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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일, 군함도 역사왜곡은 침략전쟁 인정 않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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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기획

인터뷰/신카이 도모히로 강제연행 재판 지원모임 사무국장

유네스코 세계유산위 결정문 채택

“군함도 강제노역 피해 외면 유감”

일 강제동원 피해 규명 활동 시민들

“피해 목소리 들을 때 역사 숨쉬어”


한겨레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일본 메이지산업혁명유산 23곳 가운데 한곳인 군함도. 2차대전 당시 일제는 한국인, 중국인, 연합군 포로를 군함도와 다카시마, 나가사키 조선소 등에 몰아넣고 비인간적 노동을 시켰다. 세계유산위원회는 강제노동을 포함한 ‘전체 진실’을 알리라고 권고했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6년째 모른 척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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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등의 강제노역 피해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희생자 추모 조치 역시 미흡했다는 데 강한 유감을 표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가 22일 일본 나가사키현 군함도(정식 이름 하시마·端島) 등에서의 한국인, 중국인, 연합군 포로 강제동원 진실을 감춘 일본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는 결정문을 채택했다. 통상 정치적 판단을 하지 않는 유네스코가 ‘강한 유감’이란 표현까지 동원해 날을 세운 것은 일본 정부의 태도가 도를 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도쿄 신주쿠 총무성 제2청사 별관 건물에 개관한 산업유산정보센터는 과거 군함도 주민 입을 빌려 “군함도에서 (조선인이) 괴롭힘당했다는 얘기는 전혀 듣지 못했다”, “주위 사람들이 친절했다”는 식의 가짜뉴스 홍보를 하고 있다. 애초 일본 정부는 2015년 7월 열린 세계유산위원회 제39차 회의에서 군함도 포함 메이지산업혁명유산 23곳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는 조건으로, 이 센터를 통해 군함도 등에서 강제동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포함한 ‘전체 역사’를 알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후 5년이나 뜸을 들인 끝에 문을 연 센터는 오히려 강제동원 역사 왜곡의 전초기지 구실을 하고 있다. 위원회는 세계유산 등재 때 해당국이 약속한 이행 조건을 2년마다 점검하는데, 지난달 조사단을 파견한 뒤 일본 정부가 ‘전체 역사’를 알리라는 권고를 여태껏 이행하지 않았다는 보고서를 지난 12일 누리집에 공개했다.

일본 정부는 왜 군함도의 진실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2차대전 시기 강제동원 피해자를 돕는 일본 시민단체 ‘나가사키 중국인 강제연행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의 신카이 도모히로 사무국장은 “일본 정부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근본적 이유는 과거 불법적 식민지배와 아시아 국가 침략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는 20, 22일 <한겨레>와 한 비대면 화상과 서면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는 ‘징용의 특성상 대상자가 본인 의사에 반해 끌려왔을 수 있지만, 전시 징용은 합법적 수단이며 (법적) 문제는 없다’는 논리를 편다. 이런 배경에는 한반도 병합 자체가 합법이었으며, 이후 한국인을 상대로 한 일본의 모든 행위는 ‘법에 근거한’ 합법 행위라는 인식을 깔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카이 사무국장은 일본 내 평화운동가이자,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2차대전 강제동원 피해자를 지원해왔다. 민족문제연구소 등 한국 평화단체들과도 긴밀한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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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군함도 한 건물의 잔해.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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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배 구현한 두 얼굴의 군함도


―군함도는 어떤 섬이었나?

“일본의 근대화에서 군함도는 여러 지위를 갖는다. 우선 정부 입장에선 품질 좋은 석탄 공급원으로 단기간에 일본의 근대화, 산업화를 이끌어준 원동력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일본의 제철업이 성장해 산업화, 군사화를 추진할 수 있었던 게 사실이다. 반면, 군함도는 높은 이윤을 얻기 위해 비인간적 노동을 강요한 섬이기도 했다. 특히 역사적으로 2차대전 당시 한반도 사람들을 끌고 와 가혹한 노동을 시켰고, 1944년에는 중국인을 납치해 강제노동을 시켰다. 대일본제국의 침략전쟁과 식민지배를 구현한 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본 정부가 군함도에 집착하는 이유는 뭔가?

“애초 일본 정부는 군함도의 세계유산 추진이 국제적으로 큰 논란이 되지 않을 거라는 느슨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군함도가 일본 산업화의 상징 같은 재벌 기업인 미쓰비시 소유의 섬이자, 국가에 막대한 석탄원료를 공급했던 곳이어서 군함도를 다카시마와 함께 일본의 산업혁명에 공헌한 지역으로 묶어 설명하려 했을 거다. 또 일본 함선의 모양을 닮은 군함도가 비주얼적으로도 매력적인 부분이 있다. 바다 위에 일본 최초의 철근 콘크리트 아파트와 4~10층짜리 고층건물 10여동이 세워진 군함도가 압도적 존재감을 과시하는 만큼, 관광자원이라는 점에서 군함도를 반드시 넣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군함도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갱구와 호안 일부뿐이다.”

―군함도에 한국인 피해자가 유독 많았다.

