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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프로토콜 경제] Part Ⅰ 왜 나왔나 | 대기업 MZ세대의 성과급 반란과 배민·쿠팡의 성과 공유·상생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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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고용되는 게 아닌 합류하는 겁니다.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영화 <미안해요, 리키!> 中

2019년 개봉한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미안해요, 리키!(Sorry, We Missed You)>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현실을 다룬다. 택배일을 하는 주인공 리키는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으로서 플랫폼 노동자다. 고객에게 물품을 제때 배송해야 한다는 플랫폼의 규칙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일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잃는 것도 많아졌다. 그의 위치는 GPS를 통해 실시간으로 고객들에게 노출됐고, 배송이 늦으면 부정적인 서비스 평가를 받았다. 고용구조가 아니었기에 차량 구매비와 개인 보험료를 스스로 부담해야 했고, 이외에도 과태료, 도난 물품 보상비 등 부수적인 비용을 책임져야 했다. 최선을 다해 일했지만 그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러한 스토리는 소위 플랫폼 노동자들이 일하는 긱(Gig) 이코노미에서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다. 정식 고용 관계를 맺지 않아 노동법의 보호는 받지 못하고 플랫폼이 얻는 막대한 수익은 온전히 공유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플랫폼으로 인해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기도 하지만, 이러한 일자리들의 고용 형태가 불안정하고, 노동자들이 지나치게 강도 높은 노동을 요구받는다는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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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급 지급 기준 공개하라”

프로토콜 경제에 대한 요구 증대


올해 들어 정재계 안팎에서 프로토콜 경제란 용어가 많이 회자됐다. 정치권에서는 박영선 전 중기부 장관이 지난해 11월 블록체인 기업과의 간담회에서 처음 이 용어를 사용했다. 이후 정의선 현대자동차 사장과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에게 프로토콜 경제 도입을 제안하기도 했다. 나아가 정부의 2021년 경제정책 방향에도 프로토콜 경제 발전전략 수립이 과제로 담겼다.

프로토콜 경제는 플랫폼 기업의 승자독식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된다. 코로나19 이후 플랫폼 기업은 기회를 포착해 승승장구하고 있는 반면에 소상공인들의 시름은 깊어졌다. 이런 상황 속에 배달의민족이 수수료 인상을 시도하자 비난 여론이 커졌다. 플랫폼 기업 창업자와 주주들이 부를 누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삶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플랫폼 경제에서는 플랫폼 기업은 노동자와 직원의 노력으로 성장하지만, 그 성장을 공정하게 향유하지는 못한다.

남기윤 DB금융투자 연구원은 “플랫폼 노동자의 노력으로 성장한 성취를 주식을 가지고 있는 소수의 창업자와 투자자들, 그리고 스톡옵션을 받았던 소수의 직원만 큰 부자가 되는 현상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해 점점 더 많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라며 “변화의 첫걸음에 불과하지만 이런 변화가 조금씩 쌓이면 다 같이 일하고 각자가 기여한 만큼 몫을 가져가는 구조가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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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경제에 대한 요구는 비단 긱 이코노미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최근 대기업 MZ세대 직원들의 ‘성과급 반란’ 사태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삼성, SK, 현대차, LG 등 대기업들은 올해 들어 2030 젊은 직원들의 성과급 성토에 몸살을 겪었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역대 최대 실적을 냈음에도 전년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줄어든 성과급에 가감 없는 목소리를 냈다. 사내 익명 게시판이나 직장인 앱은 기본이고 직접 사장에게 성과급 책정 기준과 임원 성과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입사할 때 인사 담당자가 삼성만큼 임금과 성과급을 챙겨 줄 자신이 있다고 했는데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거죠?”

올 1월 29일 SK하이닉스에 입사 4년 차인 한 사원은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과 전 임직원에게 이 같은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초과 이익 배분금(PS) 산출 방식과 계산법의 투명한 공개, 삼성과의 임금 차별에 따른 사기 저하에 대한 해결책 제시가 요지다. 성과금 반란은 쉽게 진압되지 않고 전력이탈과 집단행동으로 이어졌다.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경력직 합격 발표가 진행되자 SK하이닉스의 퇴직자 수는 100여 명에 달했다.

현대차 사무·연구직 직원들은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문제의식을 공유한 지 40여 일 만에 일사천리로 노동조합(노조)을 설립했다. 500여 명의 조합원을 보유한 ‘현대차그룹 인재존중 사무·연구직 노조’의 위원장(이건우 현대케피코 연구원)은 1994년생 20대의 MZ세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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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가 심상치 않자 기업 오너들은 직접 타운홀 미팅에 등판했다. 최태원 회장은 올해 연봉을 반납하고 직원들의 성과급 협상 과정에 참여를 약속하기도 했다. 대형 IT 기업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네이버와 카카오도 코로나19로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한 것에 비해 성과급 인상이 미미하자 직원들이 반기를 들고 나섰다. ‘같은 동네(판교) 옆집’ 게임회사들이 역대 최고 실적에 파격적인 성과급 인상을 지급하자 이와 비교해 반란조짐이 일어 네이버와 카카오의 은둔형 창업자들이 ‘사내 청문회’에 소환됐다. 여간해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와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지난 2월 25일 각각 네이버와 카카오 임직원 앞에서 성과 보상 철학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박항준 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이에 대해 “MZ세대는 자신들의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곧 그들의 권리를 침해받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이를 금전적인 보상보다 더 중요하다고 느끼고 리더나 윗사람의 가스라이팅이나 공리주의적 집단주의, 다수결 결정에 무조건 따르는 것에 동의하지 않아 이에 익숙한 기성세대들로부터 우려와 비난을 받는다”라고 분석했다.

