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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불볕더위에 블랙아웃 온다” 아이 둔 엄마는 호텔피신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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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집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컴퓨터 화면이랑 방 안이 새까매지는 거예요. 3시간 동안 작업한 게 1초만에 날아갔죠.”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사는 프리랜서 영상 제작자 이모(28)씨. 그는 2주 전 일어났던 정전을 떠올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지난 4일 오후 10시쯤 그가 살던 아파트 단지에 전력 공급이 갑자기 중단됐다. 마감을 앞두고 작업 중이던 이씨는 허망한 마음으로 복구만 기다렸다고 한다.

전력 공급은 40분 만에 재개됐지만, 정전 트라우마가 남았다. 이씨는 요즘 집 대신 카페에서 일한다. 그는 “코로나 때문에 불안하긴 해도 언제 또 정전이 일어날지 모르니 밖에서 일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털어놨다.

중앙일보

4일 오후 10시 6분께 서울 마포구 상암동 일대 아파트 3천762세대에 정전이 발생해 1시간여 만인 오후 11시께 복구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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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에도 정전…“카페에 자리가 없다”



최근 전국에 정전 사태가 잇따르면서 이씨처럼 불안감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당분간 ‘찜통더위’가 이어질 것으로 예고되면서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을 우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1년 중 가장 덥다는 ‘대서’인 22일 밤엔 경기 안양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도 변압기 과부하로 인한 정전이 발생했다. 열대야로 잠을 이루지 못한 주민들은 다음날 오전에도 변압기 수리가 이뤄지지 않자 속속 집을 떠났다. 더위를 피하고자 이웃 아파트 단지나 근처 상가, 카페 등으로 피신한 것이다.

이 아파트 주민 60대 박모씨는 “아침이 되자마자 주민들이 휴대전화를 충전하려고 전기 콘센트가 있는 카페로 몰려가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언제 또 정전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긴장감 속에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아이 있는 집은 난처…“호텔로 피신”



중앙일보

22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한국전력 서울지사에 설치된 전력 수급현황판에 하루 중 가장 더운 오후 2시의 전력 소비량이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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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정전이 일어나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피신할 장소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식당, 카페 등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라면 어디든 집단 감염의 온상이 될 수 있어서다.

집에 어린아이가 있는 경우 상황은 더 난처해진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김모(41)씨는 “혹여나 아이들이 감염될지 모르니 사람이 많은 곳은 피하게 된다”며 “정전이 일어난다면 부득이하게 친척 집 신세를 져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서울에서 7살, 5살 아들을 키우는 A씨는 “아이들은 활동반경이 넓어서 상가나 카페로 데려가기엔 한계가 있다”며 “집 근처 호텔로 피신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전력수요 급증에 정부도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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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볕더위가 이어진 14일 오후 대구 수성구 달구벌대로 횡단보도 앞.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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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은 올여름 내내 시민들을 위협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데다 무더위까지 겹치면서다. 이에 따라 전력 수요는 예년보다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22일 오후 6시 기준 최대전력수요가 올여름 최고치(90.0GW)를 기록했다. 올여름 들어 가장 높은 수준이다. 산업부는 다음 주 전력 공급 예비력을 4.0~7.9GW로 전망했다. 이 단계에 이르면 한국전력은 변압기의 전압을 하향 조정하고, 가정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전자기기의 플러그를 뽑아 대기전력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

정부도 원활한 전력 공급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정부는 원전 3기의 재가동 일정을 앞당기고, 전국 공공기관에 특정 시간대 냉방기 가동 자제 등을 당부했다.

박건 기자 park.k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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