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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임기말 '1.1조' 기업 감세… 선거 앞두고 '부자증세' 기조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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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세법개정안]
대기업 8,669억 원 등 총 1.5조 원 세수 감소 효과
고소득자·대기업 세수 줄어든 건 문 정부 처음
지출 증가 뻔한데… "재정 건전성 외치며 세수는 손놔"
한국일보

홍남기(오른쪽)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6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54차 세제발전심의위원회에서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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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없는 돈 풀기 정책을 펼치며, 이를 뒷받침할 세금을 확보하기 위해 꾸준히 증세 기조를 유지해 온 문재인 정부가 대선을 앞둔 임기 마지막 해에 돌연 감세 정책으로 돌아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신산업 등에 과감한 세제 지원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코로나 사태가 한참이던 지난해에도 '고소득층과 대기업'의 세 부담은 늘어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설명은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사실상 세수 감소 효과 가장 커


정부는 26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세제발전심의위원회를 열고 향후 5년간 세 부담이 1조5,050억 원 줄어드는 방향의 '2021년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홍 부총리는 “위기 극복과 선도형 경제로의 전환 지원, 우리 경제의 포용성 강화에 역점을 두고자 했다”며 올해 세법개정안 시행 배경을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발표된 세법개정안을 살펴보면, 올해 개정안은 2018년 세법 개정안(세수 2조5,343억 원 감소) 이후 세수 감소 효과가 두 번째로 크다. 특히 2018년에는 저소득층 세제 혜택을 빼면 오히려 세수가 늘어나는 방향이라, 올해 감세 효과가 가장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올해 세법개정안은 전반적으로 세수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5년간 총 1조5,050억 원이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 대기업에 돌아가는 세수 감소 혜택이 8,669억 원으로 가장 크고 △서민·중산층 -3,295억 원 △중소기업 -3,086억 원 등도 혜택을 받는다. 다만 고소득자에 대한 세수는 50억 원 늘어난다. 문 정부 들어 본격화된 주택 보유세 강화와 금융투자세 도입 등 '부자 증세' 정책의 영향이다.

부자 증세 정책으로 문재인 정부 들어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한 세수는 꾸준히 늘어왔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높이고 소득세 최고세율 구간을 신설했던 2017년 6조2,683억 원 늘어난 것을 시작으로 △2018년 7,882억 원 △2019년 1,381억 원 △2020년 1조8,760억 원 증가했다. 하지만 올해는 대기업에 대한 과감한 감세 정책으로 8,619억 원 줄게 됐다. 정부가 사실상 감세 기조로 정책 방향을 바꿨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일보

시각물_문재인 정부 출범 후 세법개정시 세 부담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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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고소득자도 낮췄다… 선거 의식했나


정부는 “미래 선도형 경제로의 전환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 같은 방향으로 세법을 개정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와 배터리, 백신 등 한국 기업들이 강점을 보일 수 있는 3대 분야의 ‘국가전략기술’을 선정해 이를 뒷받침할 연구개발(R&D), 시설투자를 돕자는 것이다.

정책 시행으로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R&D 비용의 30~40%, 중소기업은 40~50%를 세금에서 깎아주고, 시설투자비용은 △대기업 6% △중견기업 8% △중소기업 16%를 공제해 준다. 이를 통해 전체 세수 감소분의 77.1%인 총 1조1,600억 원(대기업 8,830억 원, 중소기업 2,770억 원) 감세 효과가 발생한다. 특히 대기업과 중위소득 150% 초과 고소득층에 대한 세수도 8,619억 원 줄어드는 효과가 있는데, 이들 계층에 세수 감소 효과가 발생한 것은 문 정부 들어 이번이 처음이다.

문 정부가 견지해 왔던 대기업과 부유층 증세 방향과 반대 기조의 개정안이 추진되면서, 앞으로 지속할 확장재정을 뒷받침할 만한 세수 기반은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확장재정 정책으로 지난 4년간 약 220조 원의 나랏빚이 늘어났고, 올해는 국가채무가 1,000조 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만큼 세수가 더 필요한데 정부의 감세 정책으로 나라 재정 상황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꾸준히 고소득층과 대기업에 증세 기조를 유지해온 정부가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돌연 감세 기조로 돌아선 것도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각에선 재난지원금 지급 범위를 최대한 넓히려는 것처럼 세제 정책으로 '선심성 행정'을 펼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하고 있다.

구재이(전 재정개혁특위 위원) 세무법인 굿택스 세무사는 "보수 정권 때도 이 정도로 대기업에 혜택이 집중된 세제를 운영한 적이 없었다"며 "기재부는 돈을 쓰는 데 있어서는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면서, 막상 재정의 기반이 될 세수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다만 정부는 인위적으로 감세를 의도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홍남기 부총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선도형 경제로의 전환을 위해 꼭 세제개편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분야를 종합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1조5,000억 원 감소 효과가 나타난 것”이라고 해명했다.


세종=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세종=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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