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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화전민 정치’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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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6년 ‘촛불혁명’ 이후 한국사회가 나아졌는가? 코로나19로 계층 간 불평등 구조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교육 사다리’를 통해서 계층 간 이동이 가능했던, 소위 개천에 용이 나던 시절은 끝났다. 개천 자체가 말랐기 때문이다. 그 결과 중간 계층은 얇아지고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촛불 이후의 민주제 정치 역시 이러한 기형적 구조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게다가 어찌된 영문인지 문재인 정부가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던 협치마저 초반부터 실종됐다.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실망과 분노는 일찌감치 예견됐다.

경향신문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이준석씨가 국민의힘 대표로 선출된 ‘사건’은 세대교체를 통해 정치개혁을 바라는 열망들이 모여 쏘아올린 예광탄이었다. ‘꼰대정당’ 국민의힘의 분위기가 모처럼 환히 밝아졌다. 적어도 겉으로는 한결 젊어진 느낌이다. 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 판도 훨씬 커졌다. 앞서 4·7 재·보궐 선거 압승이 입증하듯 잊힌 정당에서 국민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하며 명실공히 제1야당으로서 정치적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에게 ‘촛불혁명’과 ‘대통령 박근혜’의 탄핵으로 정권을 서둘러 내준 세월의 강폭이 시나브로 다섯 번째 뜨거운 여름을 맞이하는 지금은 와신상담과 절치부심의 시간이다. 하지만 국민들 대다수는 국민의힘이 미래 한국의 정치를 책임질 수권정당으로서 대안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국민의힘과 소속된 대통령 경선후보자들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이 그 증거다.

민주당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상대적으로 정치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경선후보자들 간에 주고받는 말이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민주당 참호 안에서 서로를 향해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지는 등 후보자들 간의 난타전이 예사롭지 않다. 정치라는 게 으레 이런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정치가 상쾌함을 보여주기보다는 되레 불쾌지수만 높이고 있다. 집권당으로서 책임 있는 정책토론을 기대하기란 언감생심이다.

국민들은 대통령을 탄핵까지 시켰는데 한국사회가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라고 묻는다. 촛불혁명이 낳은 대통령에게는 아픈 질문이다. ‘영끌’이 상징하듯 일상화된 부동산투기와 부패는 민주제의 근간을 위협하는 시한폭탄이 됐다. 오죽하면 국무총리가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해 “(해결) 방법이 있다면 정책을 어디서라도 훔쳐오고 싶은, 빠져나올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토로했을까. 문재인 정부 마지막 총리의 통렬한 반성이자 성찰적 고백이다.

5년 전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든 이유 중 하나가 ‘이게 나라냐’는 절망적 분노였다. 분노가 축적되고 있다는 사실에 공감한다. 그러므로 정의와 공정을 향한 국민들의 열망이 기존 정치판에 불을 확 지르고 씨를 다시 뿌리는 ‘화전민 정치’로 활활 타오르길 바란다. 화전민 정치는 고 노회찬 의원의 ‘불판갈이론’과 맥을 같이한다. 이제는 화석화된 정치판을 화전민 정신으로 송두리째 바꾸고 새로운 작풍의 기운을 넣을 때가 됐다. 혹자는 이를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을 모두 역사화해서 집에 잘 보내드리는” 것으로 풍자했다.

칠레의 민주제를 수호하다 쿠데타로 죽임을 당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절망적인 상황은 없다. 절망에 이르도록 방치하는 상황만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4년 전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오늘부터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라고 다짐했지만 그러질 못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현 상황을 일거에 바꾸기란 용이하지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능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2022년 3월9일에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새롭게 희망을 품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절망이 더는 없어야 하기에 하는 말이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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