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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반야심경’ 개작 혜범 스님 “말 주인이 말의 고삐를 휘어잡듯”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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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가야지.”

“바다요? 바다는 왜요?”

“이 세상이 바다니까.”

“하필이면 왜 바다예요?”

“바다는 살아 아우성치니까.”(『소설 반야심경』, 제1권, 146쪽)

파도가, 우리네 삶처럼, 푸르게 아우성치던 강릉 앞바다로 가서 오래 전 작고한 아버지의 유골을 뿌리고 서울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그러니까, 비가 보슬보슬 내리던 1998년 8월, 여주대학 앞 왕복 4차로의 오르막길에서 천천히 달리던 그의 승용차는 맞은편에서 빗길에 미끄러져 중앙선을 넘어 돌진해온 학원장의 승용차와 충돌했다.

인력회사에 나가면서 불사를 한창 진행 중이던 혜범 스님은, 이 사고로 갈비뼈가 13개 부러졌고 망막이 파열되는 등 큰 부상을 입었다. 11번이나 수술을 받아야 했고, 2년 반이나 병원에서 회복에 전념해야 했다. 눈을 다쳐 한동안 제대로 볼 수 없어서 자주 부딪치고 넘어졌다. 고통은 오래 이어졌다.

“이때, 고통이라는 것을 알게 됐지요. 제가 중환자실에 있었는데, 옆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나서 너무 슬펐어요. 간호사나 간호조무사들은 사람이 죽는 것을 알더라고요. 아이고, 가겠구나. 똥 치우는 간호조무사가 제가 보지 못하더라도 잘 가세요, 라고 인사를 하더군요.”

사고 18년 뒤인 2016년, 스님은 그때의 고통을 되살려서 장편 『소설 반야심경』(문학세계사)을 고쳐 쓰기 시작했다. 소설은 이미 1992년 출간돼 무려 40쇄까지 찍어낸 밀리언셀러. 자신의 불사에도 도움을 준 작품이었다. 『반야심경』은 부처가 설한 팔만사천 경전의 진수를 270자로 압축한, 가장 사랑받은 불경의 대명사다.

“옛날 썼던 내용도 시대에 맞지 않았고, 문장도 맘에 들지 않아서 새로 완전히 개작한 것이지요. 전할 수 있는 메시지도 좋았어요. 한동안 눈이 멀었는데, 눈은 결국 우리들의 마음이잖아요. 시대는 지났으니까 젊은 독자들이 읽지 않을까 생각했지요.”

작품은 삼촌의 유골을 바다에 뿌리고 오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시력을 잃은 주인공 해인이 병원에서 치료와 재활을 하면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 인생 고통과 원인, 인연을 대면하게 되는 구도 소설이다. 도시 개발지역의 토지 때문에 간첩조작 사건에 연루돼 의문사한 외조부와 이모, 권력기관의 괘씸죄에 걸려 한센병 집단 수용소에 수용된 아버지와 어머니, 삼촌 지효 스님의 도움으로 수용소를 빠져나와 승려가 되는 해인, 그리고 간호사의 오빠에게서 듣게 되는 교통사고의 놀라운 비밀…. 해인의 기구하고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를 통해 인간 존재의 실상인 공(空),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의 깨우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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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기승을 부린 지난 13일 오전, 원주시 부론면 손곡리에 위치한 작은 절 ‘송정암’에서 ‘소설 쓰는 스님’ 혜범(속명은 김영웅)과 마주 앉았다. 오래 전인 1976년 입산한 스님이지만, 신춘문예로 등단해 『소설 미륵』, 『남사당패』 등 다수의 소설을 창작하고 대일문학상까지 받은 소설가이기도 하다. 소설은 그의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소설은 과연 그에게 무엇일까. 인터뷰 동안, 우리는 물을 자주 마셨고, 비행기 소리는 자주 우리 사이를 틈입했다.

―소설에서도 주인공 해인이 교통사고를 당하는데.

