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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경성] 엽기적 유행한 ‘베ㅡ비 꼴프’, 모던 보이의 오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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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라이브러리속의 모던 경성]

용산, 충무로, 인사동...’소꿉질골프' 핀잔도

장편소설 ‘탁류’(濁流)의 채만식이 서른 한살이던 1933년 신문에 이런 글을 썼다. ’'베ㅡ비꼴프'장에 모여드는 사람들이 누구라구! 조선 서울서는 1933년식이라고 자랑하는 새로운 감으로 새로운 맵시로 지은 양복을 입고 얼골이 해맑고 어제 저녁에 ‘바ㅡ’XX에서 어찌어찌 했다든가쯤의 사교적 담화쯤은 척척 내어놓을만한 청년신사들이다.’(조선일보 1933년 10월8일 ‘베비ㅡ꼴프’)

조선일보

1927년 유럽 여행길에 영국 세인트 앤드류스 골프장에서 라운딩하는 영친왕. 2001년 발간한 '한국골프 100년'엔 군자리 골프장으로 나왔지만, 대한골프협회는 세인트 앤드류스로 바로잡았다. 경성에 하나밖에 없는 골프장을 갈 여유가 없는 모던 보이, 모던 걸은 '베이비골프'로 오락을 즐겼다. /대한골프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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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의 모던 보이들이 당시 유행하던 최신 양복을 입고 베이비 골프를 즐긴다는 것이다. 채만식에 따르면, ’베ㅡ비꼴프'는 ‘소꿉질꼴프’였다. ‘훤하니 넓은 잔디벌판에서 딱 힘있게 ‘꼴프’를 치는 흉내로 손바닥만한 마당에 열여덟개의 다 다른 코스를 만들어놓고, 조그만한 공채로 조그만한 공을 쳐서 구멍으로도 넣는 이 얄궃은 장난이 ‘소꿉질골프’, 소위 ‘베ㅡ비꼴프’다.’

채만식이 못마땅하게 여긴 ‘베이비골프’는 당구와 함께 1930년대 모던 보이, 모던 걸들이 환호하던 ‘오락의 총아’였다. 경성에는 효창원(1921년), 청량리(1924년)에 이어 1930년 군자리(지금의 능동) 30만평에 18홀 정규코스를 갖춘 조선의 첫 골프장이 들어섰다. 영친왕이 하사하고, 골프장 건설자금과 운영비까지 보탰다. 하지만 너른 잔디밭에서 골프를 칠 수 있는 이는 드물었다. 대신 ‘손바닥만한 마당’에 오밀조밀, 아기자기하게 퍼팅 위주로 만든 게 ‘베이비 골프’장이었다.



조선일보

조선일보 1933년10월8일자에 실린 채만식의 '베ㅡ비꼴프'. 채만식은 베이비골프를 '소꿉질골프'라고 비아냥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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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과 감정을 담은 근대인의 오락

‘가벼운 힘과 각도에 부드러운 감정을 담아 ‘큐’와 ‘뺏’을 움직이면 각도와 각도를 더듬어 구르는 알의 유각명랑(柔角明朗), 이는 근대인의 오락감각이다.’

매일신보(1932년12월19일자 ‘옥돌과 베비꼴푸, 오락물의 총아’)는 ‘빌리어드’와 ‘베비골프’를 근대인의 오락으로 치켜세웠다. 한걸음 나아가 ’1932년의 오락물의 총아가 됐다'고 선언했다. ‘엽기적으로 유행한다’는 말까지 나온 베이비골프는 아이들 장난 같지만 ‘리듬’을 타고 감정을 컨트롤하는 최신 스포츠였다.

‘공알은 얼음위를 미끄러지듯 가볍게 굴러 미묘한 각도를 더듬는다. 신시대인의 새 감정은 이에 신경의 ‘리듬’을 타고 흐른다. 한 게임에 20전, 근대인은 이 진귀한 오락에 감정의 명랑을 받고 가벼운 피로를 느낀다. 정신세척을 받고 경쾌한 ‘스포츠’의 단련을 얻는다.’

