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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경쟁이 아니라 자유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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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김종철의 여기

‘자유 영혼’의 피아니스트 임현정씨

“음악은 부귀영화 도구 아니라 자유 영혼의 소리

주요 작곡가 대표곡은 모두 프로그램 만들고파”

콩쿠르 참가 대신 음악성 키우는 고독한 길 걸어

‘자유’ 찾으려 기존 틀과 싸우고 전통·관행도 탈피


한겨레

“예술은 영혼의 표현이고, 음악이야말로 자유의 언어죠.”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지난 13일 <한겨레>와 인터뷰 중인 임현정씨. 안산/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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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에 도달한 삶이 이럴까. 그에게선 마음의 경계나 벽을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답변에 주저함이 없었으며, 웃을 때는 폭소를 터뜨렸다. 행동에도 가식이나 거리낌이 없었다. 원피스에 카디건을 걸친 편안한 옷차림에 선머슴처럼 스튜디오 안팎을 맨발로 오갔다. 클래식 음악계의 세계적 스타가 아니라 이웃집 누나 같았다. 그러나 배려심과 겸허는 몸에 밴 듯 자연스러웠다. 질문 도중에 답을 할 때는 “중도에 말을 끊어 죄송하다”고 사과했으며, 상대방 물컵이 비면 재빨리 물병을 들어 채웠다. 내면의 자유를 추구하는 피아니스트 임현정(35·이하 호칭 생략)씨를 지난 13일 경기도 안산에 있는 ‘다나기획사’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지난달 말 경기도 고양 아람누리극장에서 오케스트라 공연을 끝으로 올 상반기 일정을 마무리했죠?

“네. 친한 언니와 인터스텔라 챔버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창단 공연을 열었어요. 제가 직접 지휘하면서 피아노 연주까지 했는데 아주 힘들었지만, 재미있었어요.”

―하반기 일정은 어떻게 돼요?

“코로나 상황이 허락하는 한 인터스텔라 공연을 계속하려고 해요. 독주회도 계획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 2권 48곡 모두를 연주할 거예요.”

임현정은 연주회마다 새 프로그램을 내놓는 것으로 유명하다. 올 상반기에만도 쇼팽(‘스케르초 1~4번’)과 슈베르트(‘즉흥곡’)뿐 아니라 피아노 곡 중에서 가장 난해한 것으로 유명한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을 무대에 올렸다.

―레퍼토리를 새로 만든다는 것은 곡을 완벽하게 마스터한다는 것일 텐데요, 한두개도 아니고 올 상반기에만 모두 5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어떻게 다 했어요?

“하하. 뭐 그러니까 최대한 최선을 다해야죠. 사실 리스트 초절기교는 진짜 하나의 챌린지였어요. 저의 첫째 기준은 새벽 3시에 누가 나를 갑자기 흔들어 깨워도 눈 감고 바로 연주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두번째 기준은 그 작곡가나 곡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 등 그 곡을 둘러싼 모든 요소를 탐구하는 것이죠. 음악에는 작곡가의 영혼이 녹아 있거든요. 프로그램을 완성할 때 저한테는 이 두가지가 굉장히 중요해요.”

―그래서 베토벤에 대한 책(<당신에게 베토벤을 선물합니다>)까지 쓸 수 있었군요.

“그동안에는 베토벤 스토커였는데 이제는 바흐 스토커가 됐어요. ‘당신에게 바흐를 선물합니다’가 곧 나올 거예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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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임현정씨가 13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안산/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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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벌의 비행’보다 대단했던 것


임현정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은 2012년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담은 음반을 유서 깊은 음반회사인 ‘이엠아이’(EMI)에서 내면서부터였다. 이 음반은 당시 빌보드 차트와 아이튠스 차트의 클래식 분야 1위를 차지했다. 대부분의 신인 음악가들이 국제 콩쿠르나 유명 음악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등장하는 것과는 데뷔 경로가 달랐다. 더구나 그는 연주만 한 게 아니라 앨범 프로듀서까지 겸했으며, 음반에 실린 곡 해설도 직접 썼다. 앨범을 번호 순서가 아니라 8개 주제별로 분류한 것도 그였다. 신예 아티스트 임현정의 독창적인 색깔을 이엠아이는 오롯이 존중했다.

―무명작가가 세계적 명문 출판사에서 장편소설을 낸 거나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가능했어요?