“해인이 탑승한 택시가 블랙 아이스로 먼저 사고가 나서 한쪽 가드레일을 박고 부딪쳤는데 뒤에 오는 차도 블랙 아이스로 추돌하게 된다. 스스로 원해 불행을 받은 게 아니지만, 이것 역시 인연이다.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에서 주인공이 경찰에 우연히 범인의 행방을 말했다가 실제로 범인이 그곳에서 잡혀 풀려나는 것처럼, 부조리한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작품 속에 나오는 한센병 환자 집단거주지 이야기나 권력기관 사람들의 파출소 폭력 등은 기시감이 있더라.

“실제 이 근처에 대명원이라는 한센병 환자 집단 거주지가 있었고, 1980년대까지 그 옆에 감염병예방연구소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파출소에서 권력기관 사람들에게 봉변을 당한 부문도 이 부근 파출소에서 전해오는 이야기에서 따온 것인데, 모 부처 차관 일행이 음주단속을 하던 부론 파출소 경찰들의 따귀를 때리고 발로 차는 등 폭력 난동을 벌였지만 기사화가 되지 못하고 묻혔다고 하더라.”

―삼촌 지효 스님이 서울역으로 가서 죽는 설정도 특이하다.

“서울역에서 1년 반 살았던 제 경험담이기도 하다. 신춘문예 본선에서 다섯 번이나 떨어졌는데, 당시 남산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고 저녁에 내려와 서울역 지하도에서 자곤 했다. 몸이 버티지 못하더라. 나중에는 도서실을 얻어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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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이 눈이 먼 이유는 재물을 훔쳐간 사형의 죄도, 그 시대의 독재 탓도 아닌, 카르마라는 업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업보라는 걸 믿지 않았는데, 언젠가부터 믿게 되더라. 제가 여기 오고 싶어서 여기와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해인이 마지막에 다시 눈을 뜨는 건, 착한 일을 하면 착한 결과가 오고 나쁜 일은 하면 나쁜 결과가 온다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작품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문은 어디인지.

“마지막 부문이었다. 이 세상에서 아프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고 슬프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자칫 하면 징징거리는 것밖에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름다우면서 슬프게 하려고 눈을 뜨는 것으로 했다. 살았다고 해서 다 산 게 아니다. 산 사람들에게도 살아 있는 징후가 있다. 어느 시간, 어디에 있든 결국 깨달음을 향해 가는 사람만이 살아 있는 사람이지, 그렇지 않으면 산송장이다. 마음이 깨어 있어 하루라도 참선하고 사는 게 사는 것이고 수행이다.(무려 5년이나 걸렸다고 했는데) 목탁도 치고, 참선도 해야 하고, 송정암도 운영해야 하고, 다른 소설도 쓰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문학도 결국 수행의 한 방법 아닌가.”

―작품 속에 농담이나 유머도 많고, 감각적이더라.

“저의 글쓰기는 잘못인 줄 알면서도 그대로 계속 밀고 나가는, 잘못을 가지고 잘못을 보태는 장착취착(將錯就錯)의 방법이다. 삶의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려 했다. 위트와 조크는 깨달음의 질료이다.”

―결국 『소설 반야심경』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주인공 해인은 1970, 80년대 군사정권 시대 입이 있지만 말을 못하고 귀가 있지만 듣지 못하는, 억압되고 눌린 소외받는 자를 대변한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색즉시공’의 ‘색(色)’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에서 나오는 것으로, 색즉시공은 색이 공하다는 의미다. ‘색’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고, 사람살이 역시 색이다. 저는 ‘색즉시공’에서 ‘공즉시색’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닌 ‘색비공비(色非空非)’, 생은 고통의 바다가 아닌 복의 바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배를 타고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오온(五蘊), 색과 공을 넘어서는 과정이 단순히 고통이 아니고 즐거움일 수 있다. 순대속 같다고 하는 사바세계는 결국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탐진치(貪瞋痴)의 세계, 욕망과 자본의 거리 아닌가. 산 밑에서 먹고 살면서 아파트를 사고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한 생인데, 저는 그것도 수행이라고 본다. 우리는 생명과 평화의 나그네일 뿐이다. 너도 나그네, 나도 나그네, 그러므로 우리는 소유하는 삶이 아니라 사용하다가 가는 삶이어야 한다.”

