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김지연의 미술소환] 무쾌감증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경향신문

재키 코놀리, anhedonia, 2017, HD Video, MP4, ⓒJacky Connolly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소파에 앉은 그가 휴대폰으로 시선을 보냈다. 야자수 앞에서 시원한 복장으로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의 싱그러운 혈색이 모니터를 채운다.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아 있던 그가 태블릿을 터치하자, 화면에서는 가부좌를 틀고 명상하는 사람이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다. 한 아이가 놀이 기구에 매달려 흔들리고, 이 장면을 지켜보던 이는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대화를 나누고, 음악을 듣고, 악기를 연주한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가 지나간다.

그들의 세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일상이 흐르는 주택가 소소한 풍경 속 그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다. 그들은 지금을 즐길 수 없는 상태에 빠졌다.

재키 코놀리가 비디오 게임용 프로그램으로 제작한 작품 ‘무쾌감증’은 일상적인 즐거움에 무감해진 이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노을도, 쇼핑도, 식사도, 사랑도, 우정도 즐거움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더한 어떤 자극에서도 그들은 쾌감을 느끼지 못한다. 감정이 빈곤해진 그들은 모니터 앞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일상의 시간을 단절시키는 모니터 너머의 세상은 ‘무쾌감증’을 가속화시킬 뿐이다.

쾌락을 상실한 이들이 사는 공간은 화려하면서 부자연스럽고, 따뜻하면서 공포스럽다. 영상 곳곳에 등장하는 정신병적 순간들을 마주하는 관객은 이들의 감정을 망가뜨린 것의 실체를 탐색하지만, 작품 안에서 그 답을 찾을 수는 없다. ‘무쾌감증’에 빠진 이들이 보여주는 빈혈, 거식증, 기억 상실증의 몸짓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뿐이다. 자기의 감정을 확인할 수도, 묘사할 수도 없는 이들에게서, 그때는 즐거웠지만 지금은 즐겁지 않은 이들에게서, 삶에 지쳐 쾌감마저 번거로운 이들에게서, 무기력한 하루가 지워진다.

김지연 전시기획자·d/p 디렉터

▶ [뉴스레터] 식생활 정보, 끼니로그에서 받아보세요!
▶ 경향신문 프리미엄 유료 콘텐츠가 한 달간 무료~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