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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하종강 칼럼] ‘주 52시간제’가 아니라 ‘주 40시간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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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모어가 명저 <유토피아>에서 “인간에게 적당한 노동은 하루 6시간”이라고 주장한 것이 15세기이고 스웨덴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선진 기업들이 벌써 몇년째 하루 6시간 노동제를 실험하고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법조인 출신의 유력 정치인이 ‘일주일 120시간 노동’을 너무 쉽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한겨레

프랑스 중학교 3학년 <시민교육> 교과서 ‘노동’ 단원에 나오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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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지난 학기 노동아카데미 심화과정에서 ‘프랑스 학교 노동교육’ 강의를 우리 학교 민주주의연구소 김원태 연구위원에게 부탁했다. 그 분야 자료를 워낙 많이 갖고 계신 분인데도 강의를 좀 더 충실하게 하기 위해 프랑스 교과서를 직접 수입했다. 강의 이틀 전에야 그 교과서가 학교로 배달됐고 이틀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번역해 강의한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한다.

프랑스 중학교 3학년 <시민교육> 교과서 ‘노동’ 단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길바닥에 누워 있는 사진이 실려 있다. 사진 설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411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공장의 폐쇄에 반대하는 시위가 발생했다. 한 노동자가 땅에 눕자 411명이 모두 따라 누웠다. 411개의 일자리를 없애는 것은 그 지역 일자리의 20%를 없애는 것이다. 노사 간의 긴 교섭 끝에 주당 노동시간을 39시간에서 33시간15분으로 단축하고, 임금은 97.2%까지 지불하는 것으로 타결됐다. 그 뒤 회사는 경영이 호전되어 지역에 새로운 공장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이어서 다음과 같은 서술형 시험문제들이 예시돼 있다. “(1)노동자들은 회사의 계획에 대한 반대 의사를 어떻게 표현했는가? (2)일자리를 없애는 것이 그 지역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3)회사는 전세계로 공장을 확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4)교섭 과정에서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역할은 누가 담당했는가? (5)노동자들은 어떻게 해고를 피할 수 있었는가?”

프랑스에서는 중학교를 졸업할 때 국가 졸업자격시험 ‘브르베’(Brevet)를 치르는데 이러한 문제들에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일찍이 16년 전에 번역된 프랑스 고등학교 1학년 일반·전문계 공통 <시민·법률·사회교육> 교과서 목차를 들춰 보니, 3분의 1 정도가 단체교섭의 전력과 전술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교육 내용에 대해 “학교에서 왜 학생들에게 단체교섭의 전략과 전술을 몇달 동안이나 가르치는 거야?”라고 의문을 품는 사람이 많겠지만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노동자이거나 노동자 가족인 사회에서 이러한 지식을 노동자나 경영자가 모두 잘 알고 있는 것이 사회 발전에 유익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회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주 35시간: 진보인가?”라는 토론 제목도 보인다. 프랑스는 21년 전부터 ‘주 35시간제’를 시행해 법정 노동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짧은 편에 속한다. 그렇다면 프랑스 노동자가 세계에서 가장 게으르다는 뜻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 단원의 토론을 통해서 프랑스 고등학생들은 인류의 역사가 곧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느 시대에나 노동자에게 일을 좀 더 많이 시키려고 노력하는 세력이 있었고 가능한 한 일을 좀 더 적게 하도록 노력하는 세력이 있었다. 역사가 어느 쪽의 주장대로 흘러왔는지는 불을 보듯 자명한 일이다. 이런 내용에 관한 문제들이 매년 6월 며칠 동안이나 치러지는 대입자격시험 ‘바칼로레아’(Baccalauréat)에 출제된다. 프랑스의 예만 들었을 뿐이지 우리와 경제 수준이 비슷한 다른 나라들의 학교 노동교육도 대부분 유사하다.

고층아파트가 밀집한 지역의 한복판에 있는 고등학교 인문학 수업 시간에 초청받았다. ‘청소년의 미래를 준비하는 인문학, 노동인권’이라는 제목의 강의를 준비해서 갔는데, 담당 교사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학생이 있었다. “수능시험 얼마 남지 않았는데 시험에 나오지도 않는 이런 과목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시간에 그냥 자습하면 안 되나요?” 논술이나 면접에도 필요한 내용이라고 학생들을 겨우 달래가며 강의를 무사히 마쳤다.

학교에서 노동교육을 충분히 받고 사회에 진출해 노동자·경영자·언론인·정치인 등이 되는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에서 노동문제를 이해하는 능력은 ‘산 것’과 ‘죽은 것’만큼 큰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토머스 모어가 명저 <유토피아>에서 “인간에게 적당한 노동은 하루 6시간”이라고 주장한 것이 15세기이고 스웨덴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선진 기업들이 벌써 몇년째 하루 6시간 노동제를 실험하고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법조인 출신의 유력 정치인이 ‘일주일 120시간 노동’을 너무 쉽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해두자. 우리나라는 ‘주 52시간제’가 아니라 ‘주 40시간제’이다. 굳이 52라는 숫자를 쓰고 싶으면 ‘주 최대 52시간’이라고 표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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