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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직고용 아니면 안 간다"는 민주노총…현대제철에 무슨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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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최민경 기자]
머니투데이

(서울=뉴스1) 이성철 기자 = 16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열린 '현대기아차그룹 현대제철은 정규직 전환 이행하라 기자회견'에서 진보당과 금속노조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관계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2021.3.16/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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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하청 근로자 전원 정규직 전환 결단을 내린 현대제철이 '노노갈등'에 발목 잡혔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간 의견이 충돌하며 정규직 채용 인원 미달 사태가 발생했다. 코로나19(COVID-19) 이후 겨우 회복 사이클을 탄 상황에서 생산차질 우려가 커진다.

정부와 정치권의 강한 압박이 기업의 인력운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면서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현대제철과 유사한 근로자지위소송을 진행 중인 다른 기업의 시선에서도 근심이 읽힌다.

28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의 새 계열사 현대ITC는 지난 19일부터 26일까지 기존 사내하청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채용 지원 접수를 받았다. 접수 마감 결과 채용 대상 인원 7000여명 중 2000여명이 자회사 채용을 거부하며 지원하지 않은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현대제철은 지난 6일 지분 100% 출자 자회사인 현대ITC를 설립하고 협력업체 직원들을 직접 채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협력업체 직원들의 근로조건 향상과 고용 불안 해소를 위해 자회사 형태 채용을 결단한 것이다.

협력업체 인력 직고용은 철강업계는 물론 대규모 제조업체 중 최초 사례다. 자회사 채용 인력의 임금은 기존 현대제철 정규직 임금의 60%에서 80% 수준으로 인상한다. 위로금 1000만원과 자녀 학자금 등 본사 정규직 복리후생도 반영된다. 또 현대제철은 최근 직원들과 입사 후 임금 및 근로조건 교섭을 추가적으로 진행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폭탄은 노조 간 입장차에서 터졌다. 포항과 인천공장 협력업체 직원 2000여명은 대부분 채용 지원 했지만, 당진공장 협력업체 직원 5330명 중에선 3500여명만 지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제철 사내하청 노조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으로 나뉜다. 지원하지 않은 근로자들은 대부분 민주노총이다. 민주노총 노조는 현대제철 본사 직고용이 아니면 수용하지 않겠다고 맞선다. 반면 한국노총은 임금 등 조건 재협상을 전제로 채용에 응하기로 했다.

민주노총은 또 불법파견 소송 취하를 전제로 자회사 채용이 진행된다는 것도 문제 삼았다. 현대제철 순천공장 사내하청 직원 500여명은 현대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직접고용요구소송)에서 1·2심 모두 승소하고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민주노총은 '패소를 앞둔 현대제철이 자회사 채용 꼼수를 쓴다'고 비판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사회적 대타협' 측면에서 사안을 보고 있다. 사측의 조건을 일부 수용해 소송이 아닌 노사 교섭으로 사내 하청 문제를 풀어가겠단 입장이다. 현대제철이 직접고용을 할 경우 신규채용이 중단돼 취업준비생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도 한국노총이 채용안을 수용한 이유다.

소송에 대해서도 입장이 다르다. 이용우 한국노총 현대제철 당진공장 노조위원장은 "당진공장 소송은 1심 판결도 안 나온 상황에서 소송이 끝나려면 최소 10년이 넘을 것으로 보이는데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며 "가족을 당장 부양해야 하는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과 뜻을 같이 하기 위해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회사 채용을 계기로 민주노총 노조에서 한국노총 노조로 넘어온 직원들도 있다. 이 위원장은 "민주노총 노조 인원이 한국노총 인원의 최소 2배 이상인데 당진공장 채용 지원자는 5330명 중 3500명으로 과반이 넘는다"며 "민주노총에서 이탈자가 있었다"고 말했다.

노사갈등에 노노갈등이 겹치자 철강업계는 난감하다. 2분기 기준 현대제철의 부채총계는 18조1520억원으로 차입금을 계속 갚아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현대제철로선 비용 증가를 감수하고 타협안을 마련한 것인데 노조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갈등 봉합이 쉽지 않아졌다. 역대 최고 호황기를 구가하며 '풀가동' 중인 철강업계에 파업 등 생산 차질이 생길까봐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정부의 연이은 권고와 이에 따른 기업의 고용형태 전환, 노노갈등 폭발이라는 흐름에 대해서도 산업계는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가인권위는 2019년 현대제철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 시정을 권고했다. 올 4월엔 고용노동부도 시정 지시를 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현대제철로서는 무엇보다 강한 압박으로 느껴졌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협력업체와 하청 문제는 정부가 만든 제도고 기업은 노동시장에서 이 제도를 활용할 뿐"이라며 "현대제철에선 타기업들과 달리 굉장히 많은 부분을 양보해 타협안을 내려놓은 건데 노조에서도 조율에 대한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민경 기자 eyes0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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