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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공공보건 vs 개인의 자유... 유럽 달구는 백신 접종 의무화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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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정부 "델타 변이 막기 위한 조치"
일부 시민들 "방역 빙자한 정부의 통제"
백신 접종 넘어 철학적 논쟁으로 번져

한국일보

백신여권 도입 확대 시위에 참여한 한 프랑스 시민이 24일 파리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독재 대신 자유를'이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파리=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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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보건이 먼저일까, 아니면 개인의 자유가 더 우선할까. 최근 유럽 각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증명서인 ‘백신여권’ 활용 범위를 확대하면서 논쟁에 불이 붙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속 해외여행을 위해 도입된 백신여권을 식당이나 카페 등 공공장소 출입 때 제시하도록 해 사실상 백신 접종을 의무화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델타 변이 확산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해명하지만, 일부에선 ‘방역을 빙자한 통제’라며 시위까지 불사하고 있다.

백신여권을 가장 많이 활용하는 국가는 프랑스다. 이미 21일부터 영화관이나 박물관 등 50명 이상 모이는 장소는 코로나19 접종 증명서를 제시하지 않으면 입장할 수 없다. 다음 달부턴 식당이나 카페, 대중교통 등으로 시행 범위가 확대된다. 이탈리아 역시 8월부턴 실내 스포츠센터나 콘서트장에 들어가려면 백신여권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스도 식당 실내에서 식사하기 위해선 백신 접종을 증명해야 한다. 접종 자체를 의무화하진 않았지만, 백신을 맞지 않으면 일상 생활에 제약이 생기는 구조다.

각국 정부는 최근 확산하는 델타 변이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설명한다.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는 이달 22일 백신여권 적용 범위 확대를 발표하며 “예방접종을 하지 않겠다는 건 곧 죽겠다는 의미”라며 “이는 다른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올리비에 베랑 프랑스 보건부 장관도 21일 “지난주보다 확진자가 150% 증가했다”며 “기존 변이들과 달리 델타 변이는 프랑스에서 크게 확산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일부 시민들은 전체주의적 통제가 부활했다며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24일 프랑스에선 수도 파리를 비롯해 나라 전역에서 11만 명가량이 모여 백신여권 반대 집회를 열었다. 정치권에서도 진영을 가리지 않고 반대 목소리가 나온다. 극좌 정당인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당 소속 에릭 코크렐 하원의원은 23일 마크롱 대통령을 향해 “당신은 통제사회를 만들고 있다”고 일갈했고, 중도우파 공화당 소속의 하원의원 줄리앙 오베르도 “이번 조치는 완전히 미쳤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백신여권을 넘어 철학적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단순히 접종에 대한 선호가 문제가 아니라, 공공보건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정당한지 본질적인 논의로 확대된 것이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3일 “사실상 백신 접종을 의무화한 유럽의 조치는 자유의 상실에 대한 불안과 의문을 불러일으켰다”고 평가했다. 파리에서 백신여권 도입 반대 시위에 참여한 위그 데봇 역시 같은 날 NYT에 “문제는 백신이 아니다”라며 “개인이 원하지 않는 일을 국가가 의무로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박지영 기자 jy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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