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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74>혁신을 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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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 심벌이나 로고는 자기 표상 같다. 기업만큼은 아니지만 대학도 마찬가지다. 대학도 종종 로고로 기억되기도 한다. 물론 가장 흔한 심벌은 맹수처럼 힘있고 날렵해 보이는 것들이다. 용맹한 전사 이미지도 종종 쓰인다.

반면에 식물인 경우는 흔치 않다. 그 가운데엔 독특한 것도 있긴 하다.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도토리 모형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붉은색 바지에 회색과 붉은색 줄무늬 상의를 한 채 등장한다. 그러고 나서 맹수 모양의 다른 대학 마스코트와 승강이를 벌이는 모습은 이빨이 잔뜩 드러난 상대편에게도 언제나 환한 얼굴로 웃고 있어야 하니 난감하기마저 하다.

혁신과 상징은 관계가 있을까. 사실 기업 로고에 담아야 할 것이 산더미일 테다. 그러나 기술과 혁신을 담아 낼 여유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혁신을 다루는 사람에겐 항상 불만이다.

이처럼 로고를 생각하는 데는 요즘 고민이 있다. 기업가치가 미래 수익흐름의 현가로 수렴된다고 한다면 이것의 관건은 미래의 성과와 지속 가능성이다. 이에 따라 기업이 지속적으로 혁신하고 있다는 것은 그래서 중요할 수밖에 없다. 유니콘 기업의 매출은 한참 적어도 기업가치 1조원을 넘나드는 건 이런 논리다.

물론 도넛이나 햄버거를 두고 로고에 기술과 혁신을 드러내라는 건 아니다. 이 기업엔 커피 한잔의 따뜻함과 그 한 모금이 주는 만족과 안락감을 보여 주는 것이 혁신의 결과물이니 종이컵에 담긴 커피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로고를 커피 캡슐로 바꿔서 무엇하겠는가.

하지만 기술력과 혁신성으로 경쟁해야 하는 기업이라면 어떤가. 미션이나 목적을 담는 것으론 부족할 수 있다. 종종 이것보다 많은 걸 담아야 할 때도 있다.

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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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어땠는가. 1976년 첫 로고는 펼쳐진 들판을 배경으로 잎이 무성한 사과나무 그늘 아래에 앉은 아이작 뉴턴이었다. 사과는 광채를 둘렀고, 뉴턴은 뭔가를 손에 든 채 읽고 있다. 긴 띠 같은 문양에 애플 컴퓨터라고 썼다. 그런데 이 정도로 끝이 아니다. 테두리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윌리엄 워즈워스의 '서곡'에서 “뉴턴이여, 누구도 가 보지 못한 생각의 바다를 영원히 항해하는 마음의 소유자여”라는 구절을 따다 넣었다.

하지만 곧 그 유명한 한입 베어 문 사과로 바꾼다. 그렇다고 이게 이 여정의 끝은 아니었다. 우리는 초창기의 사과가 무지개 색깔일 수 있겠다는 상상을 하게 됐다. 우리는 투명한 에나멜 파란색이 됐다가 다시 투명한 회색 에나멜 질감으로, 마치 유리를 녹여 부은 듯한 투명한 질감으로 바뀐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한 번 더 진화한 애플을 체감하곤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소비자는 여기에 많은 얘기와 추억을 담는다. 애플의 초창기 로고를 기억하는가. 무지개 로고로도 불렸다. 컬러 모니터가 곧 나온다고 상상하곤 했다. 무지개로 불렸지만 사실 로고 색상은 여섯 개였다. 남색을 유독 왜 뺏는지 한참 설전을 벌이곤 했다. 초록색이 가장 위에 놓인 것도 사실 그 이유가 “잎사귀는 초록색이니까요”란 간단한 이유였다는 걸 한참 후에야 알게 됐지만 한나절 토론거리였다.

기업들의 로고에 혁신이 잘 안 보일 때면 이런저런 생각에 젖는다. 혁신을 볼 수 있다는 것, 고객에게서 이 기쁨을 굳이 뺏을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 기쁜 상상을 기업들도 굳이 외면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전자신문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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