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아버지와 큰오빠, 작은오빠까지 경찰 손에 다 죽었어 [박만순의 기억전쟁2]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국전쟁기 태안지역 민간인학살 피해자 유족 지만월과 배광모의 이야기

오마이뉴스

▲ 전쟁 때 아버지와 오빠 둘을 잃은 지만월. ⓒ 박만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만월(84세, 충남 태안군 소원면 신덕리)은 대문에 걸려 있는 헝겊가방을 선물 보따리인양 손에 쥐었다. 안방에 들어가 가방을 여니 문제지가 나왔다. 연필을 쥔 그녀는 예시문을 그대로 받아썼다.

'바다는 넓고 넓어요', '옷이 얇아서 추워요' 예전 같으면 발음나는 대로 썼을 글들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신덕리 마을회관에서 하는 한글교실에 처음 참여했을 때였다. 선생님이 "옷이 얇아서 추워요"를 말하고 써보라고 했다. '옷이 얄바서 추워요'라고 썼는데, 선생님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할머니 이건 발음나는 대로 쓴 거예요"라며 올바른 글쓰기를 알려 주었다.

뒤늦게 한글을 배우는 요즘 지만월은 세상을 모두 가진 것 같다. 다만 코로나 때문에 마을회관에 가지 못하고 학습지로만 배우는 게 불만이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다시 마을회관에서 한글을 배울 생각이다. 그녀는 젊었을 시절인 1950년대에도 마을 오빠 지재원이 운영한 야학에 다녔다. 당시 야학에서 <국문독본>을 배웠지만, 오랜 기간 글을 쓰지 않아 한글을 까먹었다.

오해와 오발

1950년 10월. 지만월의 오빠 지기상(당시 19세)은 어머니 박씨와 함께 아버지 지재기와 형 지무상의 시신을 찾으러 여기저기 다녔다. 태안면 평천리와 원북면 신두리 등 사람들이 죽었다는 소문이 난 곳에는 안 간 데 없이 모두 다녔지만 아버지와 형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지기상이 아버지와 형의 흔적을 찾기 위해 태안군 소원면 면소재지를 거닐 때였다. "야! 이리 와." 경찰들이 그에게 담배 박스를 실은 지게를 메라고 했다. 지게를 진 지기상이 법산리로 가는데 뒤에서 총소리가 나는 게 아닌가. "탕" 소리에 그는 지게를 벗어 던지고 줄행랑을 쳤다. 그리고 이어진 총소리에 지기상은 삼밭에 고꾸라졌다.

사실은 이랬다. 당시 경찰들이 법산리 문〇〇을 향해 발포했는데 지기상이 겁을 먹고 도망가자 경찰도 이를 오해해 발포한 것이다. 1950년 10월 소원면 법산리와 신덕리의 경계 삼밭에서 있었던 일이다. 지기상의 여동생 지만월은 이 일이 1950년 7월 말경에 있었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당시는 인공 시절이었기에, 실제 사건은 군·경이 태안을 수복한 그해 10월경에 발생했을 것으로 판단된다.(한반도통일역사문화연구소 최태육 소장)

죽은 지기상이 동분서주하며 찾던 아버지 지재기와 형 지무상(당시 26세)은 어떻게 됐을까? 1950년 7월 11일(음력 5월 26일) 보도연맹원 예비검속 때 소원지서에 연행된 지재기와 지무상 부자는 대전형무소 가는 방향의 유구 차돌고개에서 학살됐다. 지무상의 아들 지영옥(1947년생,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은 "소원면 영전리에 살던 장내흥씨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실은 트럭을 차돌고개에서 보았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그렇게 아버지 지재기, 큰오빠 지무상, 작은오빠 지기상을 잃은 지만월은 학교를 다니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다행히 전쟁 후 마을 오빠가 운영하던 야학에 다녔고, 그로부터 60여 년 만에 태안군이 운영하는 문해교실에 참여하고 있다.

돈도, 빽도 없고 가방끈도 짧아
오마이뉴스

▲ 삼촌 배재성이 학살된 사기실재에 선 배광모. ⓒ 박만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라디오 방송은 시작됐다. 배광모는 세수를 시작했다. 그날따라 세수를 하는 기분도 상쾌했다. 그날 공무원 시험을 치는 배광모는 아침부터 서둘렀다. 어머니가 차려준 아침을 먹고 채비를 마친 다음 신발을 신을 때였다. 대청마루에 있는 라디오에서 시사퀴즈 내는 소리가 들렸다.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1번 부산, 2번 서울, 3번 온양, 4번 진도. 4곳 중에 어디일까요?" 배광모는 고개를 갸웃했다. 온양 같기도 하고, 진도 울돌목 같기도 했다. 집을 나서기 직전 라디오에서 아나운서의 정답 발표가 있었다.