“2009년쯤부터 시작한 유튜브 활동으로 제 이름이 좀 알려졌어요. 그때 유튜브는 개나 고양이 등 펫 영상이 대부분이었는데, 클래식 연주 실황을 올린 것은 제가 최초이다시피 했을 거예요. 2011년 이엠아이의 부사장인 앤드루 코널이 휴가차 리스본에 왔다가 마침 리스본 페스티벌의 제 연주회를 찾아온 게 계기였죠. 되게 웃긴 게 그때 원래 예정돼 있던 연주자가 갑자기 펑크를 내는 바람에 제가 무대에 섰어요. 이 이야기는 처음 합니다. 하하.”

―대타로 나서 홈런을 날렸군요.

“네. 신예였으니까 어디든 자리가 생기면 ‘나는 간다’였죠. 하하. 페스티벌 2~3주 전에 연락을 받았지만, 페스티벌 주제였던 라벨과 스크랴빈은 제가 좋아하는 곡들이어서 어려움이 없었어요. 근데 연주가 끝나고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어요. 제가 방금 했던 라벨과 스크랴빈 프로그램 그대로 데뷔 앨범을 내자는 연락이 이엠아이에서 왔다고, 제 매니저가 택시를 같이 타고 가면서 얘기하는 거예요. 그때 장면이 아직도 기억나요. 매니저가 저보다 더 좋아했어요.

그런데 저는 제 이름이 세상에 처음 알려지는데,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전에 이미 파리에서 8일 동안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를 완주하는 등 베토벤에 완전히 빠져 있었거든요. 연주만 했던 게 아니라 베토벤에 대한 에세이도 다 적어놓았죠. 그렇게 준비된 걸 놔두고 2~3주 만에 연습한 것으로 앨범을 내는 것은, 솔직히 아니잖아요.

그래서 매니저한테 베토벤 소나타 전곡으로 하자고 역제안을 하라고 했죠. 그랬더니 매니저가 ‘그렇게는 안 될 거다. 이렇게 귀중한 제안이 왔는데 왜 안 받느냐’며 저한테 되게 화를 냈어요. 하하. 저는 거절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제안해달라고 설득했죠. 대신 베토벤 소나타 연주 테이프와 베토벤에 대한 에세이 등을 다 보내주라고 했어요. 며칠 뒤 이엠아이에서 이메일이 왔는데 제 제안을 다 받아줬어요. 참 운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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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정씨가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는 모습. 임현정 페북 갈무리, 사진 박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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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정의 연주 영상 가운데 유명한 것은 ‘왕벌의 비행’(림스키코르사코프)이다.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건반을 두드리는 이 영상은 현재까지 120여만명이 봤다. 2009년 벨기에 겐트 페스티벌 때 친 앙코르 연주곡이었다.

―‘왕벌의 비행’ 영상 때문에 일약 스타가 됐다고 많은 사람이 생각하고 있는데요.

“한국에서는 ‘왕벌의 비행’으로 저를 많이 알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만, 그건 아니에요. 음악성 있는 곡이 아니고, 저도 재미 삼아 쳤기에 외국에서는 아무도 그것을 언급 안 해요. 대신 2009년 3월 겐트 페스티벌과 몇달 뒤 스위스 바젤 페스티벌에서 했던 프로그램이 진짜죠. 그때 1부에서는 라흐마니노프 에튀드 전곡(18곡)을 연주하고, 2부에서는 쇼팽 에튀드 전곡(24곡)을 연주했거든요. 그거야말로 아마 전무후무할 겁니다. 에튀드는 기교적으로 어려운데, 특히 쇼팽 에튀드는 가장 어렵거든요. 그래서 쇼팽 에튀드 전곡을 한 리사이틀에서 연주하는 분들도 굉장히 드물어요. 저는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실력으로 음악계에 도전장을 내밀자는 생각에서 두 프로그램을 한 연주회에 올렸죠. 그게 출발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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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임현정씨가 13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자신의 스튜디오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 그는 코로나를 겪고 있는 독자들과 국민들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이날 인터뷰를 마친 뒤 라흐마니노프가 작곡한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중 18번째 변주곡’을 연주했다. 안산/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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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안식처는 샹젤리제 서점


그 도전의 길은 그의 선택이었다. 임현정은 파리 국립음악원을 졸업한 직후인 2007년, 규모가 작은 ‘플람 콩쿠르’에 나가서 대상을 받고는 콩쿠르에는 발을 끊었다. 경쟁은 비예술적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해에 벨기에의 왕립 ‘퀸 엘리자베스 뮤직 채플’의 신입 피아니스트로 뽑혔지만, 두달 만에 그곳도 박차고 나왔다. 여러모로 안락한 생활이었지만, 그에게는 “음악적으로 갑갑해서, 마치 금으로 만든 철창에 갇힌 새 같았다.”

