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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토)

“유전자가위로 넙치 ‘벌크업’, 안전성 우려도 극복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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넙치 ‘벌크업’을 실현한 공희정 수과원 연구관

[경향신문]

2020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유전자가위 기술은 의약품 개발을 비롯해 식량을 생산하는 농수산·축산 부문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유전자가위 기술은 생물의 유전자(DNA) 일부를 잘라내거나 치환함으로써 새로운 형질을 얻거나 없애는 일종의 유전자 편집이다. 이를 활용하면 동식물의 품종 개량을 이끌어낼 수 있다. 노벨위원회는 유전자가위 기술을 생명과학 분야의 ‘혁명’이라고 평가했고, 세계 각국에서 연구가 진행 중이다.

한국도 이 대열에 함께하고 있다. 지난해 해양수산부 주관 해양수산과학기술대상 최우수상은 유전자가위 기술을 수산 분야에 접목시켜 ‘넙치(광어) 근육량 25% 증가’란 성과를 이끌어낸 국립수산과학원(수과원)에 돌아갔다. 연구를 이끈 공희정 생명공학과 해양수산연구관(50)을 지난 7월 12일 부산 기장군 수과원 연구실에서 만나 유전자가위 기술로 넙치 ‘벌크업’을 실현해낸 과정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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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가위 기술로 넙치 근육량 증가에 성공한 국립수산과학원 공희정 연구관. | 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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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양식 어종 중에 왜 넙치를 선택했나.

“넙치는 지난해 기준 국내 양식 어류 생산량의 49.2%를 차지하는 대표 양식어종이자 횟감이다. 하지만 최근 기후변화로 양식환경이 변하고 질병 발생이 많아지며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낮아졌다. 저렴하고 고단백인 넙치를 고기능성으로 만들어 좋은 먹거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수과원에서 넙치 양성 기술이 안정화돼 수정란을 대량으로 확보할 수 있었고, 넙치 유전체 정보(게놈)를 완전히 해독한 상태였다. 이처럼 완성도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넙치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말하자면 넙치를 ‘벌크업’한 것인데, 원리가 무엇인가.

“넙치를 ‘맞춤형 품종 개량’해 먹을 수 있는 부위인 근육을 늘리고자 했다. 목표로 하는 유전자는 근육성장 저해 유전자 ‘미오스타틴’이다. 유전자가위 기술을 활용해 미오스타틴을 제거할 경우 근육이 증가하리라는 가설에서 출발했다. 다른 동물에서 미오스타틴 유전자 관련 근육 증가가 의학적 합병증을 유발하지 않고 다음 세대로 유전된다고 알려진 점도 유효했다.”

-이 같은 성과의 기술적인 의의는.

“세계 최초로 유전자가위를 넙치에 적용해 성공했다는 의의가 있다. 그동안 제브라 피시 같은 어류를 대상으로 실험실에서 활용한 적은 있었어도 넙치처럼 크고, 한 세대가 2년 이상이 되는 양식 어류의 형질 개량에 성공한 것은 처음이다. 유전자가위 기술을 단단한 해산어 수정란에 적용할 최적 조건을 찾고 한세대 만에 ‘근육 25% 증가’라는 형질 개량에 성공해 어류 정밀육종 기반을 구축했다는 의의도 있다.”

-유전자가위와 유전자 변형의 차이는.

“둘 다 유전자를 다루는 생명공학 기술이긴 하나, 외래 유전자가 최종 산물에 남는지 안 남는지가 가장 큰 차이다. 유전자 변형은 원래 없던 외래 유전자를 넣는다. 예를 들어 대두나 옥수수 같은 작물에 해충이나 제초제에 저항성을 가진 유전자를 넣는 것이다. 반면 유전자가위는 자신의 유전자 변이에 의해 형질이 개선되므로 전통적인 교배나 돌연변이 육종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목적으로 하는 유전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있어 유전자 변형보다 정교하게 원하는 형질을 얻을 수 있다는 점도 유전자가위의 장점이다. 넙치의 경우 근육성장저해 유전자(미오스타틴)를 잘라냈다. 외래 형질을 넣은 게 아니고 그 일부를 잘라내 최종적으로 넙치 근육이 증가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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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희정 연구관이 부산 기장군 수과원 연구실에서 연구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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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쉬워도 굉장히 어려웠을 것 같다.

