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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이재명·이낙연, 적자·서자 이어 맏며느리 ‘족보 전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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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공방에 빠진 당내 경선

조선일보

이재명(왼쪽) 경기지사,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조선DB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이 누가 적자(嫡子)의 길을 걸었는지를 따지는 ‘족보 전쟁’으로 흐르고 있다. 후보들은 17년 전인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표결에서 어느 편에 섰는지를 놓고 적통(嫡統)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후보들 입에선 조선시대 신분을 가르던 “적자, 서자” 등의 호칭과 함께 “맏며느리” 단어까지 등장했다. 민주당 지도부가 23일 “미래를 이야기해 달라”고 당부할 정도로 당내 경선이 과거로 회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논쟁은 당 대선 구도가 ‘1강(이재명) 1중(이낙연)’에서 양강 구도로 재편되면서 본격화했고, ‘친문 적통’으로 불리던 김경수 경남지사의 유죄가 확정되면서 불이 붙었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구심점을 잃은 친문 표심을 흡수하기 위해 각 후보가 저마다 적통 논쟁에 참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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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에 공무원들과 유흥주점 단속 나간 이재명 - 지난 22일 밤 이재명(맨 왼쪽) 경기지사가 경기 안양에서 집합금지 행정명령을 어기고 몰래 영업을 한 유흥주점을 단속하겠다며 도청 공무원들과 함께 업소에 들어서고 있다. /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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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지사는 이낙연 전 대표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 찬성표를 던졌을 가능성을 연일 제기했다. 이 전 대표가 무기명 비밀투표로 진행된 국회 표결에서 노 전 대통령 탄핵안에 반대표를 던졌다는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이 지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왕조시대도 아닌데 적자, 서자 따지는 건 우습다”며 ‘적통 논쟁’과 거리를 두는 모습이었지만, 최근 태세가 달라졌다. 이재명계 좌장인 정성호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 “끝까지 거짓과 위선으로 나간다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며 “(이 전 대표가) 과오를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이낙연 캠프 상황본부장인 최인호 의원도 이 지사의 ‘과거'로 역공을 나섰다. 최 의원은 페이스북에 “이 지사는 (2007년 대선에서) 정동영 지지 모임 공동대표로 활동하며 노 전 대통령을 여러 차례 저격했다”며 “네거티브 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이 지사는 2007년 노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정동영 후보의 외곽 조직인 ‘정통들’(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에서 활동했었다.

이 전 대표 측에선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의 계보를 잇는 적통 경쟁에서 ‘형수 욕설’을 한 이 지사가 설 자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 전 대표 지지를 선언한 노 전 대통령 후원회장 출신 이기명씨는 이날 한 인터넷 칼럼에서 “노 대통령이 생존해 계시고 이 지사가 형님이나 형수에게 했다는 사람 같지 않은 일련의 행위를 아셨다면 따끔하게 꾸중하셨으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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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청 찾은 이낙연 “김경수 前지사의 진실 믿는다” -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3일 경남 창원시 경남도청을 찾았다. 이 전 대표는 대법원에서 댓글 조작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김경수 전 경남지사에 대해 “(김 전 지사가 주장하는) 진실을 믿는다”라고 했다. /이낙연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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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발 주자들은 적통 논쟁에 더 적극적이다. 정세균 전 총리는 이날 라디오에서 “제가 마지막까지 노 대통령 탄핵을 막기 위해 의장석을 지킨 사람”이라고 했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마지막에 탄핵 대열에 동참한 걸 여러 차례 사죄했다”고 했다. 적통 논쟁에 대해선 “민주당 맏며느리로서 아드님들이 (서로) 다 적통이라고 하면 이제 다들 정신도, 심장도 민주당인 것”이라며 “내 말씀을 잘 듣고 있구나 싶어 반갑다”고 했다.

김두관 의원은 페이스북에 “(이 전 대표가) 노무현의 적자라니, 서자도 되기 어렵다”며 “리틀 노무현 김두관이 제대로 하겠다”고 했다. 김 의원은 지난 19일엔 5·18민주묘지를 찾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참배했던 묘비를 손수건으로 닦으며 “민주열사님들 영혼을 더럽히지 않도록 지키겠다”고 했다. 여권에서도 “5·18을 특정 진영의 전유물로 보는 족보 논쟁의 연장선”이라는 말이 나왔다.

다만, 박용진 의원은 라디오에서 “구태 정치가 경선에서 나오니 정말 답답하다”고 했다. 박용진 캠프 김정현 공보단장은 페이스북에 “원래 뼈대 있는 가문은 족보를 내세우지도, 남의 족보에 시비 걸지도 않는다”며 “말을 안 해도 우러러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민주당 지도부에서도 우려 목소리가 나왔다. 송영길 대표는 당 회의에서 “대선은 과거에 대한 논쟁이 아니다”라며 후보 간 금도를 지킬 것을 당부했다.

[김동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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