안동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주식회사는 기존 플랫폼 기업으로서 직원들은 주주가 아닌 고용인으로 피속되어 기업의 실적에 따른 보상과 책임은 주로 주주에게 있다”라고 전제한 뒤 “주식회사 역시 스톡옵션이나 성과급을 통해 일부 실적에 대한 보상을 받는 구조는 가지고 있으나 현재 MZ세대들을 달래기는 부족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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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현대자동차 그룹회장(오른쪽)이 직원들과 타운홀 미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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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이러한 성과급 반란 사태에 대해 프로토콜 경제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안동현 교수는 “성과급을 결정하는 의사결정에 대한 참여가 배제되고 투명하게 기준이 공개되지 않는 상황에서 참여에 대한 공정한 보상 시스템을 요구하는 MZ세대와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이러한 참여와 보상 투명성을 이상적으로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시스템이 프로토콜 경제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항준 교수는 “MZ세대를 기존의 엘리트 양성과 성과 보상 위주의 HRD(인적자원개발) 전략으로 접근한다면 집단적인 반항과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며 “그들과의 세대 공감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시스템이 바로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하는 ‘프로토콜 경제’임을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지난 5월 사람인이 직장인 126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89.4%가 ‘성과급 등의 보상체계 산정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에 대한 이유로는 ‘불공정함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54.1%, 복수선택)’가 역시 가장 컸다. 다음으로 ‘공감과 납득이 필요한 부분이라서(43.2%)’, ‘체계 없이 임의로 평가하여 지급하는 것 같아서(41.8%)’, ‘기업의 경영 정보 중 하나이므로(33%)’, ‘기존에 받았던 성과급에 의문이 있어서(14%)’ 등의 의견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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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쿠팡 프로토콜 경제 실험

플랫폼·프로토콜 경제 상생 가능한가?


‘배달의민족’은 올해 초 정부기관이 수여하는 제26호 ‘자상한 기업’으로 선정됐다. 중소벤처기업부에 의하면 이 상은 선정하는 대기업이 보유한 역량과 노하우 등의 강점을 미거래기업·소상공인까지 공유하는 기업에 부여된다. 배민의 선정 배경으로 “프로토콜 경제 실현을 위한 첫 번째 모델이 되기를 약속하며”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중기부와 배달의민족이 맺은 협약주제들을 살펴보면 ▲업력 10년 이상 소상공인에 내 가게 구입자금 지원 ▲지역·업종별 데이터, 개별 사업주 마케팅 분석정도 무상제공 ▲교육 프로그램 맞춤형 컨설팅 제공 등이 주요 내용이다.

김범준 우아한형제들 대표 역시 수상소감으로 “배민은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소상공인분들께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기 위해 광고비와 금융 관련 지원, 온라인 판로 확대 등 다양한 정책을 펼쳐왔다”며 “이번 협약을 계기로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비롯한 동반자분들의 사업 안전망 역할을 하는 플랫폼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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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은 미 증시 상장을 통해 배송직원인 ‘쿠팡친구(옛 쿠팡맨)’들에게 최대 1000억원(약 9000만달러) 규모의 주식을 제공했다. 쿠팡 측은 ‘미 증시 상장을 축하하고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고객을 위해 헌신한 직원들을 격려하는 차원’이라고 배경을 밝혔다.

계약직을 포함해 1인당 돌아가는 주식가치는 약 200만원가량이다. 일각에서는 국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물류·배송 인력의 과도한 업무와 이에 따른 불만이 노조활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한 임시방편이라는 목소리도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계약직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국내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배민과 쿠팡의 이러한 움직임은 플랫폼 참여자에 대한 지원이라는 점에서 프로토콜 경제 실험이라고 분석하는 시각도 있다.

박항준 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이에 대해 “상생을 위해서는 접근 방법에는 두 가지 경제철학이 존재하는데 프로토콜 경제는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에게 자신의 것을 베푸는 ‘나눔 경제(Sharing Economy)’와 다르다”고 지적하며 “프로토콜 경제의 전제는 ‘대중의 참여’로부터 시작해 모두가 참여하고, 모두가 혜택을 누리는 사회적 합의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상호합의가 전제되지 않은 소상공인 지원이나 일시적 주식 보상 등은 진정한 프로토콜 경제의 실현이라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투명한 정보 공개와 참여를 통한 정확한 보상(Reward) 합의 등이 알고리즘으로 작동하도록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이 프로토콜 경제의 특징이다. 이러한 프로토콜 경제는 기존 플랫폼 모델의 한계를 보완해 강력한 라이벌로 등장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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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현 교수는 이에 대해 “프로토콜 경제가 실현될 경우 사용자들에게도 참여에 대한 보상이 가능해 SNS나 쇼핑 앱, 대출 등 특정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의 경우 참여자를 끌어들이는 데 아주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며 “기존 플랫폼이 독주하고 있는 분야에서도 아주 위협적인 경쟁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그는 “프로토콜 경제의 직접민주주의 요소는 의사결정 측면에서 기존 플랫폼 기업의 발 빠른 피버팅을 따라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이러한 한계점을 극복하고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성해 나가는 것이 숙제”라고 덧붙였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1호 (2021년 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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