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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우리는 ‘의사와 환자’ 아닌 ‘친구’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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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남의 집 드나드는 닥터 홍

진료할 때 대화는 무엇보다 중요해

충분한 언어 구사하지 못하더라도

부족한 의사에게 가르침 주는 이들

인연 이어지는 대로 소통해볼 작정


한겨레

진료를 할 때 대화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끔 괜찮은 진료였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홍종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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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잘 지냈어? 친구라서 반갑게 맞아주는 거지?”

지후(가명)님은 장애인자립생활주택에서 거주하는 발달장애인이다. 처음 만났을 때 나와 나이가 같아서 우리는 친구니까 친구처럼 지내자고 이야기하고 만날 때면 편하게 악수했다. 지후님도 내가 올 때면 현관문도 직접 열어주고 활짝 웃으며 맞이해준다. 함께 사는 동훈(가명)님도 20대 청년으로, 두분을 찾은 지 3년 지났다.

말 많은 남자와 말 없는 남자


두분은 시설에서 생활하다 퇴소하여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준비를 하는 ‘자립생활주택’에서 살고 있다. 젊고 건강한 두분이라 내가 자주 찾지는 않지만, 시간이 흘러 꽤 친근해졌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동훈님은 군것질을 좋아해서 혼자 편의점을 찾아 군것질하곤 한다. 그 덕에 살이 쪄서 매번 운동을 꾸준히 하자고 격려한다. 함께 지내는 활동지원사분과 산책도 하고 교육센터에서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열심히 자립을 준비하고 있다. 일 경험을 해보고자 어떤 작업장에서 인턴으로 일해보았지만 빼먹기도 하고 일하는 중간에 편의점에 자주 가서 일단은 중단 상태다. 동훈님은 제법 말이 많은 편이다. 연예인 이름을 나열하기도 하고 옛날 예능 프로그램이 재밌다고 하기도 한다. 그의 말을 이해하려 해보았지만 쉽진 않았다. 뭔가 자신에게 스트레스 상황이 오면 화제를 돌리려 예능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나는 꾸준히 운동하자고 이야기한다.

반면에 지후님은 말이 없다. 반가운 표정으로 문을 열어주고 악수를 나누지만 충분한 언어 구사를 하진 못한다. 언어 교육을 꾸준히 받지만, 아직 대화는 어렵다. 동훈님이 혼잣말인 듯한 이야기를 하면 지후님은 잠시 눈을 감고 존다. “졸지 말고 지후님도 운동 열심히 해야죠” 하고 말을 건네면 웃으며 쳐다본다. 두분과 한참 대화를 하고 나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잘 모르겠다. 이것이 괜찮은 진료였는지 의문이다. 사회복지사님과 활동지원사님께 두분이 지내는 이야기를 듣고서 필요한 약을 처방하기도 하고 추가 상담을 한다.

환자와 대화하는 일의 중요성


진료 시 대화는 중요하다. 그런데 내가 물어본 말에 속 시원하게 대답해주면 진찰하기 편한데 내가 만난 분들 가운데 그러지 못하는 분들도 많다. 지후님처럼 충분히 언어 구사를 못하기도 하고 동훈님처럼 난해한 언어를 구사하기도 한다. 노쇠하여 말할 힘이 떨어진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진료를 하며 내가 하는 대부분의 일은 대화다. 혹여 말로 직접 표현하지 못하는 환자라도 곁에 있는 이가 있다면 최대한 의견을 구한다. 반응이 전혀 없더라도 말이 없는 환자에게 나는 말을 걸어본다. 말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이해를 하는 분들도 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빠른 암 전이로 뇌 수술을 받은 60대 진혜(가명)님은 재수술을 위해 찾은 병원에서 너무 살이 쪘다는 교수님의 말에 밥을 먹지 않는다. 더 이상의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말에 호스피스 병원에 있다가 코로나 상황으로 자녀들이 돌보려 집으로 모셨는데 너무 식사를 잘 챙겨서 몇달 사이에 살이 조금 쪘던 것이다. 수술을 위한 입원 전에 나도 방문하여 처음 집으로 오신 6개월 전보다 살이 찐 거 같다고 식이 조절을 하시라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렸었다. 뜻을 자칫 잘못 전달하면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진혜님이 식음을 전폐하므로 고민이 되었다. 진혜님을 생각하면 걱정이 많다.

언젠가는 재가요양센터에서 농인 대상자를 의뢰하였다. 조금 먼 거리였지만 찾아뵙겠다고 하였다. 수어통역사분께 연락하여 찾아뵈었다. 3시에 뵙기로 했는데 조금 일찍 도착해서 먼저 댁을 찾았다. 농인 부부가 살고 있는데 아내의 건강상태가 최근 많이 나빠졌다. 당뇨를 오래 앓고 최근 신장이 나빠져 투석 치료도 시작하였다. 허리, 무릎 통증이 심해 거동도 어렵다. 문을 열어주어 집에 들어갔는데 적막했다. 티브이는 무음이었다. 명찰을 보여주어 내 소개를 대신했다. 사소한 부분조차 물어볼 수 없어 서로 바라보며 서류들을 뒤적거렸다. 마침 수어통역사분이 오셔서 차근차근 대화를 시작했다. 먹고 있는 약들을 확인하고 앞으로 필요한 지원을 논의했다. 수어 통역이 없었다면 소통이 쉽지 않았을 테다. 새삼 대화의 중요성을 생각했다. 다만 그것이 꼭 음성언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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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원 건강의집 대표원장이 환자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홍종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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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언어적 소통도 중요하다


언젠가 지후님이 “친구, 오랜만이야” 하며 나를 맞아줄 날을 상상하며 두 청년의 집 문을 두드린다. 지후님에게 “친구 잘 지냈지?” 하며 두 손을 맞잡으면 대꾸를 해주지 않아도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반쯤은 알 듯하다. 지후님에게 우리는 친구라고 하지만 친구처럼 어울리진 못했다. 우리가 친구가 되기 어려운 건 지후님과 대화를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진료라는 제한된 형태의 관계로만 만나기 때문이다. 따로 연락하고 시간을 보내는 건 아직 시도해보지 못했다. “우리는 친구야”라고 반갑게 인사하면서도 뭔가 거짓말 같아 나도 마음이 찔린다. 인연이 이어지는 대로 지속하여 만나고 소통하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지. 동훈님이 한번쯤 연예인 이름과 예능 프로그램 얘기를 하기 전에 내 안부를 묻는 날도 오겠지?

두분이 취하는 지금의 소통 방식은 과거 시설에서의 경험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짐작한다. 시설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후련하게 듣고 싶기도 하다. 대화는 중요하지만 언어의 부재가 존재의 실재를 반감하진 못한다. 그래서 한번이라도 더 찾아가보려 한다. 비록 언어로 대화하지 못할지라도 나름대로 소통을 시도한다. 만남을 허락해준 이들 덕분에 언어를 경유하지 않고서도 소통하는 방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부족한 의사에게 가르침을 아끼지 않은 그분들이 참 고맙다.

홍종원 찾아가는 의사

남의 집을 제집 드나들듯이 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방문을 허락하는 이들이 고맙고, 그들과 오랫동안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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