시험 장소는 서산농고였다. 시험장 교실 뒷자리에 앉으려 하는데 의자에 웬 낙서가 돼있었다. '이 자리에서 시험 보는 분은 꼭 합격합니다' 배광모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자, 지금부터 시험지를 돌리겠습니다. 부정행위를 하다 적발되면 무조건 퇴실 처리를 할 테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시험감독관의 말이 있고 국사 시험지를 받은 배광모는 깜짝 놀랐다. 첫 문제가 다름 아닌 '이순신 장군의 출생지는 어디인가요?'였다. 기가 막히면서도 어안이 벙벙했다.

그는 '서울'에 답 표시를 했다. "이순신 장군의 출생지는 서울 건천동입니다"라는 아나운서의 말이 귓가에 생생했다. 행운은 이어졌다. 수학 시험에는 피타고라스 법칙을 다룬 문제가 나왔다. 그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어젯밤 꿈에서 공주사대부고 소원섭 선생님이 가르쳐 준 문제가 숫자 하나 바뀌지 않고 그대로 나왔기 때문이다. 마지막 시험은 헌법과 경제 과목이었다. 그가 서점에서 사서 공부한 <경제대의>, <법제대의>에서 시험문제가 그대로 나왔다. 시험을 마치고 집에 오는 내내 배광모는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그렇게 해서 배광모는 1969년 서산군청 9급 공무원 1차 시험에 14: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합격했다. 공주사대부고를 힘겹게 졸업한 배광모가 짧은 시간 공부한 것 치고는 크나큰 성과였다.

배광모 앞에는 2차 시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구술시험이었는데 소문에는 '돈을 갖다 주든지, '빽'을 쓰든지 해야 한다'고 했다. 돈도 빽도 없었던 배광모는 그저 면접관의 질문에 성실히 답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런데 2차 시험까지 합격한 그에게 발령이 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그의 한숨 소리를 들은 형 배정모가 "내가 한 번 알아볼게"하며 나섰다. 배정모는 당시 서산·태안 지역구 국회의원 이상희의 지역사무소에서 일하던 친구 최충수(가명)를 만났다. "충수야, 내 동생 발령 좀 내주라." 그가 친구에게 건넨 뇌물(?)은 고작 갈비 한 짝이었다. 걱정 마라는 호언장담에 배정모는 동생 광모를 안심시켰지만 역시나 발령은 나지 않았다. 화가 머리꼭지까지 난 배정모가 태안 읍내에서 최충수와 마주쳤다. "야, 이 자식아"라며 욕하며 대드는 배정모에 최충수는 줄행랑을 쳤다.

그 일이 있은 직후 다행히도 배광모는 서산군 태안면사무소에 기한부(계약직) 공무원직으로 발령이 났다. 소사(학교, 관공서 등에서 잔심부름을 하던 사람)도 국회의원이 관리하던 시대였다. 배광모는 왜 공무원 발령을 받기 어려웠을까?

경찰이 노파를 군홧발로 차

1950년 11월말 충남 태안군 태안읍 송암리. "아부지, 큰일 났어요"라며 뛰어든 아들 배광모(당시 10세)를 배생춘은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왜 그러냐, 광모야?" "웬 아저씨들이 삼촌을 붙잡아 갈려고 해유."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흙을 밟던 배생춘은 황급히 마당으로 달려갔다.

동생 배재성은 이미 뒷결박을 당한 상태였다. "왜 이런대유?" "시끄러워! 얼릉 데려가." 배생춘이 동생을 잡아가려는 경찰의 옷자락을 붙잡자 총 개머리판이 돌아왔다. 어머니 권순경이 "내 아들이 뭔 죄가 있다고 잡아가는규?"라며 경찰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이 노인네가 죽으려고 환장했나!" 경찰의 군홧발에 권순경은 나가떨어졌다. 배광모가 "할머니"라고 부르짖으며 달려갔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북한군이 점령한 인공(인민공화국) 시절 젊은이 몇몇이 배생춘의 사랑방에 모여 시국을 논했는데 이것이 후일 치안대원들의 미움을 샀다. 국군이 수복한 후에 치안대원들이 배재성을 태안경찰서에 밀고하면서 사달이 났다. 부역 혐의로 연행된 배재성은 이후 태안면 사기실재에서 경찰에게 학살됐다. 같은 마을 사람 8명은 태안면 바금이에서 죽임을 당했다. (『태안 민간인학살 백서』, 2018)

배광모는 할머니와 함께 사기실재에 삼촌의 시신을 찾으러 갔다. 삼촌은 엄지발가락이 없었기 때문에 시신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배재성의 시신은 처참함 그 자체였다. 불에 탄 살점이 옷에 들러붙어 있었다.

배광모는 1998년 근흥면장으로 퇴직, 현재는 문화관광 해설사로 활동 중이다.

박만순 기자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마이뉴스에서는 누구나 기자 [시민기자 가입하기]
▶세상을 바꾸는 힘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오마이뉴스 공식 SNS [페이스북] [트위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