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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양종구]“세계 양궁의 지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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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6일 열린 대만과의 도쿄 올림픽 양궁 남자 단체전 결승. 한국 오진혁이 3세트 3번 사수로 나서자 먼저 쏜 김우진이 뒤에서 “7, 6, 5, 4…”라고 불러줬다. 오진혁은 자신 있게 시위를 당겨 10점을 명중했다. 3명이 60초 안에 각 한 발씩 쏘는 단체전에서 마지막 사수는 남은 시간을 모르면 심리적으로 불안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선수들끼리 남은 시간을 알려주게 한 것.

▷남자 단체전 우승으로 한국은 도쿄 올림픽에 걸린 총 5개의 양궁 금메달 중 벌써 3개를 획득했다. 앞서 한국이 여자 단체전에서 사상 첫 9연패를 하자 AP통신은 ‘이름이 바뀔 수 있겠지만, 한국 여자 양궁의 지배는 계속될 것이다’라고 타전했다. 여자 양궁의 9연패는 미국과 케냐가 각각 남자 수영 400m 혼계영과 육상 장거리 장애물 경기에서 보유한 특정 종목 최다 우승 기록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기록이다. 남자도 대회 2연패에 이은 6번째 정상이다.

▷한국 양궁의 비결은 남녀 모두 선발 과정의 공정한 경쟁과 준비 과정의 철저한 디테일이다. 한국에서는 ‘대표로 선발만 되면 금메달’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철저하게 실력을 검증한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4월까지 3차례의 평가전으로 남녀 각 8명을 뽑고, 선수촌에서 함께 합숙훈련하며 다시 2차례의 평가전으로 각 3명을 최종 선발했다. 과거 기존 대표 선수는 1, 2차전을 면제해 줬지만 이번엔 그런 특혜도 없앴다. 이렇게 살아남은 선수들은 치밀한 실전 훈련을 했다.

▷선수들은 5월부터 충북 진천선수촌에 도쿄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하고 똑같이 만든 훈련장에서 활을 쐈다. 심지어 점수를 보여주는 전광판의 밝기까지 똑같았다. 밝기 차이가 선수들 시각에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전 경기 때도 선수들끼리 격려하며 돕는 세세한 루틴이 있다. 혼성경기에서 김제덕이 먼저 쏜 뒤 바로 안산을 향해 “지금 바람 없으니 자신 있게 쏘면 돼요”라고 정보를 줬다. 초 알리기도 그 연장선이다. 한국만의 현장 전술이다.

▷남녀가 함께 훈련하는 환경도 양궁 발전에 도움이 됐다. 대표팀 중 유일하게 양궁만 남녀가 함께 훈련한다. 일부 종목은 남녀 합동 훈련을 터부시하기까지 하지만 양궁은 체력부터 기록 훈련까지 똑같이 한다. 여자 선수들은 한 수준 높은 남자 대표 선수들과 거칠게 경쟁하면서 실력은 물론이고 자신감까지 업그레이드됐다. 남자 선수들은 한국 여성의 섬세함과 적극성을 배웠다. 명품과 짝퉁의 차이는 디테일에 있다고 한다. 세계 여러 나라가 한국의 지도자를 스카우트해서 벤치마킹을 하고 있지만, 한국 양궁의 높은 벽 앞에서 좌절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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