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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아파트 60년]⑦ 유일한 남산공원 속 아파트 ‘남산맨션’… 건축물대장은 호텔인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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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아파트 60년]

1958년. 한국산(産) 첫 아파트는 지금으로부터 약 60년 전 세워졌다. 이때부터 아파트는 전후(戰後) 주택난 해소를 위해 대규모로 지어진다. 고급 맨션이 유행하고 ‘건설 붐’으로 여의도·반포·잠실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지어지며 아파트는 우리나라 대표 주거공간으로 자리 잡는다. 아파트에는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 기술까지 담긴 셈이다. [편집자주]

‘서울의 허파’ 남산공원 속에는 1972년 준공된 아파트단지가 하나 있다. 남산공원 내부에 존재하는 유일한 아파트인 남산맨션이다. 현행법상 남산공원에 아파트 준공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유일할 ‘남산공원 속 아파트’다. 이 아파트는 전(前) 한국은행 총재와 언론인, 전 공보부(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3명이 뜻을 모아 설립한 기업이 지은 단지다. 호텔 같은 외관과 설계로 국내 가장 독특한 아파트 단지로 꼽힌다.



◇한은 총재·언론인·문체부 장관이 설립한 관광회사, 아파트 짓다

1967년 3월, 재계가 화들짝 놀랄 만한 한 기업이 출범한다. 기업명은 코리아나관광진흥. ‘오·설·민 트리오’가 설립한 관광회사였다. 전 공보부 장관으로 당시 기독교방송국 이사장을 지내던 오재경, 세계일보 전무와 한국일보 초대 워싱턴특파원 등을 지낸 언론인 설국환,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금융인 민병도가 손을 맞잡고 설립한 기업이었다. 설국환씨가 대표를 맡고 오재경·민병도씨가 이사를 맡았다. 이들 3인조의 조합 그 자체가 뉴스였다.

조선비즈

지난 21일 찾은 서울 용산구 남산맨션. /고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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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설·민 트리오’는 청년기 도쿄 유학을 함께하며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당시 언론에선 ‘동경 유학생 트리오’로 불렀다. 설국환(1918년생)씨는 도쿄대학, 오재경(1919년생)씨는 도쿄 릿쿄대학, 민병도(1916년생)씨는 도쿄 게이오기주쿠대학을 각각 졸업했다.

트리오는 자본금 1억원으로 코리아나관광진흥을 조촐하게 출범했다. 한국의 대외 이미지를 세련되게 할 목적으로 관광회사를 설립했다고 한다. 1968년 경부고속도로 개통 직후 미국의 유명 운송기업 그레이하운드와 50대 50으로 합작회사 코리아그레이하운드를 설립(1969년)하며 본격적으로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 자본과 합작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대단히 이례적일 때여서다. 그레이하운드는 2층 버스 형태로 아래층에 화물, 위층에 승객을 태웠고, 버스 내부에 화장실을 완비한 최신식 고속버스로 시민들의 인기를 샀다.

트리오가 설립한 코리아나관광진흥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은 아파트가 바로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남산맨션이다. 트리오는 남산맨션 설립에도 외자(外資)를 유치했다. 미국의 건설사 등 4개 회사와 코리아나관광진흥이 각각 자금을 출자해 아파트 건립에 나섰다. 설국환씨가 워싱턴 특파원으로 있을 때 미국 기업들과 교류한 것이 인연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1970년 7월 28일자 조선일보는 ‘아파트도 손대는 트리오’ 기사에서 이같이 표현했다.

동경 유학생 트리오가 세운 코리아나관광진흥이 그레이하운드 고속도로 버스 운영사업에 이어 이번에는 한미합작으로 맨션아파트 건설을 시작했다.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그레이하운드버스를 재빨리 도입, 기선을 제(制)했고 맨션붐에 눈을 돌려 아파트, 그것도 합작 투자로 건설에 나서자 업계에서 빠른 기업 혼에 부러움마저 느끼고 있는 듯하다.


◇건축물대장엔 관광호텔… 아무도 모르는 미스터리

고속버스를 운영하는 관광회사가 아파트 준공에 나선 이유는 뭘까. 한국의 대외 이미지를 세련되게 한다는 목적으로 애초 최고급 호텔을 아파트먼트호텔 식으로 지으려다 아예 아파트로 사업 방향을 틀고 분양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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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찾은 서울 용산구 남산맨션. 호텔처럼 길게 돌출한 출입구가 눈에 띈다. /고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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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남산맨션과 관련한 ‘미스터리’가 발생한다. 남산맨션은 ‘①관광호텔로 인허가→②아파트로 분양하고 준공→③관광호텔로 준공승인’이라는 기이한 과정을 거쳐 준공됐다. 남산맨션의 건축물대장을 떼 보면 주용도가 아직도 ‘관광호텔’이라고 적혀 있다. 이 아파트가 서류상으로 관광호텔이었다는 점은 준공(1972년) 20여년이 지난 1990년대에야 세간에 알려졌다.

