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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경제직필]‘섹스, 거짓말…’ 같은 민주당 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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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민주당 대선 경선이 난장판이다. 민주당의 양강이라고 할 수 있는 이낙연과 이재명 후보 간에 후자의 여성문제로 치고받고 하더니 급기야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 ‘당신은 그때 무엇을 했느냐’고 서로 적통논쟁을 하기도 한다. 지금이 왕조시대인 줄 아는가 보다. 최근에는 한반도 5천년 역사까지 거론하며 ‘백제열패론’으로 전장이 바뀌었다.

아침 출근길 차 안의 라디오에서 주현미씨가 부르는 ‘백마강’이란 노래가 흘러나온다.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고란사의 종소리가 들리어 오면

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꿈이 그립구나

아 달빛어린 낙화암의 그늘 속에서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경향신문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백제열패론은 영남역차별론과 함께 그 의도가 무엇이던 명백히 잘못된 발언이다. 논란이 일자 이재명 후보는 인터뷰 음성파일을 공개하면서 자신은 이낙연 대표가 전국적 지지를 받는 게 대단하다고 칭찬한 것인데 이를 지역주의 발언으로 왜곡했다고 억울해한다. 하지만 젊은 여성을 보고 “예쁜 부잣집 맏며느릿감”이라고 하는 말이 요즘 세상에 칭찬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특정 후보와 특정 지역을 연결해서 확장력을 이야기한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이재명 후보는 한때 ‘알래스카 외에는 도입하는 곳이 없다’면서 기본소득론을 다시 검토해 보라는 이낙연 후보를 향해 ‘사대주의적 열패의식’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런 점에서 본다면 ‘백제가 주체가 되어 한반도를 통합한 적이 없었다’는 이재명 후보의 발언은 충분히 ‘백제열패론’이라고 보일 수 있다. 다만 이낙연 후보가 이를 자꾸 문제 삼는 것도 불순해 보인다.

대선 경선과정은 대한민국의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엄숙한 시간이다. 도지사나 시의원을 뽑는 과정이 아니다. 대한민국에는 영남과 호남도 있지만 강원도와 제주도도 있고 충청도도 있다.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지만 후보들도 품격이 있어야 한다. 경박한 언행으로 유권자를 잡을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자.

잠시 2016년 미국 대선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2차 TV토론을 두고 영국 BBC방송은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영화 제목에 빗대어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와 같은 토론회였다고 비판한 바 있다. 유부녀 성폭행 시도를 언급한 도널드 트럼프의 녹취록에 이어 자신의 딸인 이방카 트럼프를 향한 부적절한 성적 발언(a piece of ass)이 담긴 녹취록까지 공개되면서 BBC는 이 토론회를 역사상 최악의 ‘X등급’ 토론회였다고 비판했다. 배우 로버트 드니로는 이를 두고 ‘국가적 재앙’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미국을 분열시킨 끝에 트럼프가 당선되었고 그 결과 미국이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똑똑히 목도한 바 있다.

우리나라의 민주당 경선과정이 2016년의 미국 대선과정과 오버랩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많은 국민들은 최근 민주당 경선과정을 보면서 2016년 미국 대선과 이 영화를 떠올린다. 1989년 소더버그 감독이 제작한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라는 영화는 네 사람의 섹스와 대화를 중심으로 플롯이 전개된다. 성공한 변호사 존과 그의 아름다운 아내 앤, 존의 친구 그레이함과 처제 신시아가 주인공이다. 존과 앤은 겉보기에는 남부러울 것이 없는 행복한 부부이지만 존은 신시아와 불륜 관계에 있고, 앤과 그레이함은 성불감증 환자 혹은 성불구자이다. 영화는 현대인의 은밀하고 굴절된 성을 다뤘지만 실상 이 영화는 인간의 섹스와 대화가 모두 내면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욕망’의 다른 표현임을 보여준다. 감독은 이 네 사람 모두를 성적으로 불구자이고 언어적으로 불구자(거짓말쟁이)로 본다. 하지만 영화는 마지막에 그레이함과 앤이 대화를 통해 서로의 성적 결핍을 대치함으로써 성불구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이들은 비디오 카메라 앞에서 서로의 결핍과 욕구를 해석하고 서로의 결핍과 욕구를 대치하여 사랑하게 된다. 이들의 마지막 대화는 “비가 올 것 같아요” “이미 오고 있어”이다.

나라를 통치하는 데는 넓고 다양한 지식과 경험, 품격과 정직함,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당장의 지지율 계산 때문에 어설픈 발언을 하거나 특정층을 향한 선동적 언행을 한다면 역사가 심판할 것이다. 서로가 가진 욕구와 결핍을 해석하고 대치하여 사랑으로 승화할 수 없을까?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진정한 문제, 자산격차와 일자리, 한반도 평화경제 등을 논하면서, 말 돌리지 말고 정직하게 자신의 대안을 제시할 수는 없을까?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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