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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민주노총 노동자대회가 쏘아올린 코로나 시대 ‘집회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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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민주노총이 원주 집회를 계획한 23일 집회 장소인 강원 원주시 국민건강보험공단 인근이 경찰 차량으로 통제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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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상근직원 3명의 감염 경로가 지난 3일 열린 전국노동자대회가 아니라 그 뒤 방문한 한 음식점으로 확인된 가운데, 장기화하는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 원칙 없이 제한됐던 집회·결사의 자유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민주노총은 27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7·3 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한 3명에 대해 정확한 감염 경로가 밝혀지기도 전에 일부 정치인과 언론이 마치 민주노총이 코로나 4차 대유행의 원인인 것처럼 말했으나 실상은 음식점을 통한 감염이었다”며 “이에 법적 조처를 할 예정이며 민주노총 죽이기의 포문을 연 김부겸 총리에게도 사과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이어 “코로나19로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마저 제한되는 상황에서 정부는 노동자와 민중의 목소리를 어떻게 들을지 교섭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며 “감염 위험이 적은 야외집회도 과도한 제한을 할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드러난 확진자 감염 경로를 중심으로 실효성 있는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5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서울 도심에서 8천명 규모의 7·3 전국노동자대회를 연 민주노총을 두고 “이 시대 최고의 권력 집단이자 치외법권 집단”이라고 말했고, 국민의힘 대권 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도 민주노총을 비판하는 페이스북 글을 올리며 ‘살인자’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김부겸 국무총리도 지난 1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모두발언에서 “민주노총 집회 참석자 중 세 분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며 “엄중한 코로나19 상황 속에, 여러 차례 자제를 요청했던 집회의 참석자 중에서 확진자가 발생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질병관리청이 집회 참석자 중 확진자의 감염 경로가 집회가 아니었다고 밝힌 것이다.

문제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헌법에 보장된 집회·결사의 자유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방역 기준에 의해 자주 침해됐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지난 3일 민주노총의 전국노동자대회와 관련해 신고된 집회 231건에 대해 집회 금지 통보를 했고, 강원도 원주시도 지난 23일 원주 국민건강보험공단 본사 앞에서 열린 공공운수노조의 집회에 대해서도 하루 전날 사회적 거리두기를 3단계로 격상하면서 집회에 대해서만 4단계를 적용해 1인 시위만 허용하는 쪽으로 통보했다. 반면 이달 초부터 적용된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개편안을 보면, 실내콘서트와 야구장, 해수욕장 등은 1~3단계인 경우에도 침방울이 튀는 행위(구호 등)나 신체 접촉(악수 등)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이용을 허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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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강원 원주시 국민건강보험공단 인근에서 열린 고객센터 노조 직접고용 촉구 결의대회에서 집회 참가자가 통제선을 넘으려다 경찰에 제지당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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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시민사회와 법률 전문가들은 집회에만 엄격한 정부의 방역대책에 일관성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집회시위법 관련 사건을 담당해 온 양홍석 변호사는 “헌법에 정한 기본권 행사라도 본질적으로 제약해야 할 특수상황이 있으면 수용할 수 있지만 그런 상황을 인정하기엔 정부 방역대책에 일관성이 없다”며 “지하철 칸 인원수도 조정하지 않고 백화점, 병원 등은 사람들로 가득 차는데 이용을 허용해주면서 집회만 제한한다고 하니 방역상의 이득이 과연 있는지 근본적 의문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침방울이 튀지 않게 구호 대신 선창을 하게 하는 등의 방법이 있는데 인원수 자체를 제한하는 건 본질적인 권리 침해”라며 “감염병 상황에서 집회를 언제까지 막을 건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세희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집회를 무조건 허용해달라는 게 아니라 거리두기를 유지할 수 있는 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현수막도 앞뒤 간격을 두며, 참가인 명부를 적는 등의 조처를 하고 있으며, 버스를 타기 전 모두 발열 체크를 하고 통제된 방식으로 이동한다. 일상의 감염 위험보다 더 위험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정부가 집회 개최에 필요한 방법을 검토하지 않고 전면적으로 집회를 제한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집회는 집회에 맞는 가이드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이런 취지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허진민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도 “집회 허용은 사실 (감염병 위험 요인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의 문제”라며 “해수욕장이나 콘서트장에 대해서는 방역수칙 준수 여부를 엄격하게 확인하지 않으면서도 집회에 대해서만 그렇게 하는 것은 공평한 법 집행이라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정부가 7.3 전국노동자대회와 관련해 특별수사본부를 꾸린 것과 관련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선 지난해 8월 보수단체의 서울 광화문 집회와 민주노총의 집회를 두고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보수단체의 광화문 집회 때는 집회 당일인 8월15일 이미 서울 성북 사랑제일교회에 확진자가 59명 발생한 상태였고, 이들과 접촉한 전광훈 담임목사가 교인들과 집회에 참석해 마스크를 쓰지 않고 연설했다. 이후 집회 참가자 중에서도 확진자가 발생했는데, 진단검사를 거부하는 이들이 많아 엔(n)차 전파로 이어졌고 결국 사랑제일교회에서 1173명, 도심 집회에서 650명이 확진됐다. 반면 질병관리청 확인 결과, 민주노총의 7·3 전국노동자대회에선 감염 전파가 이뤄지지 않았고, 지난 6월15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전국택배노조의 파업 결의대회 때도 결의대회 이후 관련 확진자가 3명 발생했지만, 더는 전파가 이뤄지지 않았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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