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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공정성 요구를 공정하게 만드는 일관성[2030세상/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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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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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한화생명 신사업부문 마케터


“대표님 차가운 사람인 건 맞잖아요.” 갓 들어온 신입이 회사 대표를 지칭하며 말하자 선배가 응수한다. “대신 정확하잖아요. 주어진 업무 외에 커피 심부름도 시키지 않는 분이에요.” 후배가 의아한 얼굴로 그건 당연한 것 아니냐 묻자 선배가 덧붙인다. “당연한 거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데. 난 요즘 사람들 보면 그냥 정확한 사람이 착한 사람 같아요.”

좋아하는 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한 장면이다. 기본을 지키는 게 기본이 아닌 세상에서, 당연한 것들을 정확하게 이행하는 것. 나는 이것을 근래 요구되는 ‘공정함’의 한 모습으로 읽었다.

‘공정함’이 화두다. ‘요즘 것들’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공정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올 초 내로라하는 대기업 총수들까지 한바탕 애먹게 했던 ‘성과급 논쟁’이 대표적이다. 2030을 필두로 불투명한 책정 기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고, CEO들은 진땀을 빼며 해명과 함께 개선안을 내놔야 했다. 이 밖에 학점 특혜, 채용 비리, 부동산 사태에 가장 분노하고 가장 적극적으로 행동했던 세대 역시 2030이었다.

‘공정’의 사전적 정의는 ‘공평하고 올바른 것’이다. 얼핏 굵직한 사회·경제 이슈나 대의명분에만 적용될 듯하나, 소비 등 생활 면면까지 넓게 침투하고 있어 매일의 밥벌이와도 무관하지 않다. 나 역시, 프로모션 하나를 기획하더라도 참여 방식은 물론이고 당첨자 선정 및 고지 전반에 걸쳐 제3자의 시선으로 한 번 더 검열을 거친다. 의도치 않은 지점에서 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켜야 할 ‘기본’에 대한 해석은 일정 부분 자의적일 수밖에 없기에 가끔은 이런 것까지 고려해야 하나 망연해질 때도 있다.

말하자면 나를 비롯해 우리 대부분은 ‘공정성’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고 동시에 그만큼의 빚, 채무도 가지고 있다. 권리 대비 채무의 영역이 커진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게 많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성과급 책정 기준에 공정을 요구하며 분노하는 마케터도 프로모션 기획에 있어서는 자율성의 담보를 갈망하는 것이리라.

결국 공정성 요구가 공정하기 위해서는 ‘일관성’이 전제돼야 한다. 공정을 요구하며 목소리 높일 때의 기준과, 내가 그 반대의 위치에서 영향력을 미칠 때의 기준이 동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택적 공정의 요구는 말 그대로 불공정한 것이므로, 여차하면 또 다른 의미의 ‘이익집단’에 그치고 만다. 공정에 공정이 담보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담론을 형성할 수 있다.

참여했거나 눈여겨보았던 타 브랜드 프로모션들을 다시 살피며 내가 느꼈던 불공정함들을 되짚는다. 권리자로서 마땅히 요구했을 것들을 채무자로서 묵살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런 사소한 노력과 습관들이 모여 훗날 더 많은 권한, 더 많은 공정성의 채무를 지게 될 때조차 공정 앞에 공정할 수 있기를, 당연한 것들을 정확하게 이행하는 어른으로 나이 들기를 다짐하고 소망한다.

김지영 한화생명 신사업부문 마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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