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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사설] 원칙과 기본 지킨 許 특검팀, 우리 사회 지키는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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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유죄 확정을 이끌어낸 '드루킹 특검' 허익범 특별검사가 22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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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전 지사의 대선 여론 조작 혐의를 밝혀낸 허익범 특검이 본지 인터뷰에서 “(2018년) 제가 임명되자 ‘맹탕 특검’이라는 말이 나왔다”면서 초기에 겪었던 어려움을 털어 놓았다. 허 특검이 임명된 날은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직전이었고 정권 지지율은 고공 행진하고 있었다. 법무부에 검사 파견을 부탁했더니 “다른 업무가 있어서 안 된다” “특검팀 보내면 사표 내겠다고 한다”는 부정적인 반응 일색이었다고 한다. 대통령 최측근을 파헤쳐야 하는 특검 근무를 모두 꺼렸던 것이다. ‘아무도 하고 싶어하지 않은 일'을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하다 보니 특검 조직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허 특검은 “증거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고 했다. 당시 경찰은 ‘드루킹 댓글 사건’을 5개월간 수사하면서 핵심 피의자인 김경수 전 지사의 휴대전화도 압수하지 않았다. 특검팀은 경찰이 두 차례나 압수 수색했다는 드루킹 사무실 쓰레기 더미에서 핵심 증거인 휴대전화와 유심 카드 수십 개를 찾아냈다. 늦었다고 지레 포기하지 않고 수사의 기본을 지킨 것이다. 2심 판결을 앞두고 재판부가 ‘댓글 120만개를 전수조사 하라’고 요구하자 허 특검을 포함한 수사팀 10명이 25일간, 하루 17시간씩 주말 없이 손으로 분류했다고 한다.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수작업으로 김 전 지사와 드루킹이 공모한 자동 댓글 조작 시스템을 결박한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검사와 수사관들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한 검사는 태만한 모습을 보이는 후배에게 “일이 맡겨진 이상 무엇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다그치기도 했다. 마침내 ‘최약체’로 불렸던 특검팀이 피고인 12명을 기소해 모두 유죄판결을 받아내는 성과를 거뒀다. 오직 사실과 증거에 입각해 문 정부의 민주주의 농단을 심판한 것이다.

돌이켜 보면 허 특검 팀만 있었던 게 아니다. 문 정권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징계해서 권력 수사를 원천 차단하려 했던 시도는 서울행정법원의 두 부장판사가 직무집행 정지와 2개월 정직 신청을 잇달아 기각하면서 무산됐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광적인 친문 지지층의 압박을 무릅쓰고 조국 전 장관 아내 정경심씨의 자녀 입시 비리 관련 위조 혐의를 모두 인정하며 징역 4년형을 선고했다. 수원지검 검사들은 법무부와 대검 지휘부에 맞서 김학의 불법 출금 수사를 밀어붙여 대통령의 대학 후배인 이성윤 서울지검장 기소를 이끌어냈다. 문 정권의 폭주 속에서도 우리 사회가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것은 자기 자리에서 양식과 원칙을 지키려는 이런 사람들 덕분일 것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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