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철거 아닌 해체”…7년 만에 광화문 떠나는 ‘세월호 기억공간’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유족이 기억공간 물품 직접 서울시의회로 옮겨

“광화문광장 공사 뒤 어떻게 운영할지 협의체 구성해야”

이후 공간 마련 갈등 불씨 남아


한겨레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협의회) 관계자 및 유가족이 27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월호 기억공간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묵념하고 있다. 협의회는 전날 밤 회의를 통해 기억공간 내 물품을 서울시의회에 마련된 임시공간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세월호 기억공간’이 서울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사에 따라 27일 서울시의회로 임시 이전했다. 2014년 7월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단식 농성장 천막이 처음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뒤 유족들은 7년여 만에 광화문광장을 떠나게 됐다.

이날 오전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가족협의회)는 세월호 기억공간 해체를 앞두고 연 기자회견에서 “생명과 안전을 고민하고 시민들과 소통하는 기억공간을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사가 끝난 뒤 어떻게 운영할지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며 “서울시와 서울시장에게 광화문 광장 조성공사가 끝난 뒤 어떻게 다시 민주주의와 촛불의 역사를 이 광장에 담아낼지 고민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전했다. 전날인 26일 밤 가족협의회·4·16연대와 서울시의회는 세월호 기억공간 ‘기억과 빛’을 서울시의회로 임시 이전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사가 끝난 뒤 기억공간이 광화문광장에 마련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협의체 구성 역시 서울시가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어 갈등의 불씨는 남아있다.

유경근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서울시의회에 (유품과 기록물 등을) 보관하는 것은 임시 전시”라고 강조하며 “기억공간도 철거가 아닌 ‘해체’를 하는 것으로, 가족들과 (기억공간) 시공사가 함께 할 것이다. 시민들의 정성을 모아 만든 건물을 부수고 폐기하는 것은 맞지 않다. 적어도 폭력적인 철거가 아니라 가족들이 정성껏 해체해 또 다른 방안을 고민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 위원장은 정치권을 향해 “(이 문제가) 정쟁 공방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하고, 기억공간은 유가족만의 공간이 아니기에 시민들의 뜻을 반영한 대응을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한겨레

27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월호 기억공간에서 유가족이 아이들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유가족은 이날 기억공간 내 물품을 서울시의회에 마련된 임시공간으로 직접 옮겼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자회견을 마친 뒤 오전 10시40분께부터 내부 물품 정리와 이전 작업이 시작됐다. 작업은 모두 가족협의회 유가족들과 시민 자원봉사자 30여명 손으로 이뤄졌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압화 사진이 가지런히 걸린 벽 앞에서 안산 단원고등학교 희생자들의 어머니들은 짧은 묵념을 한 뒤 차곡차곡 사진을 노란 상자에 담기 시작했다. 이들은 188개의 사진 액자를 하나씩 포장재로 감싸고 조심스럽게 포개어 담았고, 단원고 학생들의 사진은 반별로 분류했다.

사진을 모두 정리하고 텅 빈 공간을 바라보던 한 유족은 “여기가 ○○(단원고 희생자)이 자리였다”며 손으로 짚어보기도 했다. 이 공간을 만든 건축가와 시행사도 광화문에 방문해 해체 방안을 함께 논의했다. 해체 광경을 바라보며 그늘에서 잠시 쉬고 있던 한 유가족은 “너무 답답하다. 우리는 왜 이렇게 옮겨 다녀야 하는 것이냐”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79㎡ 남짓한 기억공간 안 흔적들이 옮겨지는 데에는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4·16연대와 서울시, 서울시의회 관계자들은 공간 이전과 향후 운영 등을 두고 논의를 이어갔다.

이날 광화문광장을 찾은 시민들도 아쉬움을 내보였다. 서울시의 기습 철거를 막기 위해 일요일인 지난 25일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기억공간을 지켰다는 김태은(38)씨는 “철거 소식을 듣고 혹시라도 서울시가 이곳을 부수려 오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광장에 남았었다. 보수 유튜버들이 새벽 내내 조롱을 보내며 유족들을 괴롭혔는데, (결국) 이렇게 되니 참담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의회 앞에서 한 달간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1인시위에 나섰던 김아란(55)씨도 “시의회를 압박하는 것이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해 거리에 나왔었다”며 “강제 철거는 막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가 걱정”이라고 우려를 보였다.

광화문 광장은 2014년 7월 세워진 천막으로 시작해 2019년 시민들을 위한 추모공간으로 발돋움한 곳인 만큼 그 의미를 지킬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민환 한신대학교 평화교양대학 교수는 “우리 사회는 참사가 생기면 이를 기억하기보다 잊으려고 해 왔던 것 같다”며 “광화문광장은 시민들이 오가는 일상적 공간이기도 하지만, 유족들이 외롭지 않도록 시민들이 나서서 노란 리본을 달고 촛불 집회를 하던 연대의 공간이기도 했다. 이런 곳에 세월호 기억공간을 둔다는 건 우리에게 세월호 참사가 어떤 의미였는지 계속해서 되묻고 기억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짚었다. 실제로 미국 뉴욕의 ‘국립 911 추모관’이나 일본 히로시마의 ‘원폭 돔(히로시마 평화기념관)’ 등의 사례는 도심의 중심부에 추모공간을 두어 시민들이 참사의 의미를 되새기고 공동체 회복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시는 이창근 대변인 명의의 입장문을 내어 “광화문광장 재구조화를 위한 서울 시정에 협조해주셔서 감사드린다. 7년이 지난 지금도 고통을 겪고 계신 데 대해 다시 한 번 위로를 드린다”며 “유가족 협의회의 정리된 의견으로 제안해 주시면, 광화문광장의 기능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세월호의 희생과 유가족의 아픔을 기릴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벗 덕분에 쓴 기사입니다. 후원회원 ‘벗’ 되기
한겨레 서포터즈 벗이 궁금하시다면? ‘클릭’‘주식 후원’으로 벗이 되어주세요!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