“넙치는 난막이 굉장히 단단하고 수정란이 약 0.85~0.95㎜ 정도로 작아 일반적인 미세유리바늘(지름 1㎜)로는 뚫을 수가 없고, 뚫는다 하더라도 세포 손상이 일어난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 때문에 개발한 RNA를 수정란에 도입하는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난막을 흐물흐물하게 해보려고 효소 처리도 해봤지만, 결국 시중에 있는 미세유리바늘을 나름대로 변형했다. 시행착오를 거쳐 용액이 새나오지 않도록 미세유리바늘에 역류방지관을 만들고, 바늘 끝을 30~35도 정도로 날카롭게 갈았다. 생존율이나 부화율에 영향을 주지 않으며 수정란 속 하나의 세포에 유전자가위를 미세주입 할 수 있었다. 넙치 수정란을 안정적으로 고정할 몰드 또한 개발했다.”

-연구 성과를 내기까지 3년이 걸렸다.

“3년은 짧게 걸린 것이다. 그전의 예비실험이 크게 성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연구를 시작해 첫해인 2016년에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1600여개 수정란 중 딱 10마리만 살릴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기술이 완전하지 않았을 뿐더러 실험실에서 소규모로 넙치를 양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10마리 중 암컷이 4마리였고, 암컷 1마리의 생식세포가 미오스타틴 편집이 돼 있는 상태였다. 이 암컷이 2018년에 수컷과 교배해 낳은 넙치 역시도 편집이 돼 있어 근육 증가란 형질이 다음 세대로 유전된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형질 변형 1세대 넙치를 얻은 것이다. 이 암컷의 택번호가 ‘2049’다. 그래서 우리끼리는 ‘우리를 살린 2049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상용화까지 남은 과정은.

“유전자가위로 덜어낸 형질이 다음 세대에도 전달됐다는 것을 유전적으로 확인은 한 상태이기 때문에 거기서 표현형을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의도하지 않은 다른 변이, 비특이적인 변이가 일어나지는 않는지를 기술적으로 확인하는 단계다.”

-안전성에 대한 우려는 없을까.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안정성에 대한 우려를 극복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유전자가위 기술을 통한 품종개량이 전통 육종 기술을 통한 품종개량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줘야 한다. 현재로선 변형시킨 형질이 다음 세대로 전달되면서 딱 그 형질만 바뀌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유전자변형생물체(LMO)와 달리 최종 산물에 외부 유전자가 남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LMO와는 달리 취급해야 한다는 취지로 법안이 마련돼 공청회도 했다. 미국, 일본, 호주 등 해외에서는 실제로 최종 산물에 외부 유전자가 남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되고 위해하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면 식품으로 승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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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활용 가능성은.

“근육 성장이라는 것은 하나의 시작이다. 미래 양식산업은 단순히 수산물을 길러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유전자가위 기술로 면역이나 스트레스 관련 유전자를 조절해 내병성, 환경내성을 만들 수도 있고, 재생산력을 조절할 수도 있다. 상품성을 높인 양식어종을 선택적으로 양성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은 인간에게 이롭게 하기 위해 연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 활용될 수 있게끔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검증하는 단계를 충분히 거치기 위해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다.”

-이 같은 기술 개발을 수과원에서 했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는.

“두가지 측면이 있다. 우선 형질을 변환한 넙치를 먹기 위한 목적이다. 다음은 계속 발전하고 있는 과학기술을 도외시할 순 없으니, 이를 안전하게 관리하고 잘 활용하겠다는 측면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넙치에 유전자가위 기술을 적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외국에서 해당 기술이 적용된 넙치를 들여와야 할 수도 있다. 이때 이게 진짜 안전한지에 대해 국민의 우려가 클 텐데, (우리 기술이 있다면) ‘수과원에서 기술을 개발해 평가해봤는데 안전하다’는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향후 관심사를 확장하고 싶은 방향은.

“질병에 잘 견디는 내병성 형질 개량을 목표로 연구하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양식산업에서 중요한 수산물에서 환경 스트레스에 잘 견디는 품종이나 수요자가 원하는 맞춤형 형질개량 연구도 해보고 싶다.”

-연구자로서의 보람은 어떤 것인가.

“첨단 기술을 이용해서 좀더 우리 실생활에 가깝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수산 분야에서 느끼는 연구의 즐거움이다. 수산 분야는 아직 할 일이 무궁무진한 블루오션이니, 건강하고 지속적인 식량생산에 기여할 수 있도록 관련 분야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면 좋겠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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