1994년 2월 17일자 조선일보는 “남산맨션아파트가 당초 관광호텔로 사업승인을 받아 건설됐으며, 그 뒤 20여년 간 아파트로 무단용도 변경, 사용돼 온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서울시의회의 한 의원이 시정 질문에서 밝힌 내용이었다. 같은날 매일경제도 이같은 사실을 보도하며, 이원종 당시 서울시장이 “무단 용도 변경된 것은 사실이지만 관련 문서의 보존기한이 지나 정확한 경위를 파악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동경 유학생 트리오는 모두 작고했고, 관련 공문서가 남지 않아 현재도 남산맨션이 아파트로 분양하곤 관광호텔로 승인받은 정확한 사유를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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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0월 3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남산 일대의 모습. 철거되기 전 남산외인아파트(남산타워 아래쪽 2개동)와 남산맨션(남산외인아파트 오른편)의 모습이 보인다. /조선라이브러리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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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서울시는 1990년 ‘남산 제모습 찾기 사업’으로 남산맨션을 철거하고 공원화한다는 계획을 세운다. 남산을 시민에게 되돌려준다는 취지였다. 비단 남산맨션이 비롯한 일은 아니었다. 남산외인아파트,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옛 중앙정보부) 등이 남산의 조망을 가리고 자연을 해친다는 이유에서였다. 1991년 수방사가 이전했고, 1994년 11월엔 남산외인아파트가 폭파공법으로 철거된다. 남산을 가리던 남산외인아파트가 굉음을 내며 일시에 무너져 내리는 장면이 방송으로 생중계됐다. 이듬해 안기부도 내곡동으로 이전한다.

그러나 남산맨션은 철거되지 않고 지금까지 존치됐다. ‘남산 제모습 찾기’의 당초 계획과 달리 철거되지 않은 건물이 많은지라 남산맨션이 이례적 사례는 아니다. 안기부 건물 일부는 서울종합방재센터, 서울시청 남산별관 등으로 존치됐다. 남산타워와 남산케이블카, 국립극장도 철거 대상으로 지목됐지만 무산됐다. 건물의 무분별한 철거를 반대하는 여론도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1996년 5월 29일자 조선일보 사설은 이렇게 적었다.

건물을 좋은 용도로 사용할 생각은 하지 않고 다시 돈을 들여 부수는 것에 대해 서울시민은 물론 전 국민이 아까워하고 있다. 국민의 세금을 그처럼 아무 실익 없는 일에 마구 낭비하는 데 대해 국민은 좀처럼 수긍하지 못하고 있다.…(중략) 보존 가치가 있는 현장을 마구 부수는, 문화의식도 역사의식도 없는 과시 행정의 폐해다. 우리의 이런 행태는 뒷날 명백한 역사파괴 행위로서 역사에 기록될까 두렵다.


◇”살기 좋지만… 주택담보대출 못 받아요”

남산맨션은 지상 1~16층, 총 138가구다. 전용면적 27~217㎡로 10평형대부터 60평형대까지 다양한 평면으로 구성돼 있다. 복도식 아파트이며 1970년 분양가는 41평 짜리가 무려 1300만원이었다. 이는 초고가아파트 가운데서도 초고가로, 요즘 기준으로 보면 아크로리버파크보다 한남더힐·나인원한남과 가까운 가격대였다. 1970년대 초고가 주택으로 분양한 이촌 한강맨션(51평 646만원)과 비교해도 분양가가 2배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부동산의 중심이 강남으로 옮겨간 뒤로 ‘최고가’ 자리는 계속 내줬다. 최근 실거래가를 찾아보려면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서 아파트가 아닌 ‘상업·업무용’ 메뉴로 들어가야 한다. 지난 6월 기준으로 전용면적 89㎡는 11억2000만원, 177㎡는 18억원에 각각 거래됐다. 가구수가 많지 않아 매물을 찾기가 힘들다. 현재도 시장에 나온 매물은 0건이다.

지난 21일 찾은 남산맨션은 호텔식 입구가 가장 눈에 띄었다. 입구에 차량을 세우고 발렛파킹을 맡긴 뒤, 돌출된 입구를 통해 비를 맞지 않고 건물로 들어서는 호텔 손님의 모습이 상상됐다. 로비도 호텔같은 모습이었는데, 50년 된 아파트답지 않은 대리석 바닥이 고풍스러운 느낌을 풍겼다.

로비 바로 오른편에는 호텔 프런트처럼 생긴 공간도 있었다. 이 공간은 현재 경비원이 머무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었고, 여러 모니터에 CCTV 화면이 띄워져 있었다. 아파트 복도에는 호텔처럼 카펫이 깔려있었고, 군데군데 붉은빛 조명이 설치돼 오래된 호텔을 찾은 듯한 느낌이었다. 복도 한쪽 벽에는 미술 작품도 층별로 걸려 있었다.

5년여 전부터 거주하고 있다는 남산맨션 주민 이모(35)씨는 “건물이 노후돼 시설이 낡은 점은 단점이지만, 남산공원 바로 옆이라 자연환경이 좋고 웬만한 신축 아파트보다 층간소음이 없다”면서 “아파트가 아닌 호텔 용도 건물이어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고성민 기자(kurtg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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