반복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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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이들이 해맑은 표정 지으며 총을 든 장면, 가슴 아파"

오마이뉴스

▲ 영화 <모가디슈>에서 북한 대사 림용수 역을 맡은 배우 허준호. ⓒ 롯데엔터테인먼트



"북한 대사 역할인데 하실래요?"

류승완 감독과 저녁 식사 자리에서 허준호는 대뜸 감독이 쏟아놓는 이야기를 경청했고, 그 자리에서 출연을 결정했다. 그렇게 영화 <모가디슈>의 한 축이 세워지는 순간이었다. 대본을 받은 상태도 아니었다. "감독의 눈빛이 믿음을 줬다"는 간단한 이유였다고 허준호는 최근에야 고백했다.

28일 개봉한 <모가디슈>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오랜만에 등장한 국내 블록버스터 영화다. 1991년 소말리아 모가디슈에 파견 나가 있던 남한과 북한 외교관 일행이 내전을 뚫고 함께 생존을 위해 탈출을 도모하는 이야기다. 자칫 막연한 남북 화해 메시지를 담은 영화로 생각할 수 있지만 공개된 작품은 각 개인의 인간미와 측은지심이 강조된 휴먼 드라마에 가까웠다.

완벽했던 해외 로케이션

허준호는 북한 대사 림용수를 맡았다. 남한 대사 한신성보다 훨씬 일찍부터 소말리아에 머물며 관계를 다져온 인물로 지병인 당뇨가 있고, 곁엔 냉정하고 과감한 참사관 태준기(구교환)가 있었다. 이처럼 영화는 서로 다른 개성의 인물들이 대립하거나 회유하고 또는 서로를 이용하는 과정을 속도감 있게 담고 있다.

"철저하게 대본을 중심으로 연구했다. 그 시대 상황을 잘 모르기도 했고, 어렸을 때 우리 세대는 북한을 '북괴'라고 배웠거든. 교과서에선 북한을 늑대로 묘사하기도 했고. 나도 모르게 가치관이 경도됐을까 싶어 내 생각을 담기보단 대본에 나온 걸 잘하는 게 일단 중요했다. 림용수가 신체적으로 아픈 사람이라 거의 매일 뛰고 줄넘기를 하면서 얼굴 살을 뺐다.

소말리아 내전은 어렸을 때 듣긴 했다. 근데 대한민국 대사와 북한 대사가 같이 탈출했다는 건 류승완 감독님에게 처음 들었다. <블랙 호크 다운>이라는 영화가 떠오르더라. 당시 자료나 사진, 영상을 유튜브 등으로 보고 찾을 수 있는 건 찾아봤다. 얼마 없는 자료였지만 시체를 바리케이드로 삼았다는 문구가 참 충격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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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가디슈>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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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호는 거기서부터 파고들었다. 단순히 고뇌에 찬 북한 대사가 아니라 그 인물이 처한 상황과 배경을 이해하려 했다. "왜 그런 비극이 벌어졌을까. 예전에 <하얀전쟁>이라는 작품을 하면서 전쟁의 공포를 간접 경험한 적이 있다"며 그는 "아이들이 해맑은 표정으로 총을 들고 연기하는 장면에선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라"고 말했다.

"내가 준비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였다. 현장에선 류 감독을 많이 의지했고, 동료들에게 물어보면서 같이 쌓아나갔다. 모니터를 자주 봤는데, '괜찮아요? 잘 됐어요? 다시 한번 할까요?' 이런 말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다. 감독님이 괜찮다고 해도 제가 다시 해보자고 하기도 했고. 좀 귀찮게 했다(웃음).

그 외엔 너무 준비가 잘 된 현장이었다. 전에 제가 해외 촬영을 다녔을 땐 대부분 사고가 있었다. 사람이 다치거나, 현지 경찰에게 잡혀가기도 했고, 제가 촬영 장비를 같이 들고 다니기도 했다. 연기보단 주변 환경에 더 신경을 써야 했는데 <모가디슈>는 정말 연기만 집중하면 되는 현장이었다. 정말 감사했고, 꿈에 그리던 현장이었다."


감사와 겸손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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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모가디슈>에서 북한 대사 림용수 역을 맡은 배우 허준호.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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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경험으로 허준호는 누구보다 로케이션 촬영에서 동료들을 챙기곤 했다. 한국에서 공수한 커피를 직접 동료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내려줬다는 미담이 이번에도 전해졌다.

"해외 촬영을 오래 하다 보면 한 3주째 슬슬 사고가 일어난다. 근데 이건 본의 아닌 경우가 많다. 향수병 등 어쩔 수 없는 게 있다.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뭘까 사실 대화하고, 술 한 잔 하든 차를 마시든 그 정도였다. 이번에 내가 할 수 있는 걸 생각하다가 커피라도 직접 타주자 싶었지. 매니저에겐 미안했지만 재료를 좀 준비하자고 했다."

1986년 영화 <청 블루 스케치>로 데뷔한 이후 그의 연기 인생 초반은 말 그대로 황금기였다. 그러다 개인적 아픔, 여러 일을 겪으며 2007년 이후 돌연 연기 활동을 중단했고, 약 10년이 지나 드라마 <뷰티풀 마인드>를 시작으로 차츰 대중과 만남을 시작했다. "뭐 살면서 나 혼자만 힘들었을까. 다들 힘든 일을 겪지 않나"며 대수롭지 않은 듯 그는 말을 이었다.

"인간 수명을 100세로 잡으면 절반을 넘게 살았잖나. 그만큼 제가 할 수 있는 작품도 적어지니 하나하나가 소중해진다. 감사하기도 하고. 특별히 어떤 원칙을 갖고 임하진 않는다. 그저 소중하니까 대본 보는 시간이 좀 더 많아졌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제가 믿는 신에게 너무 감사드린다.

물론 연기는 매번 숙제다. 절대 쉬워지지 않더라. 한 켠에선 제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일단 지금은 제게 주어지는 것에만 집중하겠다. 나이를 먹을수록 누군가에게 방해가 되지 말자는 생각이 강해진다. 어떤 비결이 있는 건 아니다. 내겐 힘이 없다. 이미 무너지기도 했고, 도망가기도 했다. 전 강한 개인이 아닌 평범하고도 평범한 개인일 뿐이다."


이선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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