“역설적으로, 일본 정부가 세계문화유산의 강제동원 지역 논란 때마다 주로 군함도로 관심을 돌리는 이유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일본 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미국이나 영국 등이 강제동원 문제에 클레임을 제기하는 것이다. 마침 군함도에서는 연합군 포로가 일하지 않았다. 일본 입장에서는 세계문화유산 문제에서 연합군 포로가 초점화되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군함도는 (주로 한국인 강제노동이 이뤄졌기 때문에) ‘일본과 한국의 대립’이란 구도로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국제사회를 상대로 정부 차원의 약속마저 지키지 않는 태도는 좀처럼 납득하기 어렵다.

“사실 한반도에서 강제동원은 1939년부터 시작됐다. 일본 정부는 이를 ‘모집’이나 ‘알선’에 의한 것으로, 노동자 본인의 자유로 일본에 넘어온 것이지 강제동원은 아니라는 주장을 고수해왔다. 여기에 더해 1944년 9월 이후는 일본인도 영장이 나오면 징병·징용을 따랐던 시기인데, 이때 일본 정부가 한국인을 ‘일본인’으로 취급했기 때문에 본인 의사에 반해서 이뤄졌더라도 불법은 아니라는 식이다. 물론 이것은 완전한 오류다.”

군함도 강제징용 피해자 고 최장섭씨는 “강제징용 당시 느닷없이 개 패듯 패가지고 강제로 (나를) 들고 나갔다”며 “(군함도에서) 도주하다 붙잡히면 고무튜브로 피부가 벗겨질 정도로 맞고 고문당했다”고 기억했다. 징용자들이 이곳을 ‘지옥섬’으로 불렀던 이유다.

―산업유산정보센터에서 강제동원의 진실은 어떻게 은폐됐나?

“한국인들이 노동자였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강제노동이나 차별은 없었다는 식으로 왜곡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시 내용 가운데 부모님이 한국 사람으로 어린 시절 현지에 살았던 스즈키 후미오씨는 ‘조선 사람이라서 괴롭힘당한 걸 본 적이 없다, 반대로 귀여움을 받았다’는 식으로 증언한다. 스즈키씨의 부친은 강제동원기 훨씬 이전에 온 일반 노동자로, 강제동원의 실상을 알 수 없었고 스즈키씨가 군함도를 떠난 건 8~9살 때였던 1942년이다. 아울러 군함도는 아니지만, 다른 메이지산업혁명유산에서 중국인, 연합군 포로(네덜란드·영국·오스트레일리아 등) 강제동원 피해자가 있었다는 사실도 기억했으면 한다. 군함도와 다카시마에는 중국인이, 미쓰비시 나가사키 조선소에는 연합군 포로가 한국인과 함께 일했다. 산업유산정보센터는 중국인과 연합군 포로에 대해 완전히 침묵한다.”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까?

“강제동원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던 고 서정우씨 등의 증언이 서적으로 남았다. (이런 자료들을 통해) 군함도 탄광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인원수나 이름을 추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군함도에 1944년에 연행된 중국인은 204명인데, 이들 전원의 이름과 출신지를 알 수 있다. 전쟁이 끝난 뒤 작성된 미쓰비시의 ‘사업장 보고서’를 보면, 사망자나 공상병자의 기록이 있다. 화장·매장 인허증 등으로 이름과 출신지, 사망 상황 등을 알 수도 있다. 머나먼 고향을 떠나 이국땅에서 억울하게 죽은 희생자를 기억에 남기기 위한 전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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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민단체 ‘나가사키 중국인 강제연행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의 신카이 도모히로 사무국장은 22일 <한겨레>와 한 비대면 화상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가 군함도 강제동원 역사를 부정하는 것은 불법적 식민지배와 아시아 국가 침략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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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는 역사 위해 필요한 건 ‘진실’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와 국제사회의 거듭되는 압력에도 불구하고,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적반하장식 태도를 바꿀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2015년 7월 세계유산위원회 산업혁명유산 심의 때 “1940년대 한국인 등이 ‘자기 의사에 반해’(against their will) 동원되어 ‘강제로 노역’(forced to work)했던 일이 있었다”고 인정한 것도, 이후 불가피한 합법 행위란 식으로 둘러대고 있다.

―이번 세계유산위원회 결정문 채택은 어떤 의미가 있나?

“강제노동을 이해할 수 있는 ‘전체 역사’를 전시하지 않은 것, 희생자를 기억할 전시가 없다는 것을 지적했다. 유네스코 정신에 걸맞은 지극히 공정하고 온당한 것이다. 세계유산위가 당연히 내놨어야 하는 것이고, 이 권고를 지지한다.”

―어떤 방향으로 매듭지어야 할까?

“일본 정부의 역사 부정·왜곡 움직임을 정말 우려하고 있다. 2차대전 패전 후 70여년 동안 전쟁과 침략 행위, 식민지배 등에 관해 올바른 역사인식을 확립하지 못한 결과다. 교육을 통해 역사적 진실을 알리고, 과거로부터 배우는 자세를 확립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부과학성을 포함한 일본 정부가 근본적으로 역사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일본 정부의 적반하장식 태도에 대해 각국 정부뿐 아니라 깨어 있는 시민단체들도 활동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국내에선 민족문제연구소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등이 지난 16일부터 약 넉달간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historymuseum.or.kr)에서 ‘피해자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강제동원의 역사를 전시하라’ 기획전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역사왜곡 문제에 대한 한·일 시민연대 온라인 공동행동도 본격화하는 등 더 강하게 어깨를 겯고 있다. 신카이 사무국장은 “전쟁 희생자, 피해자의 ‘소리 없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역사는 피가 통하고, 살아 숨쉬는 것이 된다”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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