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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빌미 표현의 자유 막아” vs “국민 생명이 우선… 불가피” [심층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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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4차 대유행 속 집회 논란

자영업자, 1인회견·심야 차량시위 계획

경찰, 서울시 곳곳 검문소 설치해 막아

참여자 “거리 외엔 호소할 곳 없어” 울분

국민 88% “집회 제한은 방역 필수 조치”

민노총, 정부 만류에도 8000명 운집 강행

시위자 중 확진자 발생… 경찰, 수사 착수

“공연·경기 비해 잣대 엄격” 형평 불만도

거리두기 인원제한 과학적 근거 불분명

“법적 기준 명확히 제시… 공감대 얻어야”

세계일보

지난 3일 서울 종로3가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도로를 점거한 채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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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자회견도, 차량 시위도 허용하지 않는 이유가 대체 무엇입니까.” 지난 14일 오후 11시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는 고성이 오갔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전국자영업자 비상대책위원회’(자영업자 비대위)가 “자영업자의 피해를 알리겠다”며 기자회견과 심야 차량 시위를 진행하려 하자 경찰이 막아선 것이다. 경찰은 이날 시위 참여 차량을 통제하기 위해 서울 시내 곳곳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여의도공원 일대에도 경력 수백명을 투입해 기자회견을 제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우려된다는 이유였다. 경기석 자영업자 비대위 공동대표는 “이렇게 밤늦은 시간에 차량 시위를 하는 이유는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다”라며 “차량에 한 명씩 타서 진행하는 시위까지 막는다면, 우리는 대체 어디에 하소연해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방역’과 ‘집회·시위의 자유’가 충돌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정부는 4차 대유행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집회·시위를 제한하는 건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서는 “방역을 빌미로 비판적인 목소리를 원천봉쇄하는 것 아니냐”는 쓴소리도 나온다.

◆“국민 생명이 우선” vs “목소리를 낼 창구가 없다”

23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은 지난 3일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의 전국노동자대회를 벌였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관계자 23명을 입건했다. 당일 집회에는 8000여명(주최 측 추산)이 참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경찰청은 수사부장이 본부장을 맡은 52명 규모의 특별수사본부를 편성해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경찰청은 지난해 ‘광복절 광화문 집회’ 당시에도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대응했지만, 올해에는 대응 규모가 크게 늘었다. 경찰은 또 지난달 여의도에서 열렸던 전국택배노조의 상경 집회(주최 측 추산 4000여명 참석)와 관련해서도 31명을 내사하는 등 대규모 집회에 강경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방역당국도 마찬가지 기조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사회전략 반장은 “외출조차 자제하라고 말할 정도로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구호를 외치고 소리를 지르는 집회를 허용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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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원주 집회를 계획한 23일 집회장소인 강원 원주시 국민건강보험공단 출입구를 경찰이 통제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집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수칙 위반을 발견하면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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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이들 집회에 세게 대처한 이유는 지난해 광복절 집회의 ‘뼈아픈 기억’과 무관치 않다. 당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문재인정부 규탄 집회에 수만명이 모였는데, 이후 참가자를 중심으로 500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결국 광복절 집회가 ‘2차 대유행’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번 민주노총 집회에서도 3명의 확진자가 발생해 질병관리청이 집회 참석자 전원을 대상으로 진단검사를 받으라는 행정명령을 내린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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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국민도 방역을 위해 집회를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모습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최근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집회·시위 제한에 대해 ‘방역을 위한 필수조치’라는 응답이 88%에 달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집회에서는 사람들 간 간격이나 접촉을 완벽히 통제하기 어렵다”며 “집회를 하기 전이나 하고 난 후 모여서 이동하거나 밥을 먹는 행위들이 감염 위험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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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 비대위나 민주노총도 코로나19 방역의 시급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이 집회·시위의 자유 보장을 주장하는 것은 “거리에 나오지 않고는 목소리를 전달할 방법이 없다”는 이유다. 고장수 자영업자 비대위 공동대표는 “그동안 제대로 된 소통창구가 없었다. 겨우 요구사항을 정부에 전달해도 5분의 1도 수용이 안 됐다”며 “정부는 그저 기다리라고만 하는데, 이러다 우리가 다 죽을 것 같아 집회를 하게 된 것”이라고 호소했다. 민주노총 역시 “정부가 스포츠와 공연 관람 등에 적용한 방역수칙은 완화하면서도 노동자 집회에 대해서만 유독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다. 방역을 핑계로 집회 결사의 자유를 넘어 ‘민주노총 죽이기’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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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강원 원주시 국민건강보험공단 인근에서 열린 고객센터 노조 직접 고용 촉구 결의대회에서 집회 참가자가 통제선을 넘으려다 경찰에 제지당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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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개정해 정당성 제고해야”…“국회도 제 역할 해야”

