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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 해임·의회 정지 이어 통금령까지... 튀니지 민주주의 무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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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외치·총리가 내치 담당하는 튀니지
높은 실업률·방역실패 등으로 총리 비판받자
사이에드 대통령이 모든 권한 장악하려 시도
한국일보

카이스 사이에드 튀니지 대통령이 25일 수도 튀니스의 대통령궁에서 군·경찰과의 안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튀니스=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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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중동을 휩쓴 ‘아랍의 봄’ 민중 봉기의 발원지이자 유일하게 민주화 이행에 성공했던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민주주의가 위태롭다. 이원집정부제(대통령제와 내각책임제가 절충된 권력 구조)를 채택한 이 나라에서 현직 대통령이 총리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을 무기 삼아 의회 기능을 정지하고 통행금지령까지 선포하는 등 국가 권력을 통째로 장악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26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카이스 사이에드 튀니지 대통령은 이날 야간 통금령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다음 달 27일까지 튀니지 전역에선 오후 7시부터 이튿날 오전 6시까지 통행이 금지된다. 시민들의 도시 간 이동은 물론, 공공장소에서 3인 이상이 모여 집회를 여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특정 정당 소속이 아닌 사이에드 대통령은 최근 들어 자신에게 모든 권한을 집중시키고 있다. 전날 그는 히셈 메시시 총리를 해임했고, 의회 기능을 정지시키면서 의원들의 면책특권마저 박탈했다. 지난 주말 튀니지 전역에서 벌어진 반(反)정부 시위가 그 빌미가 됐다. 분노의 대상은 사이에드 대통령이 아니라, 메시시 총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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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 제1당인 엔나흐다의 지지자(가운데)가 26일 수도 튀니스에서 반정부 시위대들과의 충돌로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튀니스=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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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에선 대통령과 총리가 권한을 나눠 갖는데, 대통령은 외교와 안보만을 관장하고 나머지 행정은 총리 몫이다. 시민들을 거리로 나서게 만든 높은 실업률과 경제 침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확보 실패 등의 책임은 모두 총리한테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25일 집회에서 시위대는 “의회 해산과 조기 선거를 원한다”며 메시시 총리와 집권당인 엔나흐다를 비판했다.

사이에드 대통령의 이번 조치에 일부 시위대가 환호하긴 했지만, “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분노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당장 엔나흐다는 26일 성명을 내고 “헌법과 엔나흐다 당원, 튀니지 국민에 반하는 쿠데타”라고 비난했다. AFP 통신은 “또 다른 독재자의 탄생에 사람들이 환호하고 있다”는 한 시민의 탄식을 전했다.

국제사회도 우려의 시선을 표하고 있다. 아랍연맹과 유럽연합(EU)은 25일 튀니지의 의회 정지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26일 사이에드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튀니지 통치의 근간인 민주주의와 인권의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NYT는 “사이에드 대통령이 정부 권력을 장악하려 하면서 튀니지의 민주주의가 붕괴 위기에 놓였다”고 진단했다.

다만 사이에드 대통령은 이번 조치가 헌법에 기반한 정상적 절차라고 주장하고 있다. 튀니지 헌법 80조엔 임박한 위기가 있을 경우 대통령이 의회 기능을 정지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는데, 이를 실행한 것일 뿐 쿠데타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박지영 기자 jy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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