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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북한 100℃] 남한서 '환승연애' 인기인데 북한은 '오빠'도 단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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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대중 문화 속 연애와 이별 이야기

[편집자주][북한 100℃]는 대중문화·스포츠·과학·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북한과의 접점을 찾는 코너입니다. 뉴스1 북한팀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관심사와 관점을 가감 없이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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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빙(tving) 오리지널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환승연애' 포스터.(tving 제공) © 뉴스1


(서울=뉴스1) 이설 기자 = "주휘는 제가 헤어진 걸 후회한 유일한 남자입니다."

헤어진 연인이 쓴 '나의 소개서'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읽는, 티빙(tving) 오리지널 프로그램 '환승연애' 속 한 장면이다. '환승연애'는 이별한 8인의 남녀가 다시 모여 지나간 사랑을 되짚고 새로운 연인을 찾아가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이들은 한 집에 살면서 전 연인과 '재결합'할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전 연인과 '새로운 인연'을 맺을지 선택하게 된다. 흥행 불패인 일반인 연애 리얼리티가 다양한 변주를 거쳐 자극적으로 가고 있다는 평도 많지만 화제성은 여전히 높다.

남한에서 이처럼 다양한 연애 리얼리티가 펼쳐지는 동안, 북한에서는 청년들 사이에 퍼진 '오빠', '남친(남자친구)' 등 남한식 호칭과 말투를 강하게 단속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지난해 12월 남한 영상물을 유포한 자는 최대 사형, 시청한 자는 최대 징역 15년에 처하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한 데 이은 '남한 문화 근절' 행보다. 북한 청년들도 어렵지 않게 남한 드라마나 영화를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사상 이완'을 경계한 것이다. 만약 이들이 남한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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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노동신문=뉴스1) = 평양 주민들이 마스크를 쓴 채 거리에 핀 꽃을 감상하고 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북한 대중문화 속 연애…사랑보다는 동지?

북한도 '중매' 아닌 '연애' 결혼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이런 형식의 연애 리얼리티 예능은 북한 청년들에게도 '신세계'일 것 같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시장화가 이뤄지면서 연애에 대한 인민들의 인식도 점차 바뀌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북한 매체에서는 남녀 관계를 '혁명 동지'로 묘사하고 있다. 남녀가 사랑의 감정보다는 당을 향한 충성심에서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는 식이다.

1997년 발표된 영화 '먼 훗날 나의 모습'에서는 북한이 권고하는 혁명 동지로서의 남녀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소위 '금수저'인 평양 남자 신준은 속도전청년돌격대 미장소대 소대장인 홍수양에게 첫눈에 반한다. 하지만 자신과 달리 당에 충성하는 수양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의 고향인 대홍단을 무시하는 발언까지 한다. 이 일로 두 사람은 멀어지지만 신준이 수개월 뒤 대홍단에 스스로 '탄원'해 오면서 재회한다. 탄원은 북한에서 험지에 스스로 자원하는 일을 의미하는데, 성장한 그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북한식 '극적 장치'인 것 같다.

신준은 이후 수양의 충고로 뜨락또르(트렉터)를 운전할 수 있는 대형 연료를 개발하고 당국으로부터 표창을 받는다. 수양도 변화된 신준의 모습에 결국 마음을 열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다만 남한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두 사람이 애정을 표현하거나 스킨십을 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그저 "전 세대들이 우리에게 남긴 재부를 생각하며 오늘의 하루하루를 끝없이 헌신할 것이요"라고 다짐하는 신준의 대사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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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영화제 상영작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서울시 제공)© News1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집권 이후 드라마나 영화, 소설 속 남녀 간 애정 표현과 행위는 이전보다는 늘었지만 이야기의 초점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판 로맨틱 코미디로 불리며 화제를 모은 2012년 북한·벨기에·영국의 합작 영화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에도 남녀 간 감정은 '동지애'에 가까워 보인다.

영화는 평양교예단의 공중 곡예사가 되길 꿈꾸는 탄광 인부 김영미와 유명 공중 곡예사 박장필의 이야기다. 장필은 처음엔 영미를 탐탁지 않아 했지만 그의 열정과 재능을 알아차린 후 적극 돕는다. 공중 4회전을 연거푸 실패하는 영미에게 "이 손을 공중에서 잡으면 좋겠는데 그게 쉽지 않구먼"과 같은 로맨틱(?)한 대사를 하긴 하지만 '함께 성공하자는 의미'가 더 커 보인다. 영화는 영미와 장필이 결국 세계 선수로 활약하게 되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사랑보다는 '성장'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북한에서 남한 문화는 '불온'한 것…강화되는 단속

이처럼 개인의 연애 감정을 잘 다루지 않는 북한에서는 남녀 간 애정 전선을 가감 없이 담아내는 남한 드라마와 영화를 퇴폐적이며 불온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특히 김정은 총비서 집권 이후 북한 내부에서 '세대교체'가 본격화되면서 외부 문화 유입에 대한 경계는 더욱 심해졌다. 이 세대는 당과 수령의 통제를 당연시했던 이전 세대와는 달리 장마당을 통해 외부 문화를 겪었기에 사상 단속이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 당국은 겉으로는 당에 충성하는 척하고 속으로는 외부 세계를 동경하는 청년들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 분위기다.

