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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희망을 보여줬다, 황선우의 ‘과속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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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빨랐나봐요” 자유형 200m 결선

175m까지 1위 달리다 7위… 100m 예선에선 한국新

조선일보

황선우가 27일 남자 자유형 200m 결선 경기 막판에 물살을 가르고 있다. 초반부터 선두로 역영한 그는 175m를 지나면서 처지기 시작해 7위로 레이스를 끝냈다. 황선우는 “이번에 많은 경험을 쌓았다. 앞으로는 확실히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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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m 앞에 금메달이 보였다. 200m 레이스의 175m까지 1분30초를 헤엄치는 동안 그의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한민국이 흥분으로 들썩였다.

하지만 경쾌하게 물살을 가르던 황선우(서울체고)는 점점 느려졌다. 갑자기 몸에 무거운 추라도 달린 것 같았다. 외국 선수들이 하나, 둘 그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너무나 길게 느껴졌던 25m가 끝났다. 7위. 올림픽에 처음 도전한 18세 신예에겐 값진 성적이었다. 다만 조금 더 노련하게 레이스를 운영했다면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은메달 2개를 딴 박태환 이후 9년 만에 한국 수영에 메달을 안길 수도 있었다. 예선 기록(1분44초62·전체 1위)만 다시 냈더라면 동메달이 가능했던 터라 아쉬움이 컸다.

황선우는 27일 일본 도쿄 수영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자유형 200m 결선을 1분45초26으로 마쳤다. 전날 준결선 6위를 한 그는 8명이 겨루는 이날 7번 레인에 섰다. 준결선 성적 순서로 결선에선 4, 5, 3, 6, 2, 7, 1, 8번 레인이 배정된다. 일반적으로 가운데에 몰린 3, 4, 5번이 경기 운용에 유리하다. 다른 경쟁자들이 어떻게 헤엄치는지 파악하기가 좋기 때문이다. 반면 측면 쪽일수록 시야에 제한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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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우는 초반부터 먼저 치고 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코치진도 같은 의견이었다고 한다. 국제대회 경험이 2018년 호주 지역 대회와 2019 광주 세계선수권(계영 멤버) 정도로 적어 복잡한 작전을 짜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패기를 앞세운 그의 기세는 무서웠다. 출발 신호음이 울리고 0.58초 만에 스타팅 블록을 차고 수면을 향해 몸을 던졌다. 세계 최정상급 순발력이었다.

황선우는 ‘폭주’에 가깝게 질주했다. 100m를 49초78에 끊는 괴력을 발휘했다. 파울 비더만(독일)이 2009 로마 세계선수권에서 세계 신기록(1분42초00)을 세웠을 때의 같은 구간 기록(50초12)보다 0.34초나 빨랐다. 황선우는 150m까지도 가장 먼저 턴을 했다. 그러나 외국 선수들이 스퍼트를 시작하면서 조금씩 따라잡히기 시작했다. 50m 풀의 중앙을 표시하는 레인의 빨간색 부분을 지나면서 역전을 허용했다.

영국의 톰 딘(1분44초22)과 덩컨 스콧(1분44초26), 브라질의 페르난두 셰페르(1분44초66)가 1~3위를 나눠 가졌다. 황선우의 150~200m 랩타임(28초70)은 8명 중 꼴찌였다. 25일 저녁에 열렸던 예선의 마지막 50m(27초61), 26일 오전 준결선의 최종 50m(27초34)보다 크게 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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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과 순위를 확인하는 황선우의 표정에서 아쉬움이 묻어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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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우는 경기를 마치고 “첫 100m를 50초대에 끊으려고 했는데 49초대였다니 너무 오버 페이스였다”라면서 “왜 막판에 처졌는지 이해가 된다. 너무 힘들어 어떻게 수영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라고 말했다. “(레이스하다) 옆을 보는데 아무도 없더라. ‘뭐지?’라고 생각하면서 계속 나갔다”는 말도 했다. 자신만의 리듬을 지키면서 체력을 배분하는 요령이 부족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초반 질주가 독이 된 셈이다. 또 그는 오른쪽으로만 호흡하는 영법을 구사한다. 그래서 마지막 50m를 헤엄칠 땐 오른쪽의 8번 레인만 볼 수 있었다. 보통 감독이나 코치가 풀 바깥에서 고함을 치는 방식 등으로 경기 상황을 알려 주는데, 이날은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황선우는 이번 올림픽에서 무한한 잠재력을 확인했다. 그는 코로나 사태 탓에 올림픽이 1년 미뤄지는 사이에 급속도로 기량을 끌어올렸고, 꿈의 무대에 서는 기회를 잡았다. 결선을 중계한 일본 NHK 방송의 해설자는 “황선우는 18살인데 (초반 100m에서) 49초대의 멋진 레이스를 했다. 정말 메달을 주고 싶을 정도”라며 “앞으로도 이 선수가 끌고 나갈 것”이라고 칭찬했다.

황선우는 자유형 200m 결선 후 약 8시간 30분 뒤에 열린 자유형 100m 예선(7조)에서 47초97의 한국신기록을 세웠다. 자신이 갖고 있던 종전 한국기록(48초04)을 0.07초 앞당겼다. 예선 전체 6위를 한 황선우는 28일 오전 준결선에 출전한다.

[성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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