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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388] 겨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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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프란체스코 포스키, 겨울 풍경, 1770년경, 캔버스에 유채, 48x75㎝,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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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석 달이면 찬 바람이 불겠지만, 요즘 같은 불볕더위에는 매년 겪던 한파도 상상이 안 된다. 이럴 때 프란체스코 포스키(Francesco Foschi·1710~1780)의 ‘겨울 풍경’을 보면 잠시나마 더위가 물러난다. 겨울이 오면 이 그림처럼 벌거벗은 나뭇가지에 흰 눈이 쌓이고, 처마 아래로 고드름이 주렁주렁 열리며, 길이 얼어붙어 발걸음을 떼기가 두려울 것이다. 살을 에는 매서운 한기가 뿌옇게 눈앞을 가릴 때 한숨이라도 내쉴라치면 하얀 입김이 되어 순식간에 흩어지고 대신 찬 바람이 목구멍까지 넘어 들어올 것이다.

포스키는 이탈리아 중부 동쪽 해안 안코나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근교에서 활동하다 로마에 정착했다. 당시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는 이탈리아에 장기간 머물면서 고대 문물을 배우고 경험하는 ‘그랜드 투어’가 유행이었다. 각지에서 몰려든 여행객들은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그랜드 투어’를 기념할 풍경화와 초상화 등을 주문했기 때문에, 이탈리아 미술계에는 ‘그랜드 투어’ 기념 회화 전문 화가들이 성업 중이었다. 포스키는 그중 대표적 풍경화가인 조반니 파니니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파니니가 판테온과 콜로세움 등 도시 유적을 주로 그렸다면, 포스키는 겨울 풍경화에 주력했다. 배경은 이탈리아 반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아펜니노 산맥이지만 실제 존재하는 특정 장소는 아니고, 필요한 요소들을 모아 재구성한 상상의 산물이다. 눈 덮인 바위산, 얼어붙은 강물, 어렴풋이 보이는 고대의 폐허와 옷깃을 여미고 길을 나서는 나그네가 포스키의 풍경에 늘 등장하는 소재다. 새들이 둥둥 떠다니는 비취색 강물은 지금 보면 시원하나, 겨울에 다시 보면 아마도 손끝이 시릴 것이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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