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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성추행 못막은 軍, 수감자 숨지는 것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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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 중사 2차 가해 혐의자, 수감시설에서 극단 선택

국방부 영내 피의자 사망은 처음… 성추행 사건 규명 어려워져

조선일보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 전체회의에 참석한 서욱 국방부장관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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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을 당한 뒤 극단 선택을 했던 공군 이모 중사에 대한 2차 가해 혐의로 구속 기소된 A 상사가 군(軍) 수감 시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망 장소는 서울 용산의 국방부 장관 집무실에서 600m밖에 떨어지지 않은 영내에 있었다. 국방부 영내 시설에서 피의자가 사망한 것은 처음이다. 정치권과 군 안팎에선 “군 당국이 성추행 피해자를 구하지 못한 것도 모자라 관리 소홀로 주요 피의자의 극단 선택까지 방치한 셈”이라며 “군의 안일한 상황 인식 때문에 진실 규명이 더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방부는 26일 “국방부 영내 미결수용시설에 수용돼 있던 A 상사가 전날 오후 2시 55분쯤 화장실에서 의식불명인 채로 발견됐다”며 “인근 민간 종합병원으로 옮겼으나 오후 4시 22분 사망했다”고 밝혔다. A 상사는 수감된 독방 내 별도 화장실에서 극단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은 대낮에 벌어졌지만 군사경찰은 A 상사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고 상당 시간이 지나서야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복도에 설치된 CCTV 감시와 정기적인 순찰로 수용자 이상 유무를 확인했어야 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군 당국이 A 상사를 사실상 방치했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국방부 영내 피의자 사망'이라는 초유의 일이 발생했는데도 국방부는 이날 유가족에 대한 공식 유감을 표명하거나 사건 경위에 대한 별도 브리핑을 하지 않았다. 검찰 등 수사 당국에서 피의자 사망 등 유사 사례에 대해 일단 유감을 표명하는 관례에 비춰봐도 이례적이란 지적이 나왔다.

서욱 국방부 장관도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이 사건을 공식 보고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국방위원 지적에 대해 서 장관은 ‘유족이 공개를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답변을 회피했다.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은 “얼마나 군 기강이 엉망진창이면 하다 하다 수감자가 감옥에서 극단 선택을 하느냐”며 “이게 유족 핑계를 대며 쉬쉬할 사항이냐”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민홍철 국방위원장도 “보고는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서 장관은 “강압 수사, 수용 시설 문제 등 의문점을 확인하겠다”며 “다른 수용 시설도 전수조사하겠다”고 했다.

서 장관은 북한 귀순자 경계 실패(2월 17일), 부실 급식·과잉 방역 논란(4월 28일), 공군 여중사 사망 사건(6월 9일과 10일, 7월 7일), 청해부대 34진 집단감염 사태(20일)로 6번 사과하면서 ‘전수조사’ ‘정밀 진단’ 방침을 밝혔지만 군 기강은 더욱 해이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건 당사자의 죽음으로 이 중사 사건 진상 규명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A 상사는 이 중사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던 지난 3월 회식을 주선한 인물이다. 성추행 발생 후 이 중사에게 “없었던 일로 해줄 수 없느냐”며 합의를 종용하는 등 2차 가해를 한 혐의(보복 협박·면담 강요)로 지난달 30일 구속 기소됐다. 다음 달 6일 첫 재판이 예정돼 있었다. 이 중사 남편은 이날 입장을 내고 “엄정한 법 집행으로 비위 사실이 증명되길 고대했지만 국방부의 관리 소홀로 그 기회가 박탈됐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이 중사 유가족도 극단 선택을 시도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민의힘 이채익 의원은 이날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서 장관에게 “피해자 유족 중 한 분도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다 군 관계자에게 발견돼 제지당했다”며 “이런 얘기 들어봤느냐”고 했다. 서 장관은 “못 들었다”고 했다.

[원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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