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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부터 아마존까지… 환경 지키려 배를 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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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스 환경감시선 일등항해사 김연식씨, 항해기 담은 책 펴내

“환경 파괴 실태 알리는 게 임무… 종이 빨대처럼 작은 변화도 기뻐”

조선일보

지난 3월 인도양 세이셸 연안을 지날 때의 김연식 항해사. 그는 “항구에 다가가 바람에 실린 이국의 향기를 맡으면 여전히 설렌다”고 했다. /그린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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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페인을 하다 보면 배에 갇히거나 경찰에 수갑을 차고 연행되거나 오랫동안 교도소에서 지낼 수도 있습니다. 괜찮겠어요?”

2015년 겨울 초입이었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에서 배를 타겠다며 지원한 그에게 이른 아침 전화를 걸어온 네덜란드 본부의 선원 채용 담당자는 생각지도 못한 물음을 던졌다. 머릿속 광풍이 몰아쳤지만 당시 그는 ‘감옥에 가는 건 좀 겁나는데...’ 같은 복잡한 심사를 영어로 옮길 정신이 없었다. 지구 곳곳을 다니며 환경문제에 맞설 수 있다는 점에 강한 끌림을 느끼기도 했다. 그가 결연히 내뱉었다. “문제 없어요. 저는 준비돼 있습니다.”

지난 22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일등 항해사 김연식(38)씨는 “그때의 난 이력서를 보내도 연락 한 통 없길래 네덜란드 본부 앞에서 노숙도 불사하려고 캠핑 장비까지 사둔 참이었다”며 웃었다.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전 지구적 캠페인을 하고 있는 그린피스엔 배가 3척 있다. 두 달 전까지 북극부터 아마존까지 전 세계 환경문제 현장을 누빈 김씨의 일터는 1975년 노르웨이에서 건조한 배 ‘아틱 선라이즈’호였다.

2009년까지 신문사 기자로 해양경찰청을 출입하던 그가 항해사 자격증을 따고 5년간 상선을 탄 건 “세계를 돌아다니고 싶어서”였다. “젊은 시절에나 할 수 있는 가슴 뛰게 하는 일을 포기하고 싶진 않다”는 생각에 그린피스 환경감시선의 주방보조 자원봉사자가 된 건 2015년 가을이었다.

주방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양파를 깎는 자원봉사자로, 이어 대해가 한눈에 보이는 조타실에서 배를 모는 항해사로 7년째 그린피스에서 일하고 있다. 그가 본 그린피스는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가 넘쳐나는 곳”이다. “선장이 선원들 접시를 모아 식기세척기에 옮기는 걸 처음 봤을 때가 잊히지 않아요. 하마터면 버릇대로 달려가 바구니를 뺏을 뻔했지요.” 채식하는 선원과 활동가도 정말 많다. 채식이 환경오염을 막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배 위의 삶은 녹록지 않다. 40년 넘은 아틱 선라이즈호는 파도에 쉽게 흔들리고 선내는 엔진과 환풍기 소음으로 가득하다. 북태평양 중심부에서 큼지막한 쓰레기산을 끝도 없이 마주할 땐 부끄러움에 얼굴이 홧홧했다. 먼바다에서 사방이 설산으로 둘러싸인 해협을 통과할 땐 “지옥의 입구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가끔 그가 하고 있는 활동이 무의미한 일인가 싶은 허무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럴 땐 “사소한 것들을 본다”고 했다. “이를테면 그린피스가 하는 캠페인에 동의해주는 분들의 숫자가 느는 것, 스타벅스가 플라스틱 대신 종이 빨대를 쓴다는 소식 같은 거지요 영화 ‘해운대’에 ‘사람이 하는 일에 안 되는 게 어딨어?’라는 대사가 있어요. 동감해요. 천천히 하나씩 바꿔가다 보면 결국엔 우리가 바라는 대로 이뤄지잖아요.”

“그린피스의 캠페인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저희가 하는 일은 배를 운전하고, 고치고, 원자력발전소 앞에서 커다란 현수막을 펼친 다음 사진을 찍고, 고래잡이 어선을 쫓아다니고, 굶주린 북극곰 이야기를 전하며 마음 아파 하는 게 전부예요.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 장면에서 우리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읽어요.” 그린피스에도 수퍼맨은 없었다. 알고 보면 선원들은 전부 그처럼 보통 사람들이었다. “환경을 지키는 건 존재하지도 않는 영웅 ‘그린피스맨’이 나타나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고 했다. “그 방향에 작은 신념과 그보다 사소한 나날의 실천이 있을 뿐이에요.” 무엇보다 그린피스 동료들은 플라스틱에 놀라우리만큼 강박적이다. “안 쓰려 노력하는 건 기본. 어쩌다 쓴 플라스틱은 깨끗하게 헹구고 분리해서 재활용할 수 있게 해요.” 그 모든 희로애락을 그는 에세이 ‘지구를 항해하는 초록배에 탑니다’로 묶어 이달 세상에 내놨다. 한번 배를 타면 ‘내가 당장 죽어도 아무도 모르겠구나’ 싶은 두려움에 조금씩 쓰기 시작한 짧은 글들을 소복이 담았다.

전 세계를 누비면서도 몇 달 만에 귀국해 길거리 떡볶이를 사먹어야 힘이 나는 천생 한국 사람이다. 배를 타는 힘은 ‘망각’ 덕분이라고 했다. “‘다신 배 타나 봐라’ 하다가도 다음 날 어제 일을 잊는 거죠.” 그는 “그린피스 환경감시선보다 더 재밌고 의미 있는 일이 있으면 언제든 새로 도전할 것”이라며 “다만 포기하지만 말자는 마음으로 오늘을 산다”고 했다.

[김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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