방역 대응 차원이라고는 해도 헌법상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를 정부가 제한하는 것에 구체적 근거가 불명확하다는 점은 논란을 키우고 있다. 현행 거리 두기 단계별로 규정된 집회·시위 인원제한 조치(1단계 500명 미만·2단계 100명 미만·3단계 50명 미만·4단계 1인 시위 외 금지)는 허용 인원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재한 상황이다. 감염병예방법 제49조 1항은 ‘흥행, 집회, 제례 또는 그 밖의 여러 사람의 집합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것’을 명시하고 있을 뿐, 인원제한 기준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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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민 인하대 초빙교수(법학박사)는 최근 논문 ‘코로나19 공중보건위기와 헌법상 집회의 자유’를 통해 “집회 제한·금지의 법적 기준을 보다 명확히 제시하고, 감염병 예방조치 결정 시 전문가 의견을 원칙적으로 듣는 방안을 고려해 처분의 정당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집회를 무조건 막을 것이 아니라 집회 주최 측도 동의할 수 있는 사회적인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위력을 과시하기 위해 집회를 강행하는 것은 자제돼야 하지만, 방역수칙을 지키면서 일정 규모로 진행하는 집회까지 모두 제한하는 것은 과도한 (기본권) 침해”라고 밝혔다.

집회·시위 제한을 둘러싼 갈등이 우리 사회의 ‘제도권 정치 실종’ 문제를 방증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이 코로나19 상황에서 다양한 민의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해 국민을 ‘거리’로 떠밀고 있다는 것이다. 차재원 정치평론가는 “제도권 정치에서 합의를 이뤄내고 국민을 통합시키지 못하는 ‘정치의 실종’ 상태”라며 “집회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면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 우리 사회 각 계층 불만을 녹여내는 용광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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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상세계서 머리띠 맨 ‘아바타 시위자’

“코로나19 시대에도 사회운동은 계속돼야 합니다. 단, 새로운 방식으로.”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사회 곳곳에서 비대면이 화두가 되면서 ‘메타버스(아바타를 통해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디지털 가상세계)’가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에는 집회까지 메타버스에서 진행돼 화제가 됐다.

23일 문화연대에 따르면 지난 16일 메타버스 애플리케이션(앱) ‘히든오더’에서 열린 타투업 합법화 촉구 집회에는 총 182명(동시 접속자 기준)이 참여했다. 국내에선 최초의 메타버스 집회로 알려졌다. 이들은 실제 집회처럼 메타버스 공간에 행사 이름인 ‘내 눈썹이 불법이라니’가 적힌 현수막과 팻말 등을 설치했다. 참여자를 대신하는 아바타들은 집회 복장인 빨간색 머리띠와 조끼를 착용했다. 연사로 나선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채팅으로 발언할 때는 아바타들이 점프 동작으로 호응하기도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시행 중인 서울 한복판에서 집회가 열렸다면 경찰이 해산 조치에 나섰겠지만, 아바타들의 집회는 1시간여 동안 평화롭게 진행됐다.

집회를 기획한 문화연대 활동가 신영은씨는 “코로나19 시대에도 사회적 메시지를 어떻게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 메타버스 집회를 추진하게 됐다”며 “시도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었다고 본다. 시민들이 목소리를 낼 공간을 새로 마련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설명했다.

그간 시민사회단체들은 거리두기로 집회가 제한되는 상황에서 1인 시위를 유튜브로 생중계하거나 화상회의 앱 ‘줌(Zoom)’을 통해 모여 의견을 개진하는 식으로 대안을 모색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메타버스 집회는 새로운 사회운동 방식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신씨는 “메타버스는 참가자들이 게임을 하듯 채팅을 하고 아바타로 직접 행진도 할 수 있어 유튜브나 줌보다 ‘액션’을 훨씬 잘 드러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메타버스 집회가 새로운 집회 형식으로 자리 잡기에는 아직 기술적인 한계가 있다고 했다. 문화연대의 집회에서도 일부 참가자의 접속이 끊어지는 현상이 있었다. 신씨는 “집회 규모가 커질수록 이런 서버 문제가 더 생길 것”이라며 “음성기술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연사들이 발언할 때도 채팅으로 40자씩 끊어서 하는 등의 단점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신씨는 향후 메타버스에서 또 다른 집회를 개최하려고 검토 중이다. 그는 “요즘 젊은 세대들은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디지털 위주로 바뀌고 있다. 메타버스는 젊은 층에게 효과적인 소통의 수단”이라며 “코로나19 상황에서는 메타버스 집회가 새로운 선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현모 기자 li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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