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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ASEAN Trend] 낮은 백신 접종률에 델타변이 속수무책 아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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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대유행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그중에서도 아세안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일일 코로나19 확진자가 1만여 명이 넘는 아세안 내 국가들이 속출하면서 지금까지 역내 관리 수준에 있던 방역이 갑자기 손도 쓸 수 없는 상황에 빠지는 모양새다.

이번 아세안 내 코로나19의 재확산 원인은 인도발 델타 변이의 유입을 차단하지 못하면서다. 지리적으로 인접한 인도에서 델타 변이가 발생한 후 유입 우려가 계속돼 관련 조치에 나섰지만 델타 변이의 전파 속도는 이를 무색케 해버렸다.

현재 아세안서 상황이 가장 심각한 곳은 인도네시아다. 일일 확진자가 5만여 명을 훌쩍 넘어섰다. 3차 세계 대유행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를 배출하는 국가라는 불명예를 안을 정도다. 한때 방역 모범국이었던 태국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7월 중순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처음으로 1만 명을 넘어선 후 숫자가 급속히 늘고 있다. 역시 방역을 잘하고 있다는 칭찬을 들었던 베트남의 방역망도 뚫린 지 오래다. 일일 확진자가 7월 중순께까지 3700여 명이 나왔는데, 인구 대비 절대 감염자 숫자는 적지만 계속 최고치를 경신하는 중이다. 태국보다 앞서 일일 감염자가 1만여 명을 넘어선 말레이시아도 확진자 수를 줄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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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한 시민이 정부가 코로나19 팬데믹 희생자들을 위해 마련한 매장지에서 장례를 마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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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상황이 앞으로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세안 각국은 감염자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어 감염 고리를 끊는 데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각국 당국은 감염자들이 실제 통계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례로 자카르타 보건당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자카르타 시민 약 5000명 가운데 44.5%가 코로나바이러스 항체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비율대로면 자카르타 시민 1060만 명 중 470만 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CNN은 이같은 사실을 보도하며 “이는 공식 통계의 12배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미얀마의 경우 7월 중순까지 7000~8000명의 일일 확진자가 나오고 있지만 어수선한 내부 상황으로 통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을 감안할 때 이미 1만여 명을 넘어섰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델타 변이에 감염됐다지만 병원 가기를 포기했다는 현지인의 사례도 계속 보도되고 있다. 이런 것을 감안하면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확진자들은 생각 외로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열악한 의료 환경도 사태를 키우는 또 다른 원인이다. 현재 아세안에서는 인도 델타 변이 확산 초기에 보였던 감염자 치료에 필수적인 산소 부족 사태도 나타나고 있다.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한 종합병원에선 이달 초 산소 부족으로 이틀 사이 환자 60여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얀마에서는 최근 군부가 의료용 산소 부족을 이유로 산소공장들에 개인에게 산소를 판매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델타 변이에 걸린 현지인들이 자가치료를 위해 산소통을 구하려 해도 여의치 않아 곤란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양곤의 한 산소공장 앞에서 산소통을 충전하려고 기다리던 시민들에게 총을 발포해 해산시키기도 했다.

병상 부족도 곧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인도네시아 보건부에 따르면 코로나19 재확산에 준비돼 있던 병상 12만 개 가운데 9만여 개가 현재 소진된 상태다.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는 병상 부족에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일도 속출하고 있다. 대신 당국은 집 입구에 위험지역이라는 표식을 한 후, 의료진이 직접 방문해 코로나19 검사 및 임시 조치를 하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망자 수도 급증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누적 사망자가 7만여 명을 넘겼다. 태국의 코로나19 사망자는 7월 중순께 3000명을 돌파했는데, 이 중 90%가량이 현재 겪는 3차 유행 때 나왔다. 말레이시아와 미얀마도 매일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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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만달레이에서 시민들이 코로나19 치료용 산소를 공급받기 위해 빈 산소통을 줄 세워놓고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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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아세안 각국의 델타 변이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는 강도 높은 거리두기 및 강력한 봉쇄 정책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수도 자카르타가 있는 자바섬과 발리섬에 비상 사회활동 제한 조치를 발령했다. 필수업종 외에는 100% 재택근무를 하고 외식도 금지시켰다. 쇼핑몰 휴업, 예배 시설 폐쇄를 명령했다.

태국 정부는 수도 방콕과 인근 지역 5곳, 남부 접경 4개주 등에 7시간의 야간 통행 금지령을 내렸다. 또 공공집회도 금지시켰다.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는 “현재 더 많은 규제를 검토하고 있다”면서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더 강도 높은 사회적 억제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베트남 당국은 델타 변이 확산세가 심한 껀터, 빈롱 등 16개 지역을 대상으로 생필품과 의약품 구매, 출근할 때를 제외하고는 외출 제한 조치를 실시하고 있다.

이처럼 아세안 각국이 델타 변이 확산에 대한 대응책으로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또다시 돌입함에 따라 각국 경제는 다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아세안 경제의 주축인 관광산업이 살아나지 않고서는 경제 회복이 불가능한데, 델타 변이 확산으로 인해 준비해왔던 트래블 버블 등 관광 회복 관련 정책을 당분간 접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골드만삭스는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동남아 경제가 다시 타격을 받고 있다”면서 각종 규제 조치로 인해 하반기 성장률이 예상보다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5월 모건스탠리도 아세안 경제가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라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전망한 바 있다.

골드만삭스는 인도네시아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5.0% 대비 1.6%p 하락한 3.4%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말레이시아는 6.2%에서 4.9%로, 필리핀은 5.8%에서 4.4%로 하향 조정했다. 싱가포르 역시 7.1%에서 6.8%로 전망치가 낮아졌다. 태국도 2.1%에서 1.4%로 하향 조정됐다.

골드만삭스는 “아세안 각국 경제는 봉쇄 조치가 풀려야 살아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올해 안에 봉쇄 조치가 풀릴 수 있는 국가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정도이며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내년 상반기에나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많은 전문가들은 아세안 각국이 현재의 감염병 파고를 넘기 위해서는 강력한 거리두기와 함께 백신 접종률을 이른 시간 안에 높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이 구축한 통계 사이트 ‘아워 월드 인 데이터(Our World in Data)’에 따르면 현재 델타 변이 확산 속도가 빠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의 백신 접종률은 현저히 낮다. 말레이시아가 12.4%로 그나마 높고 인도네시아는 5.7%, 태국은 5%에도 못 미치고 있다.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1호 (2021년 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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