“그때가 제가 스무살 때였는데 저 자신한테 10년의 시간을 줬어요. 음악을 어떤 부귀영화의 도구로 쓰는 게 아니라,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정말 진정한 음악가로서 나를 성장시키자고 결심했어요. 그러려면 클래식 음악의 가장 기본적이고 기둥이 되는, 모든 레퍼토리를 내 머리와 심장과 마음, 영혼에 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첫출발이 쇼팽 에튀드 전곡과 라흐마니노프 에튀드 전곡이고, 그다음이 베토벤 소나타 전곡이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갑자기 첫 음반을 베토벤 소나타로 내면서 유명해진 거예요. 하하.”

1986년 경기도 안양에서 3남1녀의 늦둥이로 태어난 임현정은 3살 때 피아노를 시작했다. 피아노를 치면 좌뇌와 우뇌가 발달한다는 친척의 말에 어머니가 동네 음악학원에 등록해주었다. 학원에서 자로 손바닥을 맞고 울고 오는 어린 딸에게 “더 커서 해도 되니까 힘들면 관두자”고 어머니가 권했지만, 그는 “선생님이 나 잘돼라고 그러는 거야”라면서 포기하지 않았다.(<침묵의 소리> 가운데) 중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임현정은 파리 국립음악원을 목표로 혼자 프랑스로 떠났다. 13살 때였다. 콩피에뉴의 한 사립중학교와 음악원을 한 학기 만에 마치고, 보통 4년 이상 걸리는 루앙 음악원도 2년 만에 마쳤다. 2003년 파리 국립음악원에 최연소로 입학해서 4년 과정의 피아노과를 3년 만에 수석으로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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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씨는 루앙 음악원의 피아노 지도교사와 결별한 뒤 1년간 혼자 공부해서 파리 국립음악원에 합격했다. 당시 1면 머리기사로 임씨의 합격 소식을 전한 <파리 노르망디> 신문. 다나기획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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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의 길로 승승장구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기존 틀을 부수면서 헤쳐나간 험난한 길이었다. 파리 음악원 입시 준비를 앞두고 그는 자신을 지도해온 루앙 음악원의 피아노 선생과 과감하게 결별하는 결단을 했다. 그의 지도를 벗어나기 위해 학교에 휴학을 신청하자, 격노한 피아노 선생은 임현정의 퇴학 및 국외 추방을 학교에 요구했다. 학장의 보호로 퇴학 조처는 면했지만, 그는 학교에서 왕따가 됐다. 선생의 보호 대신 자유의 길을 택해 홀로 공부한 그는 이듬해 루앙 음악원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파리 음악원에 합격했다.

―만 15살에 지도교사에게 반기를 들다니, 대단해요!

“파리 음악원 입시 준비를 그 선생님이랑 했다가는 1년이 지옥이 될 것 같은 거예요. 음악적인 게 저랑 너무 안 맞았거든요. 제가 13살 때 리스트 소나타를 너무 연주하고 싶었는데 선생님은 16살은 되어야 이걸 연주할 수 있다면서 못 하게 했어요. 저는 ‘어떻게 검열을 하지? 리스트 소나타가 19금이 아닌데, 왜 안 된다고 하지’라고 생각해서 혼자서 몰래 연습을 했어요. 연습을 다 한 뒤에 선생님을 찾아가 ‘저 이거 다 외웠습니다’ 하고 말씀드리고 리스트를 연주했어요. 굉장히 기뻐하실 줄 알았는데 되게 싫어하시는 거예요. 자기 말을 거역했다는 게 이유였어요. 그래서 음악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게 너무 답답하더라고요. 예술은 영혼의 표현이고, 음악이야말로 자유의 언어 그 자체인데 검열을 당한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진정한 내가 음악을 연주해야 되는데, 이 선생님과 함께 있다가는 내 손을 통해 선생님이 연주하는 것밖에 안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휴학 신청을 했죠.”

―그 뒤 다른 선생님들에게서도 외면당했다는데, 어떻게 이겨냈어요?

“이렇게 얘기하면 좀 그럴 수도 있는데, 그때 ‘내가 생각하는 음악이 맞다. 선생님이 나한테 하라는 것이 틀렸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어요. 음악적으로도 내가 자유롭게 치고 싶은 곡을 치니까 너무 좋았고요. 당시 저에게 가장 큰 스승은 녹음기였어요. 내가 나를 녹음하고 듣는 것만큼 화들짝 놀랄 일이 없었거든요. 이 세상에서 아무리 사람들이 나를 욕하고 비난하더라도 제 안에 있는 심판자보다 더 가혹할 수는 없잖아요.”

