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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편의증진법과 행정편의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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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시장님, 왜 저희는 골목골목마다 박힌 식당 문턱에서 허기를 참고 돌아서야 합니까? 왜 저희는 목을 축여줄 한 모금의 물을 마시려고 그놈의 문턱과 싸워야 합니까?” 1984년 휠체어 이용 장애인 김순석 열사가 자신의 목숨을 끊으며 서울시장 앞으로 남긴 유서의 일부분이다. 그의 죽음은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 접근권 문제를 제기한 최초의 항거로 평가된다. 그로부터 37년이 지난 지금, 장애인들이 처한 현실은 과연 얼마나 달라졌을까?

경향신문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저자


최근 보건복지부는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편의증진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의견서를 받았다. 현행 편의증진법은 음식점, 편의점, 약국, 미용실 등 소규모 공중이용시설의 경우 300㎡(약 90평) 이상에 대해서만 편의시설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는데, 그 기준을 50㎡(약 15평)로 낮추는 것이 주요 개정 내용 중 하나다. 이 개정안은 언뜻 상당한 수준의 개선을 도모한 듯 보이지만, 장애계는 일제히 이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왜 그랬을까? 기본적으로 이번 시행령 개정의 적용을 받는 소규모 공중이용시설은 사업장 대부분이 말 그대로 소규모다. 예컨대 편의점의 경우 전국 4만3000여 곳 중 50㎡ 이하인 사업장이 약 80%를 차지한다. 또한 이 개정안은 2022년 이후 신축·증축·개축하는 건물에만 적용되기에 그 이전부터 영업을 해왔던 곳 역시 추가로 제외된다. 결국 300㎡에서 50㎡로의 기준 강화는 속 빈 강정에 지나지 않는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이미 2014년 “건물의 크기, 규격, 준공일 등에 관계없이 접근성 표준을 모든 공중이용시설에 적용할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한 바 있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는 “편의시설 설치가 어려운 경우 인적 서비스 제공 등 대안적 조치”를 마련하도록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권고하기도 했다. 즉 장애인 등의 접근권 보장을 위한 편의시설 설치는 기본적으로 모든 공중이용시설을 그 대상으로 하되, 건물의 구조적 문제로 많은 비용이 소요될 경우 일정 비율의 공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편의시설 설치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면 호출 벨과 연계한 인적 서비스 등의 편의제공이 이루어져야 한다. 장애인의 삶을 실제로 변화시킬 수 있는 보편적이면서도 섬세한 조치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개정안은 마치 과거 장애등급에 의해 활동지원서비스 제공 대상을 일률적으로 제한한 것처럼, 사업장 면적에 의해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공중이용시설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행정편의주의에 빠져 있다. 그리고 이 개정안에 따른 예산 조치와 관련해서는 “별도 조치 필요 없음”이라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편의를 봐준다” “서비스 좀 주세요”와 같은 표현들을 사용할 때가 있는데, 여기서의 편의와 서비스는 제공하는 자의 배려에 좌우된다. 그러나 편의증진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이야기하는 정당한 편의는 그 같은 배려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다. 보건복지부 관료들은 혹시 이 양자를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점검해 보기 바란다. 그리고 장애인의 편의점 이용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행정편의주의적 편의증진법 개정안을 즉각 철회할 것을 요청드린다.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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