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르포] 중복청약 금지부터 고평가 논란… 카뱅, 막판까지 ‘눈치싸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가하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바빠지기 때문에 손님이 적다는 이야기는 안 할게요.”

카카오뱅크 일반투자자 대상 공모주 청약 마지막 날인 27일 오전 10시 20분 서울 여의도 KB증권 영업부금융센터 내부는 조용했다. 이날 10시부터 청약이 재개된 가운데, 지점 창구에서 상담 중인 고객은 두 명뿐이었다. 쏟아질 고객들을 대비해 지점 곳곳에는 청약 관련 안내문이 붙고, 입구부터 인턴을 비롯해 직원 서너 명이 추가로 대기하고 있었지만, 30분이 지나도록 지점을 찾는 고객은 5명이 채 되지 않았다.

KB증권 디지털파트너로 근무 중인 박태윤(27)씨는 “모바일로 직접 청약 신청하는 수요가 많아지면서 어제오늘 지점을 찾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며 “ARS(자동응답)로 하는 청약 신청에는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전화 연결이 잘 안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씨와 같은 디지털파트너는 지점을 찾은 고객들에게 모바일로 가능한 업무의 경우 사용법 등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공모주 청약도 모바일로 가능한 업무 중 하나다.

조선비즈

카카오뱅크 공모주 청약 마지막 날인 27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KB증권 영업부금융센터. /권유정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카카오뱅크 공모주 청약 첫날 성적은 수요예측 흥행을 감안하면 예상보다 부진했다. 앞서 카카오뱅크는 20~21일 진행된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에서 공모가를 희망밴드(3만3000~3만9000원) 최상단인 3만9000원에 확정했다. 당시 약 2585조원 청약 주문이 몰리면서, SKIET가 기록한 종전 최고치(2417조원)를 경신했고, 경쟁률은 1732.83대 1로 유가증권 시장 역대 2위 수준을 기록했다.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KB증권, 한국투자증권, 하나금융투자, 현대차증권 등 4곳에 모인 증거금은 12조522억원이었다. 이는 올해 3월과 5월에 각각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한 SK바이오사이언스(302440)(14조1474억원), SK아이이테크놀로지(361610)(이하 SKIET)(22조1594억원)에 못 미치는 규모다. 통합 경쟁률도 37.8대 1에 그쳤다. SK바이오사이언스와 SKIET의 경우 경쟁률이 각각 75.87대 1, 78.93대 1을 기록했다.

다른 증권사 지점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투자증권 여의도금융센터에는 10명 안팎의 고객들이 있었지만, 대기표를 들고 순번을 기다리는 경우는 없었다. 새로 지점으로 들어오는 고객들도 창구 밖에 나와 있는 직원들이 바로 응대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날 청약 신청을 위해 여의도를 찾은 김홍선(가명·63)씨는 “혼자 모바일로 해보다가 어려워서 결국 지점에 나왔다”며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중복청약 금지와 고평가 논란이 투자자들 고민으로 이어진 것으로 풀이했다. 이번 카카오뱅크 청약은 여러 증권사를 통한 중복 청약이 불가능하다. 투자자들은 청약이 가능한 KB증권, 한국투자증권, 하나금융투자, 현대차증권(001500) 중 한 곳을 선택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공모주 청약 수요는 마지막 날 몰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에는 중복청약도 금지되다 보니 막판 경쟁률을 비교한 후 청약에 나서는 투자자가 많아졌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동안 카카오뱅크 몸값이 높게 평가됐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왔다. 공모가를 기준으로 한 카카오뱅크 시총은 약 18조5289억원이다. KB금융지주(약 21조원), 신한지주(약 20조원)에 이어 시총 3위 금융회사가 되는 셈이다. BNK투자증권은 전날 카카오뱅크 청약 자제를 권유하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투자의견은 ‘매도’(SELL), 목표주가는 공모가보다 38% 낮은 2만4000원으로 제시했다. 이 보고서는 현재 삭제된 상태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지난번처럼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워야 한다는 각오까지 한 것치고는 정말 한가해서 직원들도 놀랐다”며 “지점 고객들을 기준으로만 보면 확실히 이전 공모주 청약 때보다 주저하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중복청약도 안 될뿐더러 직전 대어였던 SKIET가 따상에 실패하면서 투자 열기를 꺾은 듯하다”며 “카카오뱅크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도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일부 투자자들은 외국 기관의 의무보유(최단 15일에서 최장 6개월) 확약 비율이 낮다는 점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확약이 걸려 있지 않은 물량이 많은 만큼 외국인 투자자들이 상장 직후 차익 실현 매물을 쏟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카카오뱅크 공모주 6545만주 중 절반이 넘는 55%(3599만7500주)가 기관 몫이고, 이 중 87.6%를 크레디트스위스, 시티그룹글로벌마켓 등 외국계 주관사가 가져갔다.

한편, 오후 4시 청약 마감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막차에 올라타려는 수요가 몰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후 2시 기준 카카오뱅크 청약 통합 경쟁률은 136대 1 수준이다. 한국투자증권의 경쟁률이 164.65대 1일로 가장 높았고, 현대차증권(125.16대 1), KB증권(124.8대 1), 하나금융투자(120.5대 1)가 뒤를 이었다. 증거금은 45조원을 넘어섰다. KB증권(21조4000억원), 한국투자증권(19조6000억원), 하나금융투자(2조2274억원), 현대차증권(1조5683억원) 등이다.

권유정 기자(yoo@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