―파리 음악원에서는 어땠어요?

“거기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가고자 하는 길이 콩쿠르인데, 저는 달라서 좀 고독했죠. 게다가 지리적으로도 너무 고립돼 있었어요. 당시 제 희망 중 하나가 24시간 누구한테도 관여받지 않고 피아노를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을 갖는 거여서, 파리 외곽의 한 차고를 빌려 살았거든요. 생활환경은 열악했지만 피아노를 맘껏 칠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피아노 치다가 힘들면 샹젤리제 거리의 서점에 자주 갔어요. 거기 가면 밤 12시까지 문 여는 곳이 있어서 책을 엄청 읽었죠. 철학책과 예술책을 주로 읽으면서 제 생각을 익혔던 3년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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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정씨가 2017년 스위스의 작은 도시 라쇼드퐁에서 초·중·고생들에게 강의를 마친 뒤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는 국내에서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특강과 마스터 클래스 등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다나기획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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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정직한 음악인데 혁명적이래요, 하하”


임현정은 독창적으로 곡 해석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연주 속도도 다른 연주자들보다 대부분 빠르다. ‘베토벤의 9번 교향곡’(합창)의 느린 3악장의 경우 대개는 19분 동안 연주하는데, 그는 베토벤이 지정한 속도대로 11분에 마친다. “표현이 먼저다. 진실되게 열광하고 곡에 빠져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면 ‘열광’이 속도가 된다. 음악은 템포 속에 갇혀 있지 않다. 오히려 반대로 음악에서 흘러나오는 ‘표현’이 템포를 창조하는 것이다”(<당신에게 베토벤을 선물합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연주 스타일도 전통과 관행을 과감히 깨는 것 같아요.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한 건 아니에요. 저는 작곡가가 의도한 원천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해요. 예를 들면 베토벤이 원했던 그 템포를 그대로 받아들여서 연주한 것뿐이거든요. 그것이 베토벤 이후의 음악인들이 만들어놓은 전통이나 유행과 다른 것이고요. 제가 생각하는 가장 솔직하고 정직한 음악을 한 것뿐인데, 남들과 다르다 보니까 갑자기 혁명적인 음악가가 된 거예요. 하하.”

―동료들한테 ‘혼자 잘났다’고 손가락질받지는 않나요?

“그런 덴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하하.”

―음악에 대해 확고한 자신감이 있군요.

“음악인으로서 음악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죠. 물론 제 속에서는 늘 확신과 불확신이 공존해요. 이게 뿌리이고 맞는다는 확신이 있지만, 공부하는 과정에서는 ‘이게 맞나’ 하고 끝없이 의심하죠.”

임현정은 3년 전 한 국제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장의 제자가 준비가 덜 됐음에도 음악성이 뛰어난 다른 참가자들을 제치고 결선에 진출하는 것을 목도한 뒤 심사위원직을 중도에 사퇴했다. 그러고는 불공정한 행위를 고발하는 내용을 담은 사퇴 이유서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탈락된 그 아이들이 좌절하지 말라고 페이스북에 올린 건데 후폭풍이 정말 컸어요. 저도 너무 놀랐죠. 이제 그 어떤 콩쿠르에서도 절 심사위원으로 불러주지 않겠죠. 하하.”

―그런 각오 하고 폭탄을 던진 거 아니에요?

“아니요, 그때 기사만 안 났어도 또 초대받을 수 있었는데 말이죠. 하하. 아, 너무 웃겨.”

‘HJ Lim’(국제적으로 쓰이는 임현정의 이름)은 스위스 레만 호숫가에 있는 뇌샤텔의 집을 올해 초 정리하고, 경기도 안산에 거처를 마련했다.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한국을 베이스로 국제 연주 활동을 할 계획이다. “한국에 있으면 마음이 편한 것도 있지만, 어린 후배들에게 제가 가진 모든 걸 다 뿌려주고 싶어요.” ‘유쾌한 파괴자’이자 ‘고독한 창조자’가 이 땅에 머물면서 펼쳐나갈 음악 세계와 활동을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녹취 조아라

김종철

1989년 기자로 첫발을 내디딘 뒤 정치부, 사회부 등에서 일하다 지금은 토요판 선임기자로 현장을 뛰고 있다. ‘지금 여기’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여운이 오래가는 기록’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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