혜범은 ‘작가의 말’에서도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얘기를 쉽고 재밌게 풀어 쓰려고 노력했다”며 “수행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게 바로 이 고해의 바다를 건너는 일이고, 저 바다로 가는 길이 수행이고 깨달음으로 가는 길임을 역설한다”(『소설 반야심경』, 제2권, 284쪽)고 적었다.

서울 배문중학교 2학년 시절, 그는 효창공원 김구동상 앞에 앉아 있다가 한 스님을 운명적으로 만난다. 아버지가 보증을 섰다가 집이 날아가면서 더 이상 학교마저 다닐 수 없던 때였다. 스님이 그에게 물었다. “가방에 뭐가 있느냐.”

1957년 충북 중원에서 태어나서 어릴 적 서울로 이사한 그의 가방에는 국어사전과 조나단 리빙스턴의 소설 『갈매기의 꿈』, 생텍쥐베리의 소설 『어린 왕자』, 검정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공부하던 시험지 노트 등이 있었다. 스님은 그의 시험지 노트 속에서 틀린 것을 가르쳐줬다.

“너, 학교 안가고 뭐하느냐.”

“갈 데가 없습니다.”

“공부하고 싶으면 내가 공부시켜 줄테니 같이 가자.”

“스님을 어떻게 믿어요?”

스님은 이에 자신의 시험지 노트를 보여줬다. 거기엔 자신이 쓴 시들이 빽빽이 담겨 있었다. 그는 ‘시를 쓰는 스님’에 “뿅”갔다. 그는 스님의 손에 끌려 1976년 입산했다. 스님은 바로 서울대 수학과 출신으로 시위 사건으로 몸을 숨기다가 승려가 된 만장 스님으로, 역시 시를 쓰는 정휴 스님 등과 도반이었다.

혜범 스님은 계를 받은 이후 풍수납자처럼 많은 고승을 찾아다니며 수행을 이어갔다. 이 와중에 1991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단편소설 「바람, 물, 바람」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어떻게 문학의 세계, 작가의 길에 들어온 것인가.

“아무래도 작고하기 전까지 시를 쓰던 은사 만장 스님의 영향일 것이다. 어렸을 때 읽었던 이광수의 『꿈』이나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등 불교문학이 커다란 울림을 줬다. 등단 당시 문학을 한다고 하면 스님들이 싫어했다. 저는 문학이 좋았고, 문학을 수행으로 삼자고 생각했다. 문학이 없었으면 좌절하고 절망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서울의 신춘문예 본선에서 다섯 번이나 떨어졌다. 마침 대전에서 절에서 염불 등을 해주고 월급을 받는 부전을 하고 있다가 신춘문예에 응모하게 됐다.”

등단 이후 그는 장편 『언제나 막차를 타고 오는 사람』, 『손을 잡으면 마음까지』, 『천기를 누설한 여자』, 『소설 미륵』(3권), 『업보』(2권), 『남사당패』(3권) 등을 펴냈다. 특히 작품 『언제나 막차를 타고 오는 사람』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주로 어떤 소설을 써온 것인지.

“뿌리 뽑힌 사람들의 이야기와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썼다. 결국 삶 역시 수행이고, 파도타기다. 소유가 아닌 사용의 삶으로 가자는 얘기다. 소설을 쓸 때마다 주인공과 시대, 배경은 다르지만, 해탈과 열반을 꿈꾸는 나의 작은 바람을 녹여 쓰려 했다.”

―글쓰기를 위해 특별히 준비하는 게 있느냐.

“이번 작품을 쓰기 위해 시각 장애 체험을 보름간 해봤다. 눈에 안대를 하고 몸에 끈을 묶은 뒤 생활했다. 저의 경우 간접 체험을 할 수 없으니 쓰고자 하는 것을 직접 체험한다. 예를 들면 미행 장면이 나오면, 장보러 갔다가 아무 사람이나 슬쩍 쫓아가보곤 한다. 그러니까 문학이 되더라. 결국 체험하지 않는 것을 금방 알게 되더라. 문학이 아무리 ‘낯설기하기’라고 하더라도 리얼리즘이 없으면 다가오지 않는다. 가짜와 진짜는 문장만 보면 안다.”