국가정보원은 최근 북한 당국이 청년을 대상으로 '남친'(남자친구), '쪽팔린다'(창피하다), 남편을 '오빠'로 부르는 행위 등 남한식 말투와 호칭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고 지난 8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점차 유입된 남한과 서구 문화는 2000년대 초반부터 더욱 쉽게 접근 가능해졌다. 남한의 드라마를 보고 탈북을 결심했다는 청년이 있을 정도로 문화가 가지는 힘은 적지 않다. 이를 북한 당국도 알고 있을 것이다.

김 총비서도 이런 위기감을 느낀 듯 공식 석상에서 자주 '청년 단속'을 외치고 있다. 그는 지난 4월 당 세포비서대회에서 청년들의 사상 통제를 가장 중요한 일로 언급하고 옷차림과 머리 단장, 언행들을 늘 통제할 것을 지시했다. 또 지난해 12월 남측 영상물 유포자를 사형에 처하고 시청자는 최대 징역 15년에 처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해 남한 문화 소탕에 나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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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부인 리설주 여사가 평양대극장에서 삼지연 관현악단의 환영공연에 참석하는 문재인 대통령 내외를 기다리고 있다. 2018.9.18/뉴스1 © News1 평양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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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84년생으로 알려진 김정은 총비서 자체가 북한의 세대교체를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점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국제사회도 한때 '젊은 지도자'인 김 총비서의 집권에 따른 북한의 변화를 기대하기도 했다. 실제로 김 총비서는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등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칠 당시 아내인 리설주와 동행하며 정상국가 이미지를 표방했다. 부인을 공식 석상에 잘 대동하지 않았던 선대와 차별된 행보다. 리설주는 북한을 방문한 남한 특사단 앞에서 김 총비서를 '남편'이라고 호칭하면서 스스럼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북한 사회는 쉽게 변하지 않았다. 스위스에서 유학을 하며 서구 사회 자본주의를 접한 김정은 총비서는 문화의 힘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환승 이별?…북한도 이별은 있다 이혼이 어려울뿐

'환승연애'에는 헤어진 연인과의 추억이 담긴 장소에 새로운 사람과 다시 가보는 장면도 등장한다. 영화나 드라마의 주요 소재가 됐던 '이별'이 이제 리얼리티 프로그램까지 진출(?)한 것. 필연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연애와 이별을 가감 없이 다룬 연출은 남한에서도 새로운 편에 속한다.

북한에서도 연애가 있듯이 이별도 있다. 결혼도 하고 이혼도 한다. 다만 남한처럼 협의이혼 제도는 없고, 반드시 재판소의 판결을 받아야 한다. 북한의 대표작가 백남룡의 소설 '벗'은 북한의 결혼과 이혼 제도를 잘 보여준다.

예술단 소속 가수 채순희는 선반기계공인 남편 리석춘과 이혼을 원했지만 판사 정진우는 끝까지 만류한다. 부부의 가정과 일터까지 직접 찾아가며 이들의 결정이 틀렸음을 증명하려 한다. "가정이 국가의 개별적 생활 단위인데 국가의 단위가 파괴되는 일을 간단히 볼 수 없다"는 게 판사의 말이다. 소설은 열린 결말로 끝나지만 아마 이들은 재결합했을 것이다.

북한에서 이혼은 많은 절차가 소요되고 돈도 적지 않게 들기 때문에 쉽지 않다. 그래서 오히려 혼전 동거에 관대하다고 한다. 결혼 후 이혼을 하기보다는 동거를 하면서 부부처럼 사는 것이다. '세대주' 남성이 있어야 식량과 주택을 받을 수 있었던 배급제가 무용지물이 된 영향도 있다. 여성들도 경제적으로 독립해 누군가에게 의존할 필요성이 없어지면서 결혼을 하느니 혼자 살거나 사실혼 관계를 택한다. 중매보다는 연애, 결혼보다는 동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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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지난 4월 공개한 평양 거리의 인민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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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서 '환승'은 버스나 지하철을 갈아탄다는 의미로 "연인과 헤어지자마자 다른 연인을 만나는 행위"를 빗대 쓰이기도 한다. 한 때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연애 전 '썸' 단계가 트렌드로 나타나더니 이제 이별 후 '환승'까지 연애의 새로운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환승연애'의 한 출연자는 "우리 프로그램에서 환승의 의미는 끝까지 함께 갈 수도 있지만 중간에 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며 소감을 밝혔다. 한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랑이란 감정은 앞으로도 많은 모습으로 변주돼 우리의 이목을 끌 것이다. 이미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북한 청년들의 반응도 궁금해진다.
sseo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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