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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636] 리처드 르원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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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5일 테드 케네디가 사망한 후 족히 열흘 넘도록 나는 온갖 언론 매체에 실린 그의 부고 기사를 찾아 읽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곤 급기야 존 F 케네디 대통령보다 그를 더 존경하게 되었다. 지난 몇 주 동안 나는 이달 7월 4일 세상을 뜬 진화유전학의 대가 리처드 르원틴 교수의 부고 기사들을 읽으며 옛 생각에 젖었다.

1983년 여름 내가 하버드대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던 무렵 그는 시민 단체와 손잡고 내 지도 교수인 에드워드 윌슨 교수와 그의 사회생물학을 공격하고 있었다. 자연사박물관 부속 건물 위아래층을 사용하던 이 두 교수는 엘리베이터 합승을 거부할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도 나는 르원틴 교수 연구실 점심 세미나에 자주 참여했다. 일개 연구실 행사였지만 학계의 거물들이 줄줄이 등판한 그 세미나에서 나는 참으로 많은 걸 배웠다.

르원틴 교수는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직접 만난 사람 중 단연코 가장 명석한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그에게는 사회생물학을 비롯해 IQ와 인종에 관한 논쟁, 베트남 전쟁, 인간 유전체 사업, 진화심리학 등 세상 온갖 것이 다 하찮은 듯싶었다. 그러나 ‘반대와 비난의 아이콘’ 이미지와 달리 나는 그를 정말 가슴 따뜻한 교수로 기억한다. 부인 손을 꼭 잡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학교 근처를 산책하던 그와 심심찮게 마주쳤다. 그는 부인이 세상을 뜬 지 3일 만에 뒤따라 떠났다.

그의 따뜻함은 제자 사랑에서 더욱 빛난다. 미시건대 교수 시절 나는 교수 임용 위원회에서 그가 현재 시카고대 교수인 그의 제자 제리 코인을 위해 제출한 추천서를 읽었다. 무려 세 쪽 반이 넘는 추천서에 행간 여백도 없이 빼곡히 새겨 넣은 그의 제자 사랑은 감동 그 자체였다. 그 전해 내가 임용될 때 받은 윌슨 교수의 추천서는 달랑 여섯 줄이었다. 그는 나의 교수 롤모델이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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