―스님이 소설을 쓴다고 하면 반응이 다양할 것 같은데(웃음).

“처음에는 구박을 많이 받았다. 한 번은 큰 절에 갔는데, 나가라고 하더라. 그래서 진짜로 절을 나왔다. 지금 매년 부처님오신날(음력 4월8일) 송정암에서 ‘산사 붓다 콘서트’ 시낭송을 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어디 법당에서 시를 낭송하고 기타를 치느냐고 욕을 많이 얻어먹었다. 시간이 흐르고 시낭송도 2, 3회 하니까 인정을 받았다. 작년엔 이건청 전 시인협회장이 와서 낭송을 했다.(소설이나 시 쓰는 스님이 많은가) 조오현 스님(작고)과 정휴 스님 등 시를 쓰시는 분은 많지만, 소설을 쓰는 스님은 많지 않다.”

―스님에게 소설은 과연 무엇인가.

“문학만큼 매력적인 게 없는 것 같다. 문학은 구원자이기 하지만 예언자적인 면도 있다. 낡고 닳은 것의 답습이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게 좋다. 가끔 천년된 불상을 보는데, 볼 때마다 새롭다. 천 년 전 돌을 깎는 사람은 무엇 때문에 저것을 깎았을까, 그것을 생각하게 된다. 글도 하나의 부처가 아닐까, 우리들이 열어야 되는 문이나 세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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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찰’로 알려진 송정암과의 인연은.

“1992년 이곳에서 처음 텐트에 치고 살았다. 구도자라는 것도 결국 살아야 한다. 이 산 속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이 없더라. 불사는 해야 하고. 결국은 인력시장에 나갔다. 페인트 기능사 등 자격증을 취득하고 단청도 배웠고, 단청을 칠하러 돌아다니며 여기까지 왔다. 부전도 살고, 월급 주지도 살고, 다시 여기 들어왔다가 나갔다가 했다. 2013, 14년쯤 불사를 완성하고 들어왔다.”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는지.

“새벽 3시30분 새벽 예불을 하고, 오전 11시 주간 예불, 오후 5시 저녁 예불을 차례로 한다. 나머지 시간은 제 자유의 시간이다.(건강은) 비비적거리고 살 수 있는 것만도 행복이다. 아무래도 허리가 좋지 않다. 옛날에는 맷돌처럼 앉았는데, 지금은 두 시간만 앉으면 일어나서 한 바퀴를 걸어야 한다.”

인터뷰가 끝나고 기자를 태운 차가 절을 에둘러 벗어날 즈음, 그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이 순간, 초면에 절을 찾는 데 애를 먹었다고 너스레를 떨자 그가 툭, 던진 한 마디가 떠올랐다.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은 이날 송정암을 제대로 찾아내지 못했고, 차는 절 주위를 두 번이나 빙빙 돌아야 했으니까. “이곳을 찾아오는 것 자체가 수행이지요.”

아,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매 순간 우주만유가 불성뿐임을 여의지 않는 ‘무시선 무처선(無時禪 無處禪)’의 정신이여. 그러니까, ‘소설 쓰는 스님’ 혜범에겐 염천 아래 한 문장 한 문장이, 한 숨 한 숨이 바로 수행이었고 선이었다. 소설 속 해인이 수행이란 뭐예요, 라고 묻자 답한 노스님의 말을 의지처로 삼은.

“이 세상이라는 드라마, 네가 주인공이지. 나는 너의 엑스트라이고. 이 세상은 너의 것. 그러니, 너의 고삐를 네가 잡아라. 말 주인이 말의 고삐를 잡듯. 바로 네가 부처님이시란다.”(『소설 반야심경』, 제1권, 262쪽)

원주=글·사진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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