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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동서남북] 홍수·폭염·산불… 기후 재앙 남의 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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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도 대응 힘든 기후위기

재난대응·경제·탈탄소 다 챙길 새 리더십 없이 극복 힘들어

위기의식 갖고 냉정한 선택해야

지난 20일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가 우주 관광을 다녀온 뒤, 미국 온라인에선 “기후 위기에 둔감한 정치인과 석유 부호들부터 우주 관광 보내자”는 제안이 등장했다. 베이조스가 “막상 위로 올라가 보면 지구 대기는 믿기 힘들만큼 얇고 아주 작고 연약한 존재라는 걸 알 수 있다”며 “우리는 대기를 훼손시키고 있으며, 그것을 머리로만 아는 것과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전혀 다르다”고 말한 덕분이다. 탄소 시대 부호와 지도자들을 우주로 보내 베이조스처럼 각성시키자는 것이다.

실은 우주로 갈 것도 없다. 지구촌 곳곳에서 충격적인 기후 재난을 목격할 수 있다. 미국 오리건에선 소방관 2000여 명이 서울 2.6배 면적 숲을 태운 산불과 사투를 벌이고 있고, 대형 자연 재해가 드물었던 독일에선 지난주 홍수로 179명이 숨졌다. 중국 허난성 정저우에선 1000년에 한 번 올 확률의 폭우로 수십명이 숨지고 20만명이 집을 잃었다. ‘세계의 냉동고’ 시베리아에서는 한국보다 넓은 면적을 태운 불길이 아직도 잡히지 않고 있다. 이들 재난 현장의 사진을 함께 실은 미 뉴욕타임스의 칼럼 제목이 ‘지금 당장의 묵시록’이었다.

조선일보

23일 중국 허난성 신샹에서 구조대원들이 동력 배를 이용해 홍수 피해 지역의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있다. 중국 허난성에 최근 내린 기록적 폭우로 인한 사망자 수가 56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주민 약 92만 명은 거주지를 떠나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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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미국, 시베리아를 덮친 재앙들은 온난화로 느슨해진 북극 제트기류에서 촉발됐다. 북극 상공의 찬 공기를 둥근 머리띠처럼 가둬줘야 할 제트기류가 불가사리 모양으로 풀어지면서, 남하한 찬 기단과 북상한 더운 기단이 섞여 폭우와 폭염, 폭풍이 출몰하는 것이다. 두려운 건 북극 기온이 상승하면서 우리 생애에 재난의 강도는 갈수록 세질 것이라는 점이다. 서구 선진국 젊은 층 중에는 ‘내 아이가 기후 위기로 생명을 위협받는 일을 아예 만들지 않겠다'며 출산을 포기하는 이들도 생길 정도다.

기후 위기는 전 인류 차원의 위기라는 면에서 냉전 시대 핵 위기를 연상시킨다.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 직전까지 갔던 쿠바 미사일 위기 이듬해인 1963년 6월. 당시 만 46세였던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은 아메리칸대학교에서 연설을 했다. “우리는 모두 이 비좁은 행성에 살고 있습니다. 모두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녀들의 미래를 소중하게 여깁니다.” 지금 보면 기후 위기에 대한 예언같이 보이는 연설은 실은 소련을 향한 메시지였다. 케네디는 결국 소련과 담판해 데탕트(화해) 시대를 열었다.

기후 위기는 담판으로 단박에 해결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훨씬 난해한 문제다. 경제와 환경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며 독일 역사상 최장수(16년) 총리 기록을 세운 앙겔라 메르켈마저도 이번 홍수로 “기후 위기에 대비가 돼 있지 않았다”는 비판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수퍼 태풍과 천년 폭우에서 우리 아이들을 지키고 그 미래를 책임지려면 재난 대응 시스템을 강화하고,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지속적으로 탄소 경제를 탈피해야 한다. 개인과 기업, 국가 경제 단위의 실천과 협력이 필수적이지만 이 모든 걸 조화롭게 아우르며 난관을 돌파해낼 리더십 없이는 이룰 수 없는 목표다. 우리의 기후 위기 돌파는 내년 대선에서 진짜 리더를 뽑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유권자들부터 ‘기후 위기는 남 일이 아니다’라는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 안 그러면 편 가르기, 포퓰리즘에 내로남불로 위기를 악용하는 지도자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이길성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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