◇전주·안변에도 베이비골프장…야간 경기도

베이비골프장은 용산 철도국, 충무로 경성전기 본사는 물론 인사동까지 들어섰다. 동아일보 1932년6월5일자 ‘철도에 베비꼴프’ 기사는 철도국 국우회에서 정구 코트옆에 베이비골프장을 개설, 직원에겐 10전, 일반인에겐 15전을 받고 개방한다고 소개했다. 당시 얼마나 인기있든지 야간 개방까지 했다. ‘시대의 첨단적 오락 ‘베비 꼴프’는 점차 대중화하는 바, 본정(本町·지금의 충무로) 베비 꼴프장에서는 20일부터 야간영업을 개시하였다 한다.’(조선일보 1932년4월23일).

철도국과 경성전기 베이비골프장은 일본인이 운영했다. 하지만 조선인이 운영하는 인사동 베이비골프장도 인기였다. 1932년 10월엔 이곳에서 골프대회가 열린다는 기사까지 났다. 그해말 전주에도 베이비골프장이 생긴다는 보도도 나왔다.

영화감독 겸 시나리오작가였던 서광제는 여름철 원산과 가까운 안변 석왕사 부근에 자주 피서를 갔다. 조선일보 1936년9월5일자에 기고한 에세이 ‘석왕사여록’에 이렇게 썼다.

‘저녁이 되면 나와서 정구도 하고 베이비골프도 한다. 물론 나혼자서 갔겠지만 며칠 있으면 남자도 알게 되고 여자도 알게된다. 운이 좋으면 미인을 알게되어 밤길 동무하기가 퍽 좋다.’ 피서지로 유명한 석왕사 부근에도 베이비골프장이 성업중이었다.

◇김규택 소설 ‘망부석’, 이태준 소설 ‘딸 삼형제’의 베이비골프

조선일보

조선일보 1935년6월9일자에 실린 웅초 김규택 소설 '망부석'. 웅초는 직접 삽화도 그렸는데, 마당에 '베이비골프' 팻말을 세웠다.


베이비골프는 당시 문학작품에도 등장했다. 만화가로 유명한 웅초(熊超) 김규택이 조선일보에 연재한 유모어소설 ‘망부석’(1935년5월3일~7월12일·총58회)엔 베이비골프장이 나온다. 툭하면 손찌검하는 바람둥이 남편을 길들이는 아내 명례의 이야기다. 셰익스피어 작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경성 버전이라고나 할까.

명례는 허구헌날 싸돌아다니는 남편에게 푸념한다. 돈만 있으면 마당 널찍한 큰 집을 사서 ‘당신 비위에 맞도록’ 당구장, 카페, 선 술집, 냉면집, 빠를 열고, 마당엔 베비골프장을 설치하고 자기는 여급 노릇을 하겠다고. 남편을 쥐락펴락하는 여장부같다. 웅초는 이런 가게를 그린 뒤 마당에 ‘베비골프’ 표지판을 세웠다.(1935년6월9일자)

상허 이태준이 1939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소설 ‘딸 삼형제’에도 골프장 라운딩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정매에게 눈독들이는 회사 사장이 수작거는 장면이다.

‘공을 나무못 같은 곳에 오뚝히 고여놓더니 캐디가 뽑아주는 대로 제일 길어뵈고, 끝에 나무주먹이 달린 채를 받아든다. 서너번 딴 데를 후려 어깨연습을 하더니 ‘처음엔 이걸로 멀리 보내는 게 수야…저기 언덕을 넘어갈 테니 봐…’ 사장은 ‘인제 끄린이라고 더 새파란 잔디마당이 있어. 거기 가선 베비꼴프처럼 허는거야’'라고 설명한다. 정매는 사장과 코스를 걸으면서도 연인을 떠올리며 ‘이런델 같이 산보했으면!’ 한다.

‘베이비골프’는 해방 후에도 명맥을 이어갔다. 하지만 유원지 오락으로 퇴락을 거듭하면